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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들만 가진 독특한 말버릇[김주완의 지역에서 본 세상]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김주완/경남도민일보 기자 | 승인 2009.06.08 19:20

직업이 기자인 데다 시사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전국에 아는 사람이 꽤 된다. 강의나 토론회, 또는 각종 회의를 통해 그런 분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서울사람들만이 가진 독특한 말버릇을 알게 됐다.

서울사람이 마산에 와 있을 때 휴대전화를 받으면 한결같이 “나 지금 지방에 내려와 있거든”이라고 한다. 광주나 부산이나 대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여기 마산인데”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지방’에 ‘내려’와 있다고 한다.

   
  ▲ KTX 매거진 @김주완  
 
반면 마산이나 광주·부산·대전사람은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나 역시 다른 지역에서 전화를 받으면 “여기 서울인데” 또는 “여기 경북 문경이거든”이라고 정확히 지명을 댄다.

물론 ‘내려간다’는 말은 위도상의 개념으로 이해해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사람들이 김포나 고양, 파주, 의정부, 가평, 홍천, 춘천에 갈 때는 ‘올라간다’는 표현을 쓰는지 궁금하다.

얼마전 서울 다녀오는 길에 KTX 객실에 비치된 월간잡지를 읽던 중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부모님 모시고 오빠네 가족, 동생네 가족 모두 함께 여행을 떠나려 한다면 벽초지문화수목원이 제격이다. 우선 경기도 파주에 있으니 이동시간이 짧아 부담이 없다. 혹 누가 급한 일이 생겨도 늦게라도 달려올 수 있지 않겠는가.”

황당했다. 경기도 파주에 있으니 이동시간이 짧다고? 한국철도공사가 발행하는 < KTX매거진 >이라는 잡지는 원래 서울지역 독자만을 배포구역으로 하는 건가? 나는 마산에 산다. 그런데, 경기도 파주까지 이동시간이 짧아 늦게라도 달려올 수 있다니….

서울 인구가 많기 때문이라고? 5000만 중에 고작(?) 1000만이다. 경기도와 합쳐도 50%가 안된다. 물론 그것도 지나치게 많은 것이긴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머지 절반이 넘는 대한민국 사람은 ‘열외 인간’인가?

어쩌다 <KTX매거진>을 예로 들었지만, 이런 사례를 찾자면 끝이 없다. 요컨대 서울사람들 눈에는 마산이나 광주나 대전이나 모두 ‘지방’으로만 보인다는 것이고, 그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말글살이에서 그냥 무시해도 좋을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이건 진보나 보수나 하등 차이가 없다. 평등을 외치는 진보인사들도 정작 지역간 불평등이나 서울 이외의 지역을 모두 낮춰보는 인식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개념이 없다. 계급모순, 분단모순을 떠드는 사람은 있어도 지역모순을 거론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 봉하마을의 신문 @김주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기간 중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 미디어오늘 >의 최훈길 기자는 ‘봉하마을엔 경향·한겨레만 있다’는 기사를 썼다. 그건 왜곡보도였다. < 경남도민일보 >와 < 부산일보 >, < 국제신문 > 등 지역일간지들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기사를 읽고 동료인 김훤주 기자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했더니, 김 기자가 < 미디어오늘 >에 항의성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최훈길 기자의 변명이 걸작이었단다. ‘(지역신문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이후 그 기사는 약간 수정됐다.) 그 얘길 듣고 서울기자의 눈에는 지역신문이 신문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지역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울사람들의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엽기사건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요즘 ‘좌파정권 10년’이니 ‘꼴통’이니 하는 발언으로 서울언론의 눈길을 끌어보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는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참 애처롭게 보인다. 그런 엽기적인 발언 말고는 서울언론에 이름 석자 언급이라도 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고소영 정부’와 ‘강부자 정권’ ‘조중동의 여론독점’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정작 서울 이외 지역은 식민지로 취급한다. 황석영이 1989년 북한에 다녀와서 쓴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북한에만 사람이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지역에도 사람은 살고 있다.

   
   
1991년 진주에서 일어난 한 시국사건이 전국 언론에 의해 완벽하게 왜곡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것을 계기로 지역신문 기자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진주신문>과 <경남매일>을 거쳐 6200명의 시민주주가 만든 <경남도민일보>에서 자치행정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역현대사와 언론개혁에 관심이 많아 <토호세력의 뿌리>(2005, 도서출판 불휘)와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2007, 커뮤니케이션북스)라는 책을 썼다. 지금의 꿈은 당장 데스크 자리를 벗고 현장기자로 나가는 것이다.

김주완/경남도민일보 기자  kimgij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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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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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완 2009-06-10 10:11:15

    고맙습니다. 사실 글 보내놓고, 못난 촌놈의 투정으로 비칠까봐 은근히 걱정했거든요.   삭제

    • 모모 2009-06-10 02:25:13

      비록 댓글은 달지 않더라도 김 기자님 글 읽은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을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듣는 사람 보는 사람 한 명도 없는 것 같아도 말이죠. 국가 정책들 가만 들여다 보면, 넓지도 않은 국토, 절반 나뉜 것도 모자라, 서울이라는 좁은 구역안으로 나머지 4천만도 유인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듭니다.   삭제

      • 김주완 2009-06-09 20:36:29

        고맙고도 고맙습니다. 하하   삭제

        • 양문석 2009-06-09 20:05:10

          헷갈려...지적하신 구구절절...지역에서 참 많이 듣는 술자리 화제이나...이렇게 글로 만나니 또 색다르게 느껴지네요...그렇죠...한국의 여러가지 전선이 있으나...지역에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영호남의 갈등보단 오히려 서울과 비서울지역의 갈등이 더 굵고 무겁게 보입니다...문제는...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에 많은 문제가 묻혀버리는 거죠...끊임없이 문제의식있는 이들이 지적하고 또 이렇게 반성하면서 바뀌는 것 아닐까요...저도 이 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삭제

          • 김주완 2009-06-09 19:25:12

            헉! 두 분씩이나 공감을...
            정말 고맙습니다.   삭제

            • 선인장 2009-06-09 18:46:00

              지역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하기는 진보/보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경제,환경,교육,여성 등등 대부분의 문제에서 '지역'이 그것을 해결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강준만교수의 "지방은 식민지다"를 읽고 나니 더욱 뼈저리게 느껴지더군요.   삭제

              • 김주완 2009-06-09 18:02:03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분이라도 이렇게 공감해주셨다면 글을 쓴 보람이 있습니다.   삭제

                • 若葉 2009-06-09 17:02:21

                  지금 하는 일이 계기가 되어서 어느 지역신문사를 방문하고, 기자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이후에 지역언론, 지역신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막상 그 전에는 지역신문에 대해서 별관심이 없었던 것이죠. 또한 서울이 아닌 모든 지역을 '지방'이라는 한 단어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죠. 제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왜곡된 시선을 어서 거둬들여야 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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