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민주주의가 어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실제로 그렇게들 말했었다. 오히려 자연스레 정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에 민주주의가 도달했음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사람도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젠장, 그런데 공안정국이 도래했다.

반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이민을 가야겠다는 사람도 주변에 여럿 있었다. 대개 서울사람들이었다. 이명박 시정 4년 동안 유독 못 볼 꼴이 많았다. 긴 이야기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시민의 필요에 따라 쓰임새가 결정되던 보자기 광장이었던 시청 광장은 파란 잔디가 깔린 시장님의 정원으로 ‘개발’되었고, 청계천 복원은 토목시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아닌 ‘신개발주의’의 서막을 여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버스와 중앙차선의 색깔과 같은 비본질적 시각물들이 대중교통의 공공재적 성격과 같은 본질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이다. 행정이 시각에 복무하는 낯선 변모가 ‘추진력’이란 이름으로 환원되었고, 또 그 변모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이 세련됨으로 수용되던 불편한 풍경이었다. 4대강 복원이 생태 문제이고, 녹색 넥타이를 매고 저탄소 녹색성장을 추진하겠다는 지금은 어떤가?

아무리 그래도 서울은 한 지역일 뿐이다. 서울시장 이명박이 단지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면, 대통령 이명박은 마주하기조차 ‘불쾌’한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문장을 쓰면서 한 번 주춤하게 될 만큼 표현의 자유는 야박해졌다.) 홍상수 감독은 괴물 되지 말자고 했는데, 웬걸 누군가의 말처럼 이건 괴물도 아닌 양아치이다.

▲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전직 대통령이 서거하고, 광장이 봉쇄되었지만 이명박은 홀로 독야청청하다. 비판하면 배제하고, 비판자는 기억했다 반드시 보복한다. 상황을 수습하기는커녕 아예 격파하는 무대뽀 정신으로 나라를 이끌고 있다. 마구잡이로 ‘쪼인트’를 까대는 건설현장의 십장 같은 소갈딱지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언제나 내용보다는 외형, 민주적 과정보다는 독선적 결과를 강조하고 또 집착했던 인물이다. 그에게서 가장 거리가 먼 개념을 꼽자면 아마 ‘합리성’일 것이다.

이명박 시대는 합리적 원칙이, 합리적 사고가, 합리적 행동양식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다. 국민장 기간이던 지난 28일,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들이 시청광장에서 시민추모제를 열기로 했을 때, 정부는 광장 여는 것을 단호히 거절했었다. 광장을 막은 것뿐만 아니라 방송차의 진입 자체를 막았다. 답답한 상황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참여정부 시절에도 2번이나 감옥에 갔던 한 활동가를 만났는데, 달관한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정도도 안하면, 이명박이 아니지.” 우린, 지금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체념이 모든 것을 압도한 시대 말이다.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하는 것을 ‘놈현스럽다’고 했었다. 국립국어원 신조어에까지 포함됐던 말이다. 그렇다면, ‘명박하다’는 무얼까? 지금도 사전에는 운명이나 팔자가 기구한 것을 일컬어 명박하다고 쓴다. 그 의미 그대로? 그렇다면 누가? 누구긴 나와 당신 바로 우리 모두이다.

어제는 참으로 명박한 하루였다. 한나라당은 언론에 알려진 지도부 사퇴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전면적인 쇄신을 거부했다. 청와대 쇄신은 묻지도 않을 태세이다. 사과 할 것도 없고, 사과도 않을 것이니 어림 반 푼어치 없는 짓도 이제 그만하자는 말이다. 청와대는 민심수습 조치라며 종교계 어르신들을 만났는데, 듣기 편한 격려만 잔뜩 들었다고 한다. 기자회견하려다가 잡혀가는 참상을 겪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은 5월 13일부터 6월 22일까지 서울 시내 주요 장소 100곳에 집회 신고를 했지만, 딱 1건만 허가가 났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와 같은 이제는 고급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가치들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읊기도 입 아프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치 보복이라는 가치 평가도 강조하진 않겠다. 역시, 문제는 합리성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막는 비합리적 법치, 내 편 네 편 나누고 따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배제하는 비합리적 사고,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일말의 윤리적, 정치적 책임마저 깔아뭉개는 비합리적 행동양식이 문제인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달관하고 또 체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불굴의 뻔뻔함 말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의 울화를 한 토막만 더 말하는 것으로 끝내겠다. 청계천 사업본부장과 서울시 부시장을 지냈던 양윤재씨가 청계천 관련 비리로 구속되었을 때도, MB의 남자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하던 때, 경향신문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는 성추행을 저질렀을 때도 그는 사과는 고사하고 끄떡도 않았었다. 당시, 그런 그를 두고 공공 부문에서 가장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아예 공공 부문 자체가 명박스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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