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독선적인 국정운영의 잘못을 인정하라”, “청와대의 일방통행이 민심이반의 핵심이다.”, “청와대에서 당을 바보로 알고 있다.” “정당정치와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비민주적 행태를 개선하라.”, “기득권만 보호하려 말고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라.”, “국민이 헌법에 보장된 저항권을 행사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 말, 말, 말은 야당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아닌 지난 4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토해낸 말이다. 권부를 겨냥한 격한 말이 귀를 의심케 한다. 국민의 대표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납작 엎드려 청와대 눈치나 보는 그들이었기 하는 말이다. 작심한 듯한 역린(逆鱗)의 소리가 시국의 중차대성을 말하고도 남는다.

▲ 한국경제 6월 5일자 9면.
이명박 정부에는 국민이 없다. 오직 독선과 독주만 있고 복종과 굴종만 강요할 뿐이다. 어떤 정책도 국민적 합의를 위한 국민적 논의가 없다. 정책적 비판자나 정치적 반대자는 좌파라고 매도하며 탄압한다. 1년 전 국민적 분노가 촛불집회로 표출됐다. 하지만 경찰곤봉만 믿고 그 의미를 무시하다 집권당에서마저 선상반란이 일어났다.

첫 발단은 미국산 쇠고기 무차별 수입이다. 일본은 광우병 위험성이 적은 살코기만 수입한다. 검역주권 포기에 항의하고 국민건강권을 주장하는 소리에 향해 싸고 질 좋다며 미국 축산업자나 할 소리로 화답했다. 광우병을 걱정하는 소리를 괴담으로 치부하더니 색깔론으로 진압했다. 유모차를 끌고나왔다고 촛불을 들었다고 1년 가까이 쫓아다면서 2000명 이상 사법처리했다.

대운하 반대가 드세자 4대강 살리기라며 강바닥을 파헤치며 생태계를 파괴한다. 생활-공장폐수가 쏟아지는 샛강을 그냥 둔 채 강물을 맑게 한다니 누가 믿을까? 각종 토지이용에 관한 규제를 완화해 산림을 마구 훼손한다. 환경파괴를 아랑곳 않고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건설한다고 야단이다. 식량난 시대에 농지를 온전히 두지 않는다. 녹색성장을 타령하면서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한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촉발된 세계적 경제위기는 시장주의와 규제완화를 골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은 그것의 복사판이다. 그 대표격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경계철폐를 통해 태어나는 재벌은행이다. 자본시장통합법과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도 마찬가지다. 공기업 민영화는 공적영역을 사적자본한테 넘기는 독점체제의 강화인데 선진화라는 말로 포장한다.

자율과 경쟁을 말하는 이 정부의 교육정책은 산업과 시장에 근거한다. 그것이 자율형 사립고, 국제중, 일제고사, 영어몰입교육 따위로 나타난다. 귀족학교를 만들고 학교와 학생을 서열화하겠다는 것이다. 사교육비 부담이 출산율마저 떨어뜨리는 현실에서 학부모들을 절망케 한다. 노동정책도 기업위주의 시장논리에 매몰되어 대화와 타협은 모른다.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로 갈등만 유발하는 꼴이다.

언론특보 완장을 찬 낙하산을 투하해 방송계를 장악하더니 언론인 체포·구금을 일삼는다. 그것도 모자라 언론관계법을 개정해 거대재벌과 족벌신문에게 방송을 주려고 획책한다. 사이버모욕죄, 인터넷실명제 강화, 휴대전화·인터넷 감청을 기도한다. 여론독과점, 언론자유 탄압에 의한 민주주의 위기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국민적 분노가 커지자 경찰곤봉을 곤두세우고 집회·시위·표현·사상의 자유를 억압한다. 서울도심에서는 임전태세를 갖춘 전경의 무리가 시민의 통행마저 예사로 차단한다. 국민이 없는 정부가 국민을 이기려는 모습이다. 국민을 통제와 지배의 대상으로 알면 국민적 저항이 따른다. 암울한 시대에나 듣던 대학교수, 대학 총학생회의 잇단 시국선언에 귀를 열라. 폐부를 찌르는 외침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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