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전량 리콜에 그치지 않고 결국 지난 11일 단종을 선언하는 지경까지 몰렸다. 5~6차례 충전 중 폭발사례 보고 이후 9일만인 지난 9월2일 전량 리콜 조처를 취했을 때만 해도 개인적으론 ‘전화위복’이 될 거라고 봤다. 안전상의 결함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주는 적절한 대책과 함께, 기존 막대한 재고물량을 소화하는 것까지 겨냥한 중고 스마트폰 리퍼비시 할인판매를 동시에 발표하는 기민함을 보여서다. 게다가, 이미 협력업체 단가인하를 통해 수익성은 크게 개선해 놓은 상황이기에 ‘표정관리’만이 남아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바뀐 것처럼 보인다. 리콜 제품조차 폭발하는 사례가 국내외에서 보고됐음에도, 블랙 컨슈머의 허위신고로 몰아가는 식의 대응을 해오다 비자발적으로 단종 선언을 하는 사태까지 맞았기 때문이다. 전혀 신뢰를 못 주는 부적절한 대응이자, 전량 리콜 때와는 180도 다른 정반대의 모습이다. 애초 전량 리콜 조처마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된, 전례 없는 신뢰의 위기에 부닥친 꼴이다. ‘전화위복’의 가능성이 ‘설상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갤럭시노트7 교환과 환불이 시작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 스퀘어에서 한 사용자가 환불을 위한 서비스 변경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삼성전자가 제품의 안전상 결함을 충분히 확인하지도 않고 갤럭시노트7을 출시했다는 게 적어도 사실로서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리더를 자임하는 삼성에게는 치명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관심을 끄는 문제는 이런 안전상의 위험성에 대한 내부적인 경고가 있었음에도 이것이 무시됐는지 하는 점이다. 삼성의 체질상 내부 고발자가 나오지 않는 이상, 가능성의 영역으로만 남게 될 게 분명해 보인다.

삼성전자가 고를 수 있는 원인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하나는 ‘출시할 때까지 이상이 없었는데 몰랐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명은 1차 전량 리콜 때 이미 한 번 동원됐다. 삼성SDI 배터리의 결함은 뒤늦게 발견됐고, 중국 ATL이 만든 배터리는 이상이 없다고 한 것이다. 문제 배터리를 탑재한 제품은 교환하기 전까지 60%만 충전해서 사용하게끔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례에 대해 삼성전자는 ‘블랙 컨슈머의 허위신고’라는 분위기를 부추기는 식의 대응을 폈다. 리콜을 통해 교환받은 새 제품이 충전 이후 불이 났다는 지난 1일 신고에 대해 삼성전자는 “외부충격에 의한 발화”라고 해명했다. 배터리 자체 결함이 아니라 배터리가 외부충격에 의해 손상돼 불이 났다는 것이다. 신고자가 교환받은 새 제품을 날카롭게 튀어나온 바닥에 떨어뜨려 배터리가 훼손됐는지, 아니면 교환 제품에 애초부터 외부 충격이 가해져 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이 신고자가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는 식의 주장을 언론에 퍼뜨렸다가 신고자의 반발을 사는 일까지 벌어졌다.

허위신고는 있기 마련이다. 허위신고가 59건이나 됐다는 삼성전자의 해명이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륙 직전의 항공기에서 교환받은 갤럭시노트7에서 연기가 난 사건으로 모든 건 종료됐다. 삼성전자의 주장처럼 중국 ATL이 만든 베터리는 이상이 없다는 주장은 이 반증으로 박살이 났고, 배터리 문제가 아니라 제품 자체의 결함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도 피해자에게 삼성전자 쪽에서 잘못 보낸 문자를 보면 ‘최대한 시간을 끌거나 피해자가 협박을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대응을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것으로, 삼성전자는 결함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책임한 제품을 출시하는 장본인이 됐다. 또한, ‘어떻게 처음에는 배터리 결함이라고 확신했느냐?’는 물음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배터리를 완전 충전하는 시험을 몇 차례나 했는지 등 궁금한 사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출시할 때까지 이상이 없었는데 몰랐다’는 삼성전자의 시효 만료된 해명은 제품을 출시하는 내부 프로세스의 일정한 결함을 인정하는 선까지 갈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런 프로세스의 결함은 갤럭시노트7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삼성전자의 모든 스마트폰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내부 프로세스의 결함을 인정하는 것도 그리 마땅한 선택지가 아니다.

그럼 어떤 탈출구가 있을까? 얼마 전 한 무리의 선후배들과 저녁을 먹을 때 이런 얘기가 나왔다. “스마트폰에다 랩을 칭칭 둘러놓은 격인데 숨 쉴 구멍이 없는 상태에서 문제가 안 생기겠느냐?”는 거였다. 수심 몇 m에서도 방수가 되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할 텐데 그게 탈이 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갤럭시35도 방수가 됐는데 그건 왜 안 터졌나?”는 나름의 의견을 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갤럭시S5를 검색해 찾아봤다. 생활방수였단다. 그리고 일체형 배터리가 아니었다. 갤럭시노트는 일체형 배터리에 생활방수가 아닌 수중방수까지 된다. 어쩌면, 주요한 원인의 하나는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온실 효과에 의한 지구 온난화가 여러 예기치 않은 재해를 불러오는 것처럼, 손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하는.

그럼 더 근원의 원인은, 맹목적으로 편의성만을 좇아 2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바꾸도록 부추기는 상업성인가? 아마도, 없는 수요도 만들어내야 하는 삼성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원인은 아닐 듯하다. 삼성전자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또 있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 아직까지 실패에 가깝고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삼성그룹을 물려받는 이재용 부회장의 안착을 꾀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조급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그것이다. 원인을 선택한다니 말이 되겠냐고 하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선택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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