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본다. 요즘 재학 중인 학교에서 석사 과정학생들이 듣는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독일의 박사과정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반적으로 학위과정코스가 없기 때문에 그 동안 개별적으로 몇 개 수업에 한두 번 참석한 경험이 전부였는데, 지금 참석하고 있는 세미나는 함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동료가 진행하는 수업이기에 여러 차례 청강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편안하게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세미나는 ‘미디어 시스템’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제 개강한지 3주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까지는 원론적인 내용들이 다뤄지고 있다. 가장 최근 수업은 미디어와 역사,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정치적 흐름과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세미나에서 발표를 맡은 첫 팀은 1945년 이후 냉전시대의 미국이 정치에 개입한 사례들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소개했고, 그 과정에서 일본이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을 급격하게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두 번째 팀은 미국 언론의 변천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정치적 사건들을 두어 가지 학생들과 공유하는 발표를 진행했다.

토론시간이 되자 발표를 들었던 학생들에게서 여러 질문들이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있었다. ‘왜 미디어 시스템을 배우는 과정에서 역사와 정치를 고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역사적으로)정치가 언론에 영향을 미치기(미쳐왔기) 때문에’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얼마나’, ‘어떻게’, ‘왜’, ‘어느 정도’ 등으로 세분화한다면 그 답은 복잡해진다.

우리나라는 독일과 다른 모습이다. 우리나라 대학과정에서 언론/신문방송 계열의 학과들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대부분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시작으로 취업에 필요한 기술들까지 대학에서 배운다. 다양한 분야를 배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기술습득이 최종목표인 커리큘럼들이 많다. 여기서 학문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기술’이라고 언급하는 이유는 기본이 사라진 상태로 전이된 방법만을 배운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가 변화한 만큼 기술들을 배워서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인력들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이를 비판하고 싶진 않다. 언제까지 허울 좋은 ‘학문’이라는 것을 말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기술을 가르쳐야하기 때문에 ‘언론’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작동하기 위한 중요한 지식들을 아주 간단히 훑고 지나가는 수준으로 끝낸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언론/신문방송 계열의 학과들에선 언론역사를 배우는 수업은 거의 사라졌고, 미디어를 작동하는 단체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공유하는 수업도 사라지고 있다. 언론윤리에 대해서 고민하는 과정들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특성상 정치와 종교에 대한 문제는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도 강해져 현재 정치문제에도 관심이 덜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현재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되는’ 정치이슈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만 진중한 판단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파편적/단발적으로 언급하는 수준이다. 이런 경향이 반영되어 결국 언론/신문방송 계열의 학과들에서 역사와 정치에 대한 문제는 논하지도 않고 다루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업 시간에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이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에서 ‘언론’을 일부분만 배운다. 더 흥미로운 현상은 뉴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일부분밖에 모르는 ‘언론’이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다는 데 있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1인 저널리즘’이라는 이슈가 등장했고, 인터넷 독립 언론사들도 여기저기 생겨났다. 이 현상은 여론다양성이라는 입장에서 기존의 대형 언론사들을 견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정작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했다. ‘포털’이라는 대형 조직이 그 권력자다.

2016년 5월 4일(새벽 1시, 독일시간 기준) 네이버, 다음의 모바일버전 정치뉴스화면

우리나라의 두 대형포털 네이버와 다음은 언론사가 아니지만 언론의 역할을 충분히 행하고 있다. 뉴스배열과 편집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어떤 뉴스가 중요한지 ‘자신들의 기준으로’ 평가하여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이 미치는지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두 포털은 현저하게 다른 성향을 보인다.

흥미롭게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일부의 언론사들과 기존의 언론사들이 경합하는 자리가 되어버린 포털에선 자극적인 제목과 속보로 클릭 수를 늘린다.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서 유명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내용을 ‘속보’라는 제목으로 내보낸다. 확인되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정보들을 엮어 기사로 내보내는 ‘어뷰징’도 익숙하고, ‘충격’/‘경악’ 등의 제하 기사들도 난무한다.

지금 한국 상황도 적절한 예시가 된다. 최순실씨 비선문제부터 각종비리까지의 이야기는 4~5년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였다. 최순실씨의 아버지인 최태민씨에 대한 내용들도 충분히 여러 채널들을 통해서 다뤄졌었고, 정윤회씨 및 정유라씨 등에 대한 비리문제도 익히 알려진 사건들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이제야 터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동안 이 문제를 다뤘던 채널들은 독립 언론들과 팟캐스트 등의 방식이었다. 포털들은 이런 정보를 걸러내는 대신 불필요한 정보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접근조차 막아냈다. 물론 뉴스 소비자들의 잘못도 있다.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널리 알려진 비리들도 바라보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주요 언론들은 이 문제를 다루지도 않았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인 독립이 안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언론은 참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다. 정치에서 독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 통제를 당하는 경향이다. 이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언론인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지식들이 ‘기술’이라는 목적의 일부분으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역사나 탄압과정들을 이미 지나간 것으로 간주해버리고, 언론인이 가져야할 윤리는 이상적이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길까봐 걱정될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언론인들을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말로 그들을 비판한다. 우리나라의 언론이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하나를 집어본다면 최근 세미나 시간에서 들었던 그 질문이 우리네 언론관련 학과에서 간과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원칙으로 돌아가, 현재 상황에 맞는 언론을 다시 구성할 필요가 너무나도 요구되는 사회다.

덧붙여 얼마 전 우연히 읽게 된 독일 공영방송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뉴스전문페이지의 편집규칙(Die besondere Rolle journalistisch-redaktioneller Angebote)이 마음속에 계속 남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하기에 간단히 소개하면서 글을 마친다.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접근할 때 이용자들은 ‘공공성’(öffentlich)을 ‘공개적으로 알려진’(öffentlich bekannt)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이용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특별한 매개체(spezieller Vermittler)들인 검색엔진 또는 네비게이터들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개념차이가) 기자원칙(journalistischen Regeln)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온라인상에서 정보를 중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저널리즘-편집 역할’은 공공성과 개인 의견 사이의 중심에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