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들로 촉발된 시국선언이 중앙대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연세대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시국선언으로 이어지더니 이제는 종교단체 및 시민사회단체들의 시국선언들도 줄을 잇고 있다. 청소년들 역시 시국선언 확산에 합류했다.

이러한 시국선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촉발됐지만 그 내용에는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민주주의의 몰락과 소통의 부재에 대한 문제 등을 전반적인 부분에서 고루 지적하고 있다.

▲ 한겨레 6월 4일자 1면.
그러나 이러한 시국선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발언하는 것도 좋은데 왜 ‘시국선언’의 형식이냐는 사람들부터 그 내용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시콜콜하게는 맞춤법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고 또 막무가내로 그저 ‘싫은’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또라이교수’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과연 시국선언을 비판하는 이 사람들의 논리는 뭘까?

대학교수들이 ‘시국선언’이라는 형식을 취하기엔 상황이 적절치 않다?

지난 4일 MBC <100분토론>에 패널로 참석한 이재교 인하대 교수 역시 “‘시국선언’이라는 건 언로가 막혔다던 지 어떤 억압이 되어서 표현을 잘 못하는 상황에서 지식인들이 용기를 내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과연 현 상황이 국민들이 말을 못하고 억압된 분위기인가”라고 되물으며 시국선언의 형식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또한 “다른 경로로 자기 의사표현을 하면 되는 것이지 ‘시국선언’이란 극단적인 강경한 방법을 굳이 선택했어야 했느냐?”고 물었다.

이 주장을 역으로 풀이하면 “억압이 되어서 언로가 막혔다면 ‘시국선언’을 해도 된다”는 말? 언로가 막히지 않았다는 이재교 교수는 정말 딴나라에서 온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들리자마자 정부가 한 일은 서울광장을 닫는 일이었다. 30여대의 전경버스를 이용해 차와 차 사이 5~10cm로 촘촘히 광장을 막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전의경들을 배치해 감시했던 정부다.

어디 오프라인뿐이랴.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공청회에 참석한 전 NHN 모니터 담당자는 “회사 측으로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글에 대한 지침을 받았다”며 ‘쥐박이’ 정도의 글을 삭제했었다고 고백했다. 그 뿐인가. 명예훼손 여부가 판가름 나기도 전에 정당한 비판의 글들은 인터넷 상에서 ‘임시조치’라는 이름으로 삭제되고 있고 이른바 ‘사이버모욕죄’ 등 언론관계법은 6월국회의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것이 자명한 상황이다.

집회의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단체를 가려가며 집회를 막고 있고, 기자회견을 열어도 ‘정치적 구호’를 외친다며 연행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가 말하는 ‘언로’가 막힌 것이 아닌가. 또, 설사 ‘언로’가 막히지 않은 상황이라 한들 ‘시국선언’을 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 그것이 관건이다.

시국선언에 왜 대통령 사과가 포함되는가?

조선일보는 어제 4일 사설에서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에 “정부 사죄를 요구했다”며 “대한민국 지성을 길러내는 서울대 교수들조차 죽음은 모든 걸 덮어버리고 만다는 도덕적 법적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은 “노 전 대통령 사건의 또 다른 부분은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이런 돈거래를 밝혀내는 수사 과정이 정상적이었냐, 무리를 범했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정확한 지적 후에 대통령의 사과와 검찰 수뇌부의 인책을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이다.

▲ 조선일보 6월 4일자 사설
이러한 비판은 <100분토론>의 패널들 중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 교수와 이진곤 국민일보 논설고문과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홍성걸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사과를 하라는 것은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는 수사하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하는 의혹이 있다면 지금부터 조사를 해서 명확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라고 대통령에게 사과하라는 것은 성급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진곤 논설고문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왜 사과를 안 하냐고 몰아붙일 단계가 아니다”라며 “야당에서 특검을 하자고 하는데 그것을 통해서 ‘정치보복’, ‘표적수사’라는 충분한 근거가 밝혀졌을 때에는 사과를 해야겠지만 아직 충분히 입증한 단계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시국선언’은 그야말로 ‘시국’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시대상황에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있을 때 우려를 표명하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선언이란 말이다.

이번에 발표된 시국선언문 역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언급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에는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또한 훼손되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에서 보듯이 현 정권은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혔다”며 “문제는 정치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적 원칙의 실천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사회 전반에서 후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노 전 대통령의 조문행렬이 비단 ‘애도’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면서 국민적 화해의 기회를 잘 살려주길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과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과만이 아닌 한국 전반에 걸쳐 있는 위기에 대한 ‘사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한 이해일 것 같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 교수는 <100분토론>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치보복’, ‘표적수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공권력의 행사로 전직 대통령이 퇴임한지 짧은 시간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에서 온 것”이라면서 “그런 결과적인 부분에 대해서 검찰권이 속한 행정권의 수장 지위에 있는 대통령이 아무런 표명을 안한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국가와 국민 대표기관으로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시국선언에 이념적 측면이 가미된 것은 문제?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시국선언문에서 ‘이념’적인 부분이 들어간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100분토론>에서 한 시국선언문에 ‘신자유주의 문제’가 포함됐다며 “노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당시에도 신자유주의 문제가 제기됐었다”면서 “지금 상황에 신자유주의 문제까지 얘기하면 주제가 번져버리는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 사회의 지식인으로써 한 템포 늦춰 생각을 해보고 얘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입장을 표했다.

▲ 중앙일보 6월 5일자 42면.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두고 ‘신자유주의’를 빼고 설명이 가능한 일 이기나 할까? 이것은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난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꿔야 한다는 다수의 국민들의 의견과도 같다. ‘신자유주의 문제’가 포함됐다고 해서 우려를 표하는 것은 어쩌면 ‘신자유주의’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신 교수의 자체적 검열로서의 ‘기우’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미 일반 국민에게 격동되고 있다

“명색이 대학교수들이 작성한 선언문인데 ‘베인’으로 해야 할 것을 ‘베어진’으로 틀리게 표기한 것은 오히려 작은 문제다(그들에게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큰 문제다)”라며 “‘대안’은 없고 균형감각과 종합적 시각이 결여돼 있다”던 중앙일보 노재현 논설위원은 “적어도 시국선언문이라면 일반 국민을 격동(최소한 공감)시켜야 하고, 읽는 상대방이 ‘아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들에게 배운 학생들은 배운 대로 행한다고 ‘시국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또 모르긴 모르지만 일반 국민들은 격동되어 시국선언문이 줄을 이어가고 있으니 발표된 시국선언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시국선언은 이미 한국사회를 뛰게 만들었다.

읽는 상대방이 ‘아파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읽는 사람의 ‘자질’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국선언문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모르고, 읽었다면 아파했을지 아니면 화를 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앞으로 지켜보면 알 일이다. 시국선언문에서 요구한 것들이 이뤄지는 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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