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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지율을 하나로 묶어준 ‘조선일보’[김주완·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김훤주/경남도민일보 기자 | 승인 2009.06.12 13:04

5월 26일 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지율 스님이 보냈습니다. 물론 제게만이 아니고, 다른 여러 사람한테 함께 보내는 그런 메일이었습니다. 제목이, ‘어떤 운명’이었습니다.(<촉록의 공명> 홈페이지 ‘길에서 쓰는 편지’에 ‘어떤 죽음을 애도하며’로 같은 글이 올라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조선일보 보도 따위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1. 지율과 노무현의 인연

저는 지금도 지율 스님이 떠오르면 가슴이 꽉 막힙니다. 그런 영혼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입니다. 지율은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노선 변경 공약 채택 운동을 벌여 같은해 10월 26일 노무현 당시 후보로부터 백지화·재검토 약속을 받아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 노무현 후보가 천성산 터널 관통 백지화 재검토를 약속한 2002년 10월26일 부산불교회관 간담회 장면입니다. 왼쪽 끝이 지율스님입니다. 김훤주  
 
지율 스님은 노무현 정부 시절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밥 먹듯이’ 단식하면서 이 공약 실천을 요구합니다. 한편으로는, 허무하게 패소하고 말았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자연물을 주체로 내세운 ‘도롱뇽 소송’도 벌입니다. 첫 단식은 2003년 2월 5일부터 3월 15일까지 38일, 같은해 10월부터 45일, 이듬해에도 6월부터 58일 단식을 했습니다.

이미 이 세 차례만 해도 더하면 151일이나 되는데, 뒤에 벌어진 단식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04년 10월 시작한 네 번째 단식은 2005년 2월 3일 100일을 채우며 끝났고 9월께 시작된 마지막 다섯 번째 단식은 2006년 1월 21일 정신을 잃은 스님에게 주사가 놓임으로써 100일을 넘기고 끝났던 것입니다.

   
  ▲ 2006년 1월16일 피골 상접 정도가 아니라 피골이 직접한 단식중인 지율 스님 모습입니다. ⓒ오마이뉴스  
 
이렇듯 지율 스님은 노무현 정부와 관계가 좋을 수 없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갈수록 기울어진 경쟁 지상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지율 스님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을 무시하고 비웃고 우스갯거리로 삼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스님은 이번 편지 ‘어떤 운명’에서 “집권 초기부터 그와 얽힌 인연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이라 했지 싶습니다.

그러나 지율 스님은 이와 함께, “소식을 듣는 순간 멈칫 당황했고 한동안 얼어 붙어” 있다가 “사실을 확인해 가면서 이유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그 시간에 마음에 무엇이 왔다갔는지 잘 표현할 수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왜 이랬을까?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소 자비심이 풍부한 스님이라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거든요. 지율 스님은 “평소 죽음을 반복되는 순환의 하나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통지를 받고도 문병 한 번 간 일이 없어 가족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는 얘기까지 덧붙여 놓고 있습니다.

2. <조선일보>가 조롱거리로 삼은 지율과 노무현

그렇다면 다른 무엇이 있다는 얘기인데, 스님 메일을 죽 읽어보니 그것은 바로 <조선일보>(그리고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 매체들)였습니다. 이렇게 썼습니다. 5월 25일 노무현 서거로 대부분 일정이 취소돼 산막이 있는 산골로 돌아갔습니다. 가는 길에 신문 가판대에서 조선일보 호외가 눈에 띄어 ‘반사적’으로 신문을 집어들었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년 ‘취임 5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은 보이지 않는 언론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이 시점에서 그들이 죽음으로 끝난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1면은 고개숙인 노무현 대통령, 5면에는 눈을 감은 이명박 대통령 사진이, 7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을 애도한다’는 사설이 실려 있었다. 마지막 장인 8면에는 ‘가난과 권위·지역주의 벽에 도전한 풍운의 삶’이라는 기사와 자전거로 손주의 가마를 끄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어집니다.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얼핏 이 순간 그들은 화해한 듯 보였고 비록 화해와 용서라는 말이 죽음 앞에 놓여 있어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그렇게라도 머리 숙여주는 것이 고마웠다.” “우리는 왜 우리가 살아 숨쉬고 있는 동안에는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하지 못했을까.”

저는 여기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대한 지율 스님의 속 깊은 애도를 읽었습니다. 좀 있다 말씀드리겠지만, 지율 스님이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바로 ‘<조선일보>가 그렇게라도 머리 숙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이 머리 숙임이 노무현에게는 ‘애도’고 지율에게는 ‘사과’지만) ‘살아 숨쉬고 있는 동안에는’, 노무현 정부도 지율 스님도 상대방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조선일보>가 노무현과 지율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이런 표현을 두고 덜 떨어진 어떤 이는 노무현을 지율이 범죄자로 인정했다 헛소리를 할는지도 모르지만, 이어지는 글귀는 이렇습니다. “범죄보다 범죄를 다루는 기사가 더 잔혹하다는 것을, 사건보다는 사건을 유추하는 논리가 더 사람들을 격앙시키는 것을 나는 천성산 운동을 하면서 보았다.” 시쳇말로 하자면 동병상련(同病相憐)입니다.

   
  ▲ 울산지방법원에서 심리를 맡았던 2003년 12월 15일 천성산 산상재판 가운데 천성산 제2봉 장면입니다. ⓒ김훤주  
 
3. ‘자살 서거’의 무게와 ‘나홀로 소송’의 무게

그리고 또 적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싸움에서 죽음을 택했지만 나는 살아서 그들을 법정에 세우고 있다.” 지율 스님은 지금 “아무 근거도 없이 한 여승이 방해하는 바람에 국책사업이 차질을 빚어 한 해 동안 공사가 중단돼 2조5000여 억 원 손실을 입혔다”고 한 데 대해 한 해 넘게 <조선일보>와 나홀로 소송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 조선일보 인터넷판 6월5일 화면 캡처.  
 

소송에서 <조선일보>는 “공사 중단 기간은 여섯 달밖에 안 되고 손실액도 겨우 145억 원이다”는 사실과 자기네 오보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사실과 다르게 보도되어 지율스님의 명예를 훼손한 점에 대하여 사과드립니다.”는 마지막 한 구절은 실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6월 5일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에 따라 실린 ‘바로잡습니다’에도 ‘사과’는 없었습니다. ‘거짓으로라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스님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단 한 번도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100회 이상 기사를 쓰고, 사실관계를 인정한 후에도 여전히 사과는 단 한 줄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조선일보이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자신을 내려 놓고 애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심사가 조금은 남다른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율 스님 말씀대로 ‘생명의 대안은 없다’(따라서 생명은 다른 무엇보다 가치로운 존재다)는 관점에서만 바라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과 지율 스님이 진행하는 ‘나홀로 소송’의 무게가 같다고 여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절대 약자 조건에서 온갖 변호사를 동원할 수 있는 거대 매체에 맞선 스님 소송의 목적을 헤아려 보면, 그런 ‘나홀로 소송’이 스님에게 안긴 고통과 모욕이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4. ‘사람 사는 세상’과 ‘도롱뇽도 사는 세상’

노무현은 ‘사람 사는 사람’을 꿈꿨습니다. 지율은 더 나아가 ‘도롱뇽도 사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조선일보>는 노무현은 물론 지율까지도 비웃음거리로 만들고 온갖 표현을 동원해 모욕했습니다. 한 사람은 자살을 선택했고 다른 한 사람은 나홀로 소송을 선택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절대 머리는 숙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율 스님은 글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습니다. “바라옵기는…… 부디 깊고 슬픈 언덕에서 떨어져 내린 망자의 길에 안식과 평안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덧붙이는 글에서 “단 몇 줄의 정정보도를 싣기 위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길들을 거슬러 가는 것은 거짓 인과로 촉발되는 상황들이 지금 이 땅에 무자비하게 행하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이른바 경험칙에 비춰 볼 때 ‘사람 사는 세상’을 물론 마땅하지 않게 여기고 ‘도롱뇽도 사는 세상’은 더더욱 탐탁지 않게 여깁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얘기하면 “‘부자가 최고인 세상’을 망가뜨리려느냐”고 윽박지릅니다. ‘도롱뇽도 사는 세상’을 말하면 “그깟 도롱뇽 때문에 돈벌이를 못하게 한다고!” 하며 눈을 부라립니다.

저는 이렇게 빕니다. 부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부디, 지율 스님의 나홀로 소송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부디, ‘거짓 인과로 촉발되는 상황들’을 부풀리고 ‘참’으로 둔갑시키는 <조선일보>가 사라지기를. 부디, ‘거짓 인과로 상황들을 촉발’하는 거대 자본의 잔인한 폭력이 사그라들기를.

   
저는 1963년 8월 경남 창녕에서 났습니다. 함양과 창녕과 부산과 대구와 서울을 돌며 자랐고 1986년 경남 마산과 창원에 발 붙였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는 1999년 들어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한 뒤에는 노동조합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일삼아 했습니다.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 9일까지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을 했으며 2009년 1월 기자 직분으로 돌아왔습니다.

김훤주/경남도민일보 기자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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