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고영주, 이하 방문진)에서 일어난 ‘필리버스터’ 사태에 대해 방문진 야당 추천 이사들이 이사장과 일부 여당 이사가 방문진을 ‘이념 전투의 장’으로 바꿔버렸다며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한 이사는 “이런 방문진이 왜 존재하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방문진 존폐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방송문화진흥회ⓒ미디어스

방문진 야당 추천 이사들은 21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이 같이 밝혔다. 유기철 이사는 “이사장과 일부 이사가 꾸민 드라마다. 우리가 고 이사장의 거취를 논의해보자고 제안한 것인데, (여당 이사가)죽자고 달려들어 회의가 정치판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이완기 이사도 “한 마디로 말해서 방문진이 이념 전투의 장이 돼버렸다. 다수를 앞세워 이념 선동의 장으로 바꿔버린 것”이라며 “방문진 역사상 이런 일이 없었는데 큰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20일 열린 방문진 정기이사회에서 고 이사장과 이인철 이사는 각각 45여분과 1시간40분씩을 할애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왜 공산주의자’인지, 그 까닭을 담은 원고를 낭독했다. 두 인사의 ‘필리버스터’가 끝난 뒤, 여야 추천 이사들은 고성으로 논쟁을 벌였고 여당 이사들은 결국 회의 도중 퇴장했다. 이로 인해 이날 회의는 정족수 미달로 파행됐다.

이완기 이사는 “(야당 이사진이)고 이사장 불신임 사유를 일일이 거론하며 수십 가지를 언급했는데, 공영방송을 관리·감독하는 이사 정도 되면 근거를 대서 반론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 이사장과 이인철 이사가 (입장 글을) 줄줄이 낭독했던 것은 (이사회에선)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이완기 이사는 “방문진 이사들은 회의에 한 번 나오면 30만원 씩 받는다. 또 자료조사비로도 많은 돈을 받는데, 공적 자금이 아깝다”며 “이번 사건으로 방문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존폐가 거론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강욱 이사는 “회의가 전개되는 모양새를 볼 때, 사전 계획을 한 것 같다”며 “(고 이사장이)사회를 보면서 제지도 하지 않고 (야당이사들이)얘기하려고 하면 방해했다. 워낙 명분도 없다보니 이런 방법을 고안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고 이사장과 일부 여당 추천 이사가 안건으로 올라온 ‘고 이사장 거취의 건’ 관련된 논의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유 이사는 이인철 이사가 고 이사장의 변론을 위해 인용 낭독한 극우 매체 글에 대해 “이인철 이사가 읽은 글에는 ‘노무현,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 발언이 포함돼 있었다”며 “고 이사장을 변론한다면서 관련 파문을 확산시킨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이인철 이사가 고 이사장의 매카시즘 발언에 편성해서, 방문진을 정치판으로 바꾼 것”이라며 “방문진 이사장의 진면목을 본 사건이며 고 이사장이 왜 이사장 자격이 없는지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6.10.10 kane@yna.co.kr

고영주 이사장 등의 행위는 여당 이사들이 보기에도 도를 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야당 이사는 이인철 이사가 약 1시간40분가량 극우 매체 글을 인용 낭독할 때 휴게실에서 일부 여당 이사들이 ‘의사진행 발언 신청해서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후폭풍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 등 우려를 표시하는 걸 들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야당 이사들은 다음 달 3일 열릴 정기이사회에서 ‘고영주 이사장의 불신임 건’을 안건으로 다시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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