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심상치 않다.

어제(10일) MBC에서도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책임이 있는 만큼 이명박 대통령이 유족과 국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58%로 그렇지 않다는 39.7%보다 20% 가량 높은 수치를 보였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건 본인의 책임이 크다는 응답이 36.6%, 외부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의견은 60.8%나 됐다.

▲ 지난 6월3일 MBC ‘뉴스데스크’ 여론조사 결과 ⓒMBC
외부의 압박에 있어 이명박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는 답은 39%, 검찰 27%, 언론 21% 순이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가 정치보복 성격이 강하다는 의견도 62.5%로 압도적 수치를 보였다.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있어 외부 압력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1위로 지목했다. 무려 39% 수치나 보였고 이는 2, 3 순위와도 큰 차를 나타냈다.

여론조사 결과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정치보복’에 의한 것이란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인물에 대한 책임론이 1위를 차지하게 된 배경은 뭘까? 국민들은 어떤 지점에서 현 정권의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는 설문조사 결과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를 기점으로 역으로 돌아볼 문제다.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한몫했으나 빠져있는 권력, ‘국세청’

▲ 6월 4일 경향신문 1면 기사
지난 3일 임채진 검찰청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임 청장은 사표를 내는 그 순간까지 검찰수사는 정당했며 검찰청을 떠났다. 검찰수사는 정당했다는 임 총장의 주장은 ‘정치보복’이었다는 국민들의 사고와 간극이 커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책임을 두고 검찰과 언론의 책임이 동시에 대두되는 가운데, 국세청 내부 게시판에는 ‘나는 지난여름 국세청이 한 일을 알고 있다’라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국세청의 책임론을 제기한 글이 게시됐다 하루 만에 삭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2일자 경향신문에 의하면 한 국세청 직원이 지난달 28일 “전직 대통령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게 내몰기까지 국세청이 단초를 제공했다”면서 “지금이라도 국세청 수뇌부는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 착수 이유, 관할청인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닌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조사를 한 이유와 한 전 청장이 ‘왜’ 대통령에게 직보(직접보고)를 했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의 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까먹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넣고 박연차 태광실업의 사건지도를 다시 그려보면 검찰수사의 ‘정당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따져보니 국세청, 의심스러운 것이 한두 건이 아니다

검찰은 박연차 수사에 있어서 극도로 조심스럽게 피해가는 듯 이상한 징후를 보인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한상률 전 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다.

박연차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로비 대상으로 지목된 이상득 의원에 대해 검찰은 ‘실패한 로비’라며 수사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런 이상득 의원에 대한 의혹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국세청 세무조사를 그가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득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 의혹 또한 그대로 묻혔다. 이것은 국세청 게시판에도 올라온,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 시작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혹과 맞닿아 있는 점이기도 하다. 또한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촛불로 인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최하를 기록하고 있던 2008년 7월에 이뤄진 점 역시 의혹을 부추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됐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대목이다.

왜 태광실업의 관할인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닌 서울지방국세청에서 그것도 ‘조사4국’에서 세무조사가 이뤄졌냐도 풀리지 않은, 그러나 반드시 풀어야 할 의문이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조사4국’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곳이다. 한겨레는 “서울청 조사4국은 심층·기획조사만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사실상 청장의 하명을 받아 움직이는 ‘별동대’로 불린다”고 기록했다.

그 어마어마한 곳에서 재계 서열 620위권의 지방 소재 신발업체인 태광실업을 그것도 4개월이 넘는 기간에 걸쳐 탈탈 조사한 것이다. 이것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바로 한상률 전 청장이다.

▲ 6월 3일 한겨레 4면 기사
그리고 이 조사 결과를 한상률 전 청장은 민정수석실을 거치지 않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독대해 보고했다고 알려졌다. 이 때 등장한 것이 ‘한상률 리스트’다. 지난 4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한상률 리스트’의 존재를 두고 박연차 리스트가 아닌 “한상률 리스트 보고 내용을 토대로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문이 제기된 것은 당시 한상률 전 청장의 보고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이 검찰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는 의혹이 함께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 한상률 리스트가 존재한다면 박연차 리스트보다는 더 많은 인사들이 포함됐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 후 한상률 전 청장은 2009년 초 인사교체 시에도 유임됐으나 그림로비 사건으로 자진사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한상률 전 청장이 미국으로 떠난 후다. 그리고 박연차 회장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상률 전 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소환조사까지는 필요없다는 입장이었다.

검찰수사 진정성 얻으려면 한상률 청장 조사부터…

▲ 1월 20일자 경향신문 16면 사진기사. 한상률 청장 사퇴 사진
그랬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해야 한다며 천신일 회장에 대한 수사만을 종용했으나 복병은 따로 있었다. 한상률 전 청장.

임채진 검찰청장의 사퇴로 검찰내부가 뒤숭숭하단다. 박연차 회장에 대한 수사의 큰 가지였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무리한 수사였다는 비난을 받아온 검찰은 비난을 잠재우기 위한 카드로 천신일 회장의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기각했다. 맥이 풀릴 만하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책임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때문일까? 박연차 회장에 대한 수사를 빠르게 종용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박연차 회장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고 있고, 주요 피의자와 참고인들 역시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진정 검찰이 수사의 정당성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한다면 수사를 이대로 멈춰서는 안된다. 만약 이대로 멈춘다면 그것은 수사가 정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검찰은 더 이상 국세청 문제를 짚지 않고서는 수사의 정당성을 언급할 수 없게 된 것 또한 분명하지 않은가.

“검찰수사는 정당하다”는 공허한 외침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마지막 충성이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지휘했던 한상률 전 청장을. 그것이 마주하는 것이 ‘진짜’ 살아있는 권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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