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정(失政)과 족벌언론의 횡포로 말미암아 터져나오는 시국선언에 대한 폄훼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청와대 핵심관계자 : “서울대 교수가 전부 몇 분인지 아시나(요)?”
기자(들) : “124명이요.”
청와대 핵심관계자 : “1700(여)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단어와 조사 등이 정확하진 않지만, 지난 3일 춘추관 출입기자들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사이에 오간 질의응답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4일자 사설에서, 성명을 낸 124명은 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에 다녀온 교수들이라면서 “현재 서울대 전체 교수는 1786명”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선언을 주도한 교수들은 5년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서울대 교수 시국성명 때도 중심에 섰었다”고 덧붙였다.

▲ 조선일보 1975년 3월14일자 1면 사설
34년 전과 비슷한 이치다.

조선일보는 1975년 3월14일자 1면에 게재한 ‘우리의 견해 2’라는 사설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민주회복국민회의 명의의 성명서를 비난하면서, 두 단체에 속한 “함세웅 신부가 개인적으로 두 단체의 전체의사를 도용하였거나 그 중 소수가 다수에게 강요함으로써 만들어진 성명서로 보고 주로 함세웅 신부를 향하여 연민의 정을 가지고 말하려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은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을 주창하던 32명의 기자들을 ‘가차없이 처단하겠다’면서 해고했고, ‘우리의 견해 1’이라는 사설을 통해 자사 기자들의 언론투쟁을 그저 철없는 처사란 식으로 치부해버리자 3월13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민주회복국민회의가 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각각 발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성명이 나오자 분개한(?) 조선일보는 다시 14일자 사설에서 사제단의 주요인사이자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이었던 함 신부 개인을 걸고넘어지면서 성명서 내용을 폄하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설은 또한 “자기의 비위에 맞지 않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독재권력과 결부시키려는 단순논리도 사고(思考)의 나태를 뜻하는 것이다” “회사의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직무를 거역한 사원을 사규에 의하여 처리한다고 독재권력의 음모와 관련 되었다니 곡해도 유만부동이다” 등으로 반박했다.

위는 2009년 6월 서울대와 중앙대 등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김동길 교수의 발언과 유사하다. “무슨 근거로 대학 교수들이 숫자도 적은데 모여서 노무현씨 자살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문제 있다고 하느냐?”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계 지도자들은 4일 청와대 오찬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현 시국에 관한 제언을 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가 “부정부패를 단속하는 일이 마치 큰 잘못인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는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이 나라 역사 속에서 발표된 시국선언들을 깡그리 평가절하 했을까? 그렇지 않다.

자 이제,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조선일보의 9월10일치 사설을 검색해본다.

“시국선언은 1970년대 유신 시대와 80년대 군부 독재하에서 정권에 비판적인 원로들과 지식인들의 유력한 현실참여 방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여당 그리고 친여 세력들은 (전직 국무총리 등) 원로들의 시국선언 내용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시국선언의 자구(字句) 하나하나에까지 100%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지금 위기에 처했다는 절박한 상황 인식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은 2004년 9월13일자 사설이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원로들을 향해 ‘늘 그런 분들 아니냐’면서 ‘반(反)개혁 반민주적 기득권 세력에 기생해 영화를 누리던 분들’이라고 비웃기까지 하는 데선 어른 없는 가정에서 보고 배우지 못하고 자란 막된 인간의 불량기까지 느껴질 정도다.”

“원로들이 바로 이런 사태를 걱정한다는데 송구스럽다며 몸가짐을 바로잡기는커녕, 눈을 부라리고 상스러운 말대답이나 하고 나서고 있으니 집권당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보고 큰 사람들인지 그 근본을 모르겠다.”

당시의 시국선언문엔 “지금 이 나라는 친북, 좌경, 반미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거리의 사람들 사이에선 ‘아직 적화통일은 아니 되었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공산화되었다’는 무서운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2009년 시국선언에 대해, 일부 보수인사들은 “노무현 자살을 마치 순례자처럼 만들려는 대학교수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한테 애들 교육을 맡기니 애들이 전부 노사모 또라이처럼 변해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또라이?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된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또 또라이님들이 슬슬 기어나오시는 듯해서 심히 유감이다. ‘위로의 변’이라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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