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루만 33개가 나온 경기는 지겨울 수밖에 없다. 엘지는 9개 엔씨는 16개의 사사구가 기록된 플레이오프 3차전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이런 경기에서 최고의 장면들이 곁들여지며 흥미로운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이 기이하게 다가올 정도다. 엘지는 1회부터 대량 득점으로 경기를 끝낼 수도 있었지만 11회 연장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LG 양석환 끝내기 안타;
25개 사사구가 남발된 졸전, 그럼에도 빛났던 안익훈의 호수비

벼랑 끝에 몰렸던 엘지가 홈구장에서 반격에 나섰다. 1승 2패가 된 엘지가 오늘 경기에서도 이긴다면 다시 창원으로 내려가 마지막 승부를 벌이게 된다.

마산 구장에서 치열한 투수전을 통해 2경기를 완벽하게 잡아낸 NC는 원정 경기에서 의외의 선발 카드를 꺼냈다. 신인 장현식 카드는 최고이거나 최악이 될 수 있는 무리수였다. 신인 카드는 의외로 상대를 압박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즌 경기에서는 가능했지만 이 경기를 잡으면 한국 시리즈에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신인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었다. 장현식은 1회부터 흔들렸다. 선두타자인 문선재와 이천웅에게 연속 볼넷을 내주며 위기를 자초한 장현식은 1회에만 4개의 볼넷을 내주며 밀어내기 실점을 했다.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플레이오프(PO) 3차전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11회말. LG 히메네스의 볼넷에 앞서 LG와 NC가 이날 경기 중 얻은 사사구 24개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장현식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엘지 타선은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흔들리는 신인 투수를 밀어붙여 대량 득점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엘지 타선은 침묵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엘지 타선은 1회만이 아니라 2, 4회에도 만루 기회를 잡았지만 좀처럼 풀어내지 못했다.

NC 마운드가 흔들리며 사사구를 남발했지만 득점력 빈곤으로 인해 추가 득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엘지 선발로 나선 캡틴 류제국은 호투를 보였다. 기회를 잡고도 득점을 올리지 못하면 상대 팀의 반격으로 이어지는 것이 스포츠다. 그런 점에서 엘지는 수많은 위기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류제국은 NC 타선을 틀어막으며 위기를 넘겼다.

5회에는 김태군의 타구가 모자를 맞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류제국의 투구 밸런스가 흔들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쉽다. 모자만 맞는 사고였지만 정신적인 충격과 함께 꾸준하게 이어오던 밸런스를 흐트러트릴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3차전에서 보여준 류제국의 투구를 생각해보면 최소한 7회까지 호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6회초 2사 1,2루, LG 선발 류제국이 교체되고 있다. Ⓒ연합뉴스

류제국은 6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간단하게 투아웃을 잡았지만 이후 연속 볼넷을 내주며 내려와야만 했다. 믿었던 정찬헌이 나오자마자 3차전에서 타격감이 좋았던 김태군에게 적시타를 내주는 장면은 최악이었다. 수없는 기회를 잡지 못하고 추가 득점을 올리지 못한 엘지가 선발 류제국이 내려가자마자 실점을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엘지는 연장 없이 경기를 끝낼 수도 있었다. 8회 홈으로 뛰어들던 문선재의 아웃 판정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NC 포수인 김태군이 태그를 확신하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웃 판정을 내린 것은 만약 엘지가 졌다면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리플레이를 해봐도 확실하게 태그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LG의 8회말 무사 만루에서 3루주자 문선재가 히메네스의 내야땅볼을 틈다 홈으로 쇄도하다 NC 포수 김태군에게 태그 아웃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사구가 남발되는 상황에서도 양 팀의 수비수들은 좋은 수비를 보여주었다. 내외야에서 호수비들이 끊임없이 나오며 최악의 경기를 흥미롭게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들의 수비는 더욱 빛났다. 그 수많은 호수비들 중 최고는 11회 엘지에게서 나왔다.

11회 2사 상황에서 주자 두 명을 두고 나성범이 나섰다. 이번 경기에서 5타수 무안타였던 나성범이었지만 임정우를 상대로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완벽한 타구를 날렸다. 홈에서 막기 위해 외야수들이 얕은 수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성범의 타구는 펜스를 그대로 맞히는 안타로 보였다.

하지만 중견수 대수비로 나온 안익훈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타구를 끊임없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누구나 다 완벽한 안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어느새 펜스까지 달려 포구해 이닝을 마무리해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허탈해 하는 나성범의 표정은 오늘 경기의 하이라이트였다.

11회말 LG 양석환이 끝내기 내야 안타를 치고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최악의 상황을 넘긴 엘지는 11회 다시 기회를 잡았다. 선두 타자인 히메네스가 볼넷을 얻어 나간 후 오지환이 안타를 치며 분위기는 급격하게 엘지로 흘러가고 있었다. 채은성이 희생 번트까지 성공시키며 외야 플라이 하나만 쳐도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상황에서 대타 양석환이 투수 강습 안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말도 안 되는 최악의 졸전에서 엘지가 승리를 가져갔다. 엘지로선 쉽게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를 11회 연장까지 끌고 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여기에 중요한 선발 투수인 소사까지 마운드에 올랐다는 사실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경기가 치러진다면 5차전 선발로 나서야 하는 소사를 소모했다는 사실은 엘지로서는 큰 손실이다.

사사구 25개, 33개의 잔루로 11회 연장까지 간 경기는 지루하고 재미없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나온 호수비들은 이런 지루한 경기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좀처럼 터지지 않는 양 팀의 중심 타선은 경기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NC와의 경기에서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엘지 타선이 과연 힘겹게 이긴 이 경기를 통해 반격에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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