미래창조과학부는 10월 27일‘유료방송 발전방안 제1차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는 지난 8월부터 미래창조과학부가 운영해 온 연구반의 주요 논의내용을 공개하고 이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토론회에서 연구반이 제시한 세부주제는 ‘공정경쟁환경 조성’, ‘시청자 후생제고’, ‘산업적 성장지원’이다.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공정경쟁환경 조성의 경우 허가체계 기준을 전송방식에서 다채널방송 제공역무로 단일화시키고, 유료방송사업자 간 지분규제와 방송권역 제한을 폐지함으로써 모든 유료방송사업자가 전국시장에서 경쟁하게 하되, 거대 사업자 출현방지를 위한 합산규제는 일몰연장 여부 또는 규제수준 결정을 추후 논의한다는 것이다.

시청자 후생제고의 경우 케이블SO 아날로그 종료를 통한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모든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지역채널 의무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산업적 성장지원에서는 요금 승인방식을 상한제에서 기준요금 표시제로 완화하고, 상품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제를 최소화하여 시청자 선택권을 제고하며,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해석을 적용하여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실감미디어 등 신기술을 활용한 사업의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7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유료방송 발전방안’ 제1차 공개토론회를 진행했다.(사진=미디어스)

이들 방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유료방송사업자가 전국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유료방송시장에서 IPTV사업자가 주도하는 케이블SO 인수합병을 촉진시키겠다는 것이다.

유료방송시장은 공익성보다 산업성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시장에서 재원을 조달하기 때문에 유료방송사업자는 소비자의 수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도록 규제보다는 경쟁을 강화하여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요금을 낮추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 개선방안이 지향하는 방향성은 타당하다.

그렇지만 이들 방안에는 몇 가지 문제점도 있다. 먼저 지분규제와 방송권역 폐지를 통한 케이블SO 광역화는 외견상 ‘동일서비스 동일규제’정책의 실현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지역매체로 출범한 케이블SO의 역사성과 정체성 나아가 존립근거마저 부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모든 유료방송사업자에 대한 ‘지역채널 편성 의무화’는 명목상 IPTV사업자(위성 제외)에게 지역사회 기여 의무를 부여하는 듯 보이지만 지역성을 기반으로 성장한 케이블SO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이며 나아가 IPTV가 지역채널 문제만 해결하면 굳이 MSO와 인수합병을 추진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MSO의 출구전략도 차단해 버리게 된다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또한, 지분규제와 방송권역 규제가 폐지될 경우 유료방송시장에서 경쟁이 활성화되기보다는 독과점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규모 측면에서 유료방송사업자와 IPTV사업자 간에는 커다란 격차가 존재한다. 때문에 지분규제, 권역규제가 폐지될 경우 케이블SO가 IPTV사업자에게 일방적으로 흡수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고, 그 결과 유료방송시장은 기존 통신시장과 유사하게 IPTV 3사 중심의 독과점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지분규제, 권역규제 폐지를 통해 경쟁력을 상실한 케이블SO의 경우 IPTV사업자에게 시장을 넘겨주고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IPTV사업자와 동등하게 겨뤄볼 만한 위치에 있는 케이블SO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지분규제와 권역규제가 폐지되고 나면 통신요금 인하처럼 IPTV요금 인하가 선거공약의 단골메뉴로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이번 개선방안은 규제의 일관성 측면에서 정부가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다. 얼마 전 공정위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렸다. 그 이유는 두 기업의 결합이 유료방송시장과 이동통신시장에서 독과점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때 공정위는 유료방송시장의 경쟁 제한성을 지역단위로 분석했다. 그런데 합병 불허 결정이 내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가체계 일원화, 지분규제와 권역규제 폐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논의가 현실화된다면 공정위의 유료방송시장 경쟁 제한성 분석기준도 전국단위로 변경될 수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반사이익을 얻는 사업자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IPTV가 성장한 것은 방송매체 균형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정책적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적 배려와 더불어 미래부가 제시한 ‘유료방송 발전방안’은 조만간 도래할 합병 국면에서 IPTV사업자에게는 사냥꾼의 권리를 부여하고, 케이블SO에게는 사냥감이 되기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신문기사를 통해서도 유추되는 결과지만, 아무리 좋은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날 제시된 유료방송 발전방안은 특정 사업자에게 포획된 ‘유료방송 발전방안 연구반’이 특정사업자의 사업논리를 그대로 투영한 안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SK와 CJ헬로비전 합병에 대한 반대논리로 이용되었던 이종방송사업간 M&A 문제는 허가체계 일원화, 지분규제 폐지, 방송권역 폐지로 더 이상 제기되지 못할 것이다. 또 하나의 이슈였던 케이블SO 지역채널도 지역채널 편성 의무화로 인해 조만간 이뤄질 IPTV와 케이블SO 합병 시 걸림돌로 작용되지 못할 것이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케이블SO의 디지털 전환 완료 후라는 단서는 케이블SO 입장에서는 시한부 사형선고, 즉 그 기간 안에 사업을 정리하라고 통보한 것과 다름이 없다.

미래부는 ‘유료방송 발전방안’을 통해서 유료방송 상생의 선순환구조를 이룰 수 있는 합의 기반의 정책적 해법을 내놓아야 했는데 이번에도 그렇지 못했다. 현재 청와대 미래전략수석비서관이 특정 통신(IPTV)사업자의 사외이사출신이며, ‘유료방송 발전방안 연구반’ 구성원 중에 누가 특정사업자의 의견을 대변하는지 다 아는 상황에서, 방송권역 폐지와 지역채널 편성 의무화는 케이블SO의 존립근거를 없애는 결정일 수 있다.

현재의 개선방안은 마치 집주인인 정부부처가 세입자인 방송사업자에게 시간을 정해주고 방을 빼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문제는 이사갈 수 있는 집이 없다는 것이다. 11월 중에 공청회가 다시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올해 실적을 내고 싶은 미래부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제1차 공개토론회에서 제시된 방안이 유료방송시장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다시 한 번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더 늦기 전에 유료방송 발전이 아닌 생태계 조성방안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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