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11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시작될 일상을 위해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이 팽배한 시각이다. 어떤 프로그램이 됐든 이 시각의 편성은 잔혹하고 또 무모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매주 <김제동의 톡투유>를 기다리는 것은 이 험한 세상에서 매번은 아닐지라도 진짜 위로를 얻는 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주는 오픈닝과 거의 동시에 가슴이 짠해져서 뜨겁게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 시작해야 했다. 매주 톡투유에는 이야기 주제가 정해지지만 시작할 때에는 항상 다른 이야기로 청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또 온도를 높이는 김제동이다. 이번 주에도 청중들 사이를 뚫고 등장한 김제동은 어떤 것을 배우기가 정말 힘들었는지 물었다.

JTBC 예능프로그램 <김제동의 톡투유 - 걱정 말아요 그대>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번쩍 든다. 이것부터가 참 신기한 풍경이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정말 대중 앞에 나서서 말하기를 꺼려한다. 심지어 기자 간담회가 열려도 사회자는 질문 얻기 위해 정말 진땀을 빼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이제 <김제동의 톡투유>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누구도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도, 꺼려하지도 않는다. 명색이 김제동의 토크쇼인데, 김제동의 말을 듣고자 오는 것이 아니라 김제동에게 말을 하려고 오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것이 물론 세상에 없는 김제동만의 토크쇼인 것도 사실이다.

JTBC 예능프로그램 <김제동의 톡투유 - 걱정 말아요 그대>

어쨌든 그러다 먼 뒷자리에서 한 소녀가 손을 들었다. 그 소녀는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많은 사춘기 즈음의 소녀들이 그렇듯이 이 소녀도 외모 콤플렉스도 있는데 아마도 그것이 낮은 자존감의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소녀와 대화를 나누던 김제동이 불현듯 소녀를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로 나오라고 권했다.

소녀 청중이 다가오자 김제동은 방금 전에 소녀가 앉았던 자리를 보라고 했다. 그 빈자리를 보라고 했다. 누군가 앉아 있었던지 혹은 원래 주인이 없었던지 간에 빼곡한 사람들 속에 빈 한 자리는 분명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소녀도 뭔가 느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제동은 소녀를 다시 자리로 돌려보내면서 말을 이어갔다.

“사람 하나 턱 들어오니까 자리가 훤하죠? 그럼 네가 그런 사람이야. 그렇게 있으면 되는 거야”라고 하면 스스로를 못났다고 하면 안 된다고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타일렀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뜻임을 어린 소녀라고 모를 리 없었고, 소녀는 울컥 눈물을 터뜨렸다.

JTBC 예능프로그램 <김제동의 톡투유 - 걱정 말아요 그대>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소녀를 통로로 불러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가 비어 있는 사소한 풍경의 의미,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던 소녀의 조용한 존재의 의미를 말해준 것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도대체 그 순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너무도 신기하다. 그것은 지식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는 자가 평소에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사색하는지에 대한 증명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김제동이 세상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닐 수는 있겠지만 위로의 기교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그 기교는 다름 아닌 마음일 것이다. 마음 없이 하는 말과 행동이라면 이런 진한 감정을 받을 수 없다. 그렇게 엠씨가 아닌 청중들에게 듣고, 김제동에게서 또 듣다 보면 감동이나 위로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톡튜유인 것이다. 그러니까 늘 게스트들이 이구동성 하는 것 없이 얻어만 간다는 소감을 남기게 되는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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