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일명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이하 블랙리스트)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한 목소리를 냈다.

▲18일 오전 광화문에서 진행된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이다” 기자회견

문화예술단체들이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조직한 ‘예술행동위원회’(이하 예술행동위)는 18일 오전 10시20부터 광화문광장 곳곳에서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라는 구호 아래 '예술 검열 반대 예술행동'을 진행하고, 뒤이어 11시 40분부터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는 문화예술계 원로와 문화예술단체 대표,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이 예술 검열의 사례와 문제점 등을 밝히고, ‘문화예술인 선언문’ 낭독이 이어졌다.

첫 발언자로 나선 백기완 시인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우리말로 하면 ‘학살 예비자 명단’”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예술인을 학살명단에 집어넣은 것은 안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같은 예술인 탄압은 유럽에서는 히틀러, 일본제국주의, 한반도에서는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때나 일을 법한 얘기”라며 “박 대통령이 선거 공약에 문화예술인 학살을 공약했나. 안했다. 그렇다면 선거 공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선거 때 거짓말 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다. 물러가라고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화가 박재동 씨는 “블랙리스트로 만화가 후배들은 분노에 들끓고 있다. ‘왜 나는 블랙리스트에서 빠졌는가’ ‘정부는 일을 똑바로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번 블랙리스트 사태가 터져나온 것은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다.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들어주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옥상미술연구소 임옥상 소장(서양화가)은 “이미 블랙리스트로 살아왔지만 이렇게 공개된 마당에 앞으로 블랙리스트 상위권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블랙리스트로 살다보니 정부 지원금 때문에 마음이 쪼잔해졌다. 스스로 비굴해져서 자포자기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저들이 원하는 것”이라며 “저들과 당당하게 싸워야 한다. 목숨 걸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임옥상미술연구소 임옥상 소장이 18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예술행동을 하는 모습

한국작가회의 정우영 전 사무총장(시인)은 예술검열 사례·문화행정파행 사례를 소개한 뒤 “박근혜 정부 아래 문화예술에 대한 탄압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라며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할 사람들은 문화예술을 활동을 하는 우리가 아니라 박근혜 정권과 그 하수인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근혜 정권과 하수인들이 사라지는 날까지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퇴진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모임’ 노순택 작가(사진가)는 1990년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태 명단을 거론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존경할만한 분들이 명단에 있다. 저는 그분들처럼 헌신한 일도 없는데 명단에 꼈다. 앞으로 분발하겠다”며 “정권이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을 수집했다면 저희 사진가들은 정권이 벌인 어치구니 없는 짓들을 사진으로 찍어 수집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연대 이동현 집행위원장은 문화예술의 검열 유형을 ▲이명박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시국적 사건을 다룬 문화예술표현물 검열 ▲정권 마음에 안 드는 야당 인사 관련 시국선언을 한 예술인들 검열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예술행위 검열 등으로 구분했다.

이 위원장은 앞으로 ▲‘예술 검열 사태’를 반대하는 글 언론 기고 ▲예술 검열 반대 만민공동회 조직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을 위한 ‘블랙어워드’ ▲문화행정파행을 공론화하는 포럼·토론회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술행동위원회 및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정부의 예술검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한 뒤, 예술검열을 반대하는 의미로 낭독문을 하늘을 향해 던지는 모습

예술행동위는 기자회견을 마치며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문화예술인들을 통제 관리해 온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만화 등 전방위에 걸쳐 지원금은 물론 창작, 출판, 제작, 전시, 공연 등의 발목을 비틀어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사태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우리가 맞닥뜨렸던 예술문화계 탄압과 본질이 같은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행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국회 청문회를 개최하고, 문화예술위원장 사퇴와 블랙리스트 작성 및 운용자의 처벌도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