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10일 TV아사히가 김정운의 사진을 공개하자 신문사 인터넷판은 재빠르게 관련 뉴스를 전하였다. ⓒ경향신문 인터넷 캡처
웃다 지칠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10일 오전 일본 TV아사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운의 최근 사진을 입수했다며 공개하였다. 한국 미디어 역시 재빨리 움직였다. 앞다투어 TV아사히가 전한 김정운의 최근 사진을 인터넷판으로 보도하였다. “머리가 짧은 편으로 목이 두꺼워 김정일 위원장의 젊은 시절과 거의 흡사한 모습이다”(경향닷컴), ”머리가 짧은 편이다. 목이 굵고 김정일 위원장의 젊은 시절과 거의 흡사한 모습이다.“(조선닷컴)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운의 닮은꼴을 끼워 맞추었다.

헌데, 처음부터 의문투성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가짜 사진’ 의혹이 증폭되더니 TV아사히가 단독 보도하고, 한국 언론에서 냅다 가져다 쓴 사진의 원본으로 보이는 사진이 낮에 공개되었다. 관련 사진은 한 다음 카페 주인이 회원 사진방에 올린 것이었다. 그 가운데 배경을 날리고, 얼굴만을 부각시킨 사진이 아사히TV에서 김정운의 사진이라고 공개한 그것과 유사하다. 해당 사진 밑에는 “ㅋㅋ...김정일인줄..알았시유......ㅋㅋㅋㅋㅋ”라는 댓글이 달려 있을 정도로, 이 사진의 주인공은 그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닮았다며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화제가 됐었다.

인터넷에서 김정운 사진이 ‘가짜’라는 여론이 들끓자, TV아사히가 공개한 김정운의 사진에 대해 한국 언론들은 앞다퉈 인터넷판에서 ‘오보 논란’ ‘가짜 사진 의혹 증폭’ 등으로 싹 바꾸어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지상파 방송 뉴스의 경우는 오보 소동에 초점을 맞추어 TV아사히의 사진 공개 뉴스와 사진 속 주인공을 밝혀진 이의 인터뷰를 전하였다. 신문들은 11일자 지면으로 TV 아사히의 김정운 사진 오보 소동을 전하였다.

결국 오늘 낮 TV아사히는 김정운의 사진과 관련하여 “한국당국 관계자로부터 사진을 입수해 북한지도부와 가까운 관계자로부터 확인을 받았다”라고 해명하면서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시청자와 관계자 여러분에게 오해를 준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전하였다.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TV아사히가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방송을 한 셈이다. TV아사히는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확인 취재가 미흡하였다”며 “보도의 기본으로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논란의 시작이다. ‘가짜’ 사진 논란으로 촉발된 TV아사히의 보도의 2차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번 오보에 ‘한국당국 관계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TV아사히가 사진의 출처를 ‘한국당국 관계자’로 밝히자, 언론사들은 일제히 TV아사히의 후폭풍을 주시하고 있다. TV아사히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국 당국이 해외 언론을 통해 정보를 조작한 문제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고, TV아사히가 오보의 망신을 피하기 위해 정보 출처를 ‘한국당국 관계자’로 둘러댄 것이라면 이는 국가간 대결 국면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이 큰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단독공개’로 시작하여 ‘오보’ ‘가짜’ 의혹은 사실로 검증되었고, 이제는 정보원을 둘러싸고 또 다시 ‘사실’이 혼란스러워진 상황이다. 특종과 속보, 사실과 거짓 사이를 TV아사히와 한국 언론이 헤매고 있다. 밀고 당기기가 있겠지만, 어찌 보면 예고된 오보 사고였을지도 모른다. 책임은 일본 언론과 한국 언론 모두에게 있다.

북한으로 장사하는 일본 언론의 상업성

TV아사히는 일본의 민영방송이다. 일본 민영방송은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철저하게 상업성을 지향한다.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전 도쿄 특파원)은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일본 대형 신문사들이 민영방송을 소유하고 있는데, 신문사의 논조나 이념지향과는 무관하게 나타난다”고 일본 민영방송을 설명했다.

이와 같은 일본 민영방송의 특성은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십분 발휘된다. 한 기자는 “일본 언론이 한반도, 특히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야 한다”며 “일본 언론들은 북한 문제에 대해 기본적으로 한국의 수구 진영과 같은 시각으로 보도한다”고 지적하였다. 아사히신문의 경우 일본 언론 가운데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중도우파지만, 북한 문제만큼은 한국의 동아일보와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실제로 아사히와 동아일보는 제휴관계에 있다.)

일본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일본 언론에서 북한이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일본 언론은 왜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는 것일까. 한 기자는 “일본 언론이 북한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공포를 조장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일본 극우세력과 상업방송은 북한 자체를 상품화하는 데 있어서 공생관계에 있다. 몇 십 년 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공포는 대단하다”며 “다시 일본 언론은 이런 공포심리를 이용하여 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일본 민영방송의 무한 경쟁과 북한 관련 이슈에 대한 일본 대중의 공포심리, 포털을 기반으로 한 국내 언론의 상업성이라는 환경 속에서 이번 사진 오보 사건이 불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기자는 “시청률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큰 특종거리를 앞에 두고 철저한 검증을 하는 것보다 서둘러 보도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봤을 것이다. 설령 오보로 판명되더라도 거기서 받는 타격보다는 시청률 상승이 남는 장사라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며 TV아사히의 상업성과 일본 민영방송의 환경에 대해서 꼬집었다.

‘한국 당국 관계자’로 커지는 의구심

이처럼 일본 언론은 북한 문제에 주목하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는 철저하게 상업성과 북한에 대한 공포심리 혹은 비호감 여론을 조성하는 일본 언론의 방식이다. 현재 도쿄에 주재하는 한 언론사 특파원은 미디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TV아사히의 오보 사진 사건은 “북한이라면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대는 일본 언론의 속성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수많은 관계자, 즉 정보원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언론이 북한 소식에 재빨리 반응하는 것은 그 만큼의 취재 소스를 확보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언론은 이를 적절히 활용한다.

이런 점에서 11일 TV아사히가 ‘한국 당국 관계자’로 말한 정보원에 눈길이 간다. 아직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있지는 않았지만, TV아사히는 명확하게 ‘한국 당국 관계자’로부터 사진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왜 한국 언론이 아니라 일본 언론에 사진을 넘긴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북한 문제라면 떠들썩하게 떠들어대는 일본 언론에 한국통의 정보는 유효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구심이 밀려온다. 일본 언론에 밝은 국내 대학의 한 교수는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언론의 정보원으로 한국통이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은 있어왔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이 직접 보도할 때보다 일본 언론보도를 인용할 경우 북한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아직까지는 의혹이고 추정이다.

미스터리인가 아니면 사실인가. TV아사히가 2차 오보 사건으로 자살골을 넣은 게 아니라면 분명 북한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 언론, 그리고 한국 언론의 ‘쓰리쿠션’ 시스템이 포착될 수밖에 없다. 한국 언론에게 취재 소스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거쳐, 그리고 한국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정보가 한국에서 나가고 일본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꼴 말이다.

결국 한국 정부가 바빠질 모양이다. 사실 지난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김정운이 내정되었다는 국정원의 발표 이후에도 말들이 많았다. 지난 5월 북한 전문 월간지 <민족21>에 나온 내용인 데다가 당시 국내 상황이, 아니 정부의 상황이 궁지였다. 이런 가운데 TV아사히의 일종의 ‘폭탄’ 발언에 귀추가 주목된다.

불똥 맞은 한국 언론

▲ 6월10일자 조선일보 A5면
이와 같은 일본 방송 환경, 북한을 둘러싼 언론의 태도에 대해서 국내 언론은 주목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 언론은 한국 정보원이라는 ‘굵직한’ 의혹에 대해서도 아는 둥 마는 둥하다. 그저 일본 언론의 특종을 기다렸다가 훅~ 낚였을 뿐이다. 오보 사진 사건의 맥락이 그것이다. 그래서 일본 언론의 보도 원칙과 저널리즘의 기본을 무시하는 상업적 계산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문제시하지 않으며, 그저 일본 언론의 ‘특종’ 혹은 ‘단독’ 뉴스를 잽싸게 전달한다. 사진도 그랬고, ‘한국 당국 관계자’도 그러하다.

실제로 북한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언론은 일본의 뉴스를 후딱 가공하여 한국에서는 첫 번째로 ‘특종’을 만들 궁리밖에 못해 왔다. 따라서 매사 신중하지 못하고, 경박하다. 오보가 났던 날 김정운이 국방위원회 행정국 소속으로 확인되었다는 일본 산케이신문 보도에 대해서도 국내 언론을 일제히 ‘받아쓰기’를 했다. 김정남의 니혼TV 인터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11일 <김정운도 웃을 세계적 오보 소동>이라는 기사에서 “조선닷컴은 이 같은 사실(거짓 사진)을 오후 5시8분, 국내 언론 중 가장 빨리 보도했다”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으니 기가 차다.

검증 절차도 없이, ‘특종’에 눈 먼 ‘이 한 장의 사진’은 그렇게 일본 언론과 한국 언론 모두에 파장을 일으켰다. 허나 시청률에서 웃고 있을 TV아사히는 물론, 일본의 과열 취재 경쟁, 폐쇄적인 북한을 운운하며 오보 사진 사건을 평가하는 한국 언론이나 과연 언론으로서의 기본과 저널리즘의 가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게다가 TV아사히는 정보원을 ‘한국당국 관계자’로 밝히고 있는데 말이다. 그뿐이 아니잖은가. 한국통으로 읽히는 일본 언론의 정보원에 대한 ‘의문’이 쏟아지고 있고, 한국통에서 시작하여 일본 언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미스터리가 현실로 들어날 지도 모르는 판국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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