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금만을 섭취하며 서울 대한문 앞 광장에서 잠을 청한 지 벌써 5일째. ‘이명박 정부의 국정 기조 전면 변화’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간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기력이 없어 보였지만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에도 지나가는 시민들은 그에게 “힘내라”고 응원했고, 그는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웃음과 악수로 답했다.

▲ ⓒ곽상아
“힘들긴 하지만 많이들 격려해 주셔서 잘 버티고 있다. 네잎클로버에서 민들레까지 주고 가신다”며 함박 웃음을 짓는 그는 현 시국에 대해 “87년 6월 항쟁으로 대한민국 사회는 말할 자유와 모일 자유, 사법권 독립 등을 확보해냈는데 이 3가지가 모두 무너져버렸다. 민주주의가 사실상 파괴된 것”이라며 “다시 6월 항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바꿔내지 않으면 대한민국에는 정말로 민주주의가 부재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하필이면 단식 장소로 대한문 앞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목전에 시청광장이 있지만 정부가 자의적으로 막아서고 있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새로운 광장인 이곳에서 반드시 시청광장을 열겠다는 심정으로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며 “모든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착만으로 이곳에 오는 것은 아니다. 전직 대통령이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붕괴된 현 상황에 시민들이 공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용산참사 유가족이 찾아와 이정희 의원을 응원하는 모습 ⓒ곽상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경찰버스로 시청광장을 막았던 정부는 높아가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 4일 봉쇄를 풀었다. 하지만 정부는 ‘언제든 다시 닫을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고, 오는 10일 열릴 예정인 ‘6·10 범국민대회’에 대해서도 ‘집회 불허’ 방침을 통보했다. 정부의 인질이 돼버린 ‘광장’을 목전에 두고 분노를 삼키고 있는 그는 “곧 들어설 경찰버스를 몸으로 막겠다”고 한다.

‘다시 6월 항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87년과 2009년은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87년에 저는 대학교 1학년이었어요. 4, 5월 되면서 저도 거리로 나왔는데…. ‘아무리 부딪쳐도 안 될 거야’라는 체념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부정이 긍정으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했지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지 1년만에 다시 ‘해도해도 안되는구나’를 절실히 느끼게 되는 절망의 시점으로 돌아와 버렸지요.”

그는 “87년에는 야당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범국본이 구심점과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시민단체도 주춤하고 있고 야당에도 강력한 구심점이 형성돼있지 않다”면서도 “국민의 열기만큼은 그때와 비슷하거나 더 높다고 생각한다. 구심은 없지만 작은 힘들을 엮어서 같이 해나가면 대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한다.

▲ 개방된 시청광장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는 모습 ⓒ곽상아
‘장외 단식보다 국회 내에서 투쟁해야 한다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국정조사 한다고 해서 청와대가 근본적으로 바뀌겠느냐. 검찰 개혁한다고 해서 <PD수첩> 수사를 멈추겠느냐”라고 되물으며 “지금은 개별 법안들의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인 민주주의 파괴 상황이기 때문에 거리로 나오는 게 맞다고 본다”고 답했다.

▲ 한 시민이 이정희 의원에게 격려의 글을 남기고 있는 모습 ⓒ곽상아
그는 “이쯤되면 야당 의원들이 다 거리로 나와서 시민들에게 ‘우리가 책임질 테니 같이 가자’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으며 “책임있는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경찰버스를 몰아내고, 주저앉은 시민들을 다시 일으켜세워야 한다. 그게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야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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