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광우병 촛불시위’로 인해 ‘집회 공포증’을 갖게 된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 참석자들에게 ‘불법 폭력시위’가 아닌 ‘평화시위’를 하라고 요구해왔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정부답게 합법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적 시위 방법 중 하나인 ‘3보1배’의 경우는 어떨까?
경찰은 3보1배가 “집시법에 위반되는 불법집회”라는 입장이다. 8일 경찰 관계자는 봉쇄의 근거를 묻는 질문에 “집단으로 플래카드를 들고 가니까 시위 아니냐”라고 답했다. 집시법에 따르면, ‘시위’는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라고 규정돼있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경찰이 3보1배 현장에서 보이는 태도는 매우 자의적이다. 3보1배를 진행하는 참가자들을 “불법집회”라며 막아서다 “길을 열어라” “평화롭게 진행하는데 왜 막아서는 것이냐” “인도로 가는데 왜 불법집회냐” “법에 어떻게 저촉된다는 것이냐”고 참가자들이 항의하면 그제서야 “의원들은 지나가도 된다”라고 말한다.
또, 의원들의 3보1배를 허용하다가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불법집회니 돌아가라”고 말한다. 7, 8, 9일의 경우 그 지점이 정부중앙청사 창성동별관 쯤이었고 10일의 경우 동아일보사 앞이었다. 경찰의 인내 한계선은 그야말로 “그때그때 달라요”다. 10일 경찰은 참가자들에 대해 “여러분들은 불법시위를 하고 있다”며 “의원들이 하는 것은 인정하겠으니 다른 분들은 시청광장으로 돌아가라”고 밝혔다. 경찰은 3보1배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발부하는 권한이 있는 것일까?
경찰에 대해 참가자들은 “야당 탄압이다. 길을 열어라” “고통스런 3보1배로 우리의 뜻을 전달하는 것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MB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소리쳐야 들을 텐가?” “또다시 국민의 뜻을 외면하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길밖에 남지 않았다”고 외쳤다. 3보1배 참가자 30여명을 400여명의 경찰이 둘러쌌다. 경찰은 민노당의 부르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채증 카메라로 열심히 참가자들의 얼굴을 찍었다. 기껏해야 무릎보호대뿐인 참가자들과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이 대비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6·10 민주항쟁 기념사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우리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며 “성숙한 민주주의는 독선적인 주장이나 극단적인 투쟁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이 자율과 절제, 토론과 타협을 통해 만들어가는 위대한 과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법을 어기고 우리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는 게 누구일까. 집시법에는 “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나와 있다. 지금 이 조항을 위반하고 있는 건 과연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