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관련 파문 이슈를 앞서서 이끌어 나가고 있다. 종편채널 JTBC와 TV조선은 24일에 이어 25일에도 관련 단독 보도를 쏟아냈다. 과거 뉴스 보도의 중심이었던 지상파 방송(KBS·SBS)과 일부 보도전문채널(YTN)은 뒤늦게 T/F팀(특별취재팀)을 꾸려 집중 취재하려는 모양새다. 사측의 ‘뒷북치기’에 내부에서는 사측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지상파 KBS와 SBS가 종편채널이 최씨 관련 단독 보도를 쏟아낸 이후에 뒤늦게 T/F팀을 꾸린 것이 확인됐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 이하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에 따르면, 24일과 25일 종편과 신문의 보도로 대통령에 대한 ‘하야’와 ‘탄핵’ 얘기까지 흘러나오자 26일 아침 ‘최순실’ 사건 전담 T/F를 구성했다. 또한 언론노조 윤창현 SBS본부장은 “어제(25일) 특별취재팀을 꾸려 들어갔다고 사측에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보도전문채널 YTN도 26일 저녁 ‘특별취재팀’ 구성 마치고 27일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언론노조 YTN지부(위원장 박진수)는 26일 성명을 내고 27일 저녁 7시 열리는 긴급 사원총회와 공정방송위원회에서 사측과 T/F 구성 논의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26일 저녁 보도국장이 이를 받아들여 취재팀 구성이 결정됐다.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로 지목되고 있는 최순실 씨 (뉴스타파 화면 캡처)

KBS·SBS·YTN 내부 구성원들, '비참하다'

과거 뉴스 이슈 선점과 집중 취재를 선보였던 지상파와 보도전문채널이 종편채널에 뒤지게 된 상황에서 내부 구성원들은 ‘비참함’까지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T/F팀을 구성하자는 내부의 요구에도 사측이 ‘권력 눈치보기’ 때문에 이를 묵살했다고 평가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26일 성명을 내고 “언론사로서, 공영방송으로서, 그리고 한 때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이 있는 뉴스를 만들었다는 KBS의 구성원으로서 이 희대의 사건 앞에서 KBS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떨어졌음을 직접 우리의 두 눈과 귀로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고 개탄했다.

이어 “그토록 반대하고 무시하고 조롱했던 종편이었는데, KBS의 수백 명 기자들이 ‘오늘은 종편 뉴스에 무엇이 나올까?’ 긴장하며 기다리고, 베끼고, 쫓아가기를 서슴지 않는다”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존심도 버렸고, 자랑스러웠던 과거의 기억도 잊었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노조는 그동안 여러 차례 도를 넘은 권력 편향과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를 스스로 좀 먹는 보도 행태에 대해 경고하고 시정을 요구해 왔다”며 “하지만 사측은 내부 특별취재팀 구성 요구조차 묵살하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고 밝혔다.

이어 자사 보도에 대해 “카운터 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고 평가한 뒤 “‘회사를 위한다’는 이유로 후배 기자들이 권력 눈치나 보게 하고, 자기 검열로 만들어진 ‘땡박뉴스’, ‘대한늬우스’를 박근혜 어전에 바치도록 한 결과에 만족하느냐”고 사측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언론노조 YTN지부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다른 언론사들이 특종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 '한국의 뉴스채널'은 먼산 불구경만 하고 있다”며 “온 나라를 뒤흔드는 이슈를 외면하는 사측의 행태가 낯부끄럽다”고 말했다.

YTN지부에 따르면, 비선 실세 최씨의 의혹이 불거진 지난 9월, YTN지부 공추위는 보도국에 T/F팀 구성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이를 묵살했다. 언론노조 YTN지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한 보도국 간부들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간부들은)‘부담스럽다’며 발제를 억눌러 왔고, ‘알면서 왜 그러냐’고 정권 눈치보기를 정당화해왔다”고 밝혔다.

내부에서 불어오는 자성의 목소리 일파만파 커져

방송사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동료 기자와 PD들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가 정말 공영방송 언론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자기검열에 빠져 안주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자그리고 제작 현장에서부터 당당하게 요구하고 싸워나가자”고 당부했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역사책에 기록될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을 앞에 두고 사태의 파장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끝없는 청와대 눈치보기로 사회적 공기로서 SBS 위상에 먹칠을 한 책임자들은 전 구성원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라”며 “사측은 SBS 보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바닥부터 파괴해 온 과거의 관행과 혁명적으로 단절할 방안을 진지하게 제시하라”고 사측에 요구했다.

언론노조 YTN지부는 “기자들의 총의가 반영되는 보도국장 추천제를 휴지장처럼 버리고, 윗선의 눈치만 보는 데스크가 많아지면서 보도국에서 토론이 실종돼 버렸다”면서도 “하지만 이대로 망연자실해 있을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YTN지부는 보도국 간부들을 향해 “아직 일말의 기자정신이라도 남아있다면, 간부들은 지금까지의 직무유기를 즉각 사과하라”면서 “보도국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을 위한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YTN보도국은 누가 정권을 차지하든, 사장이 누가 되든 국민만 보고 취재하고 보도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26일 저녁 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조능희)에 확인한 결과 MBC는 아직 ‘특별취재팀’ 구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27일 MBC본부 관계자와 통화한 결과 MBC는 26일 늦은 저녁 특별취재팀을 구성했고, 27일 오전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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