樹慾靜而風不止.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나무가 이상득 의원일까? 아니면, 그치지 않는 바람이 이상득 의원일까?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으로 사실상 국정 2인자로 군림해온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3일 전격적으로 ‘2선 후퇴’를 선언했다. 한나라당 쇄신위원회가 언급한 ‘한나라당의 이중권력인 형식적 권력과 내용적 권력’ 중 내용적 권력인 이상득 의원의 ‘비공식 권력’.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떠오르는 시점에서, 이상득 의원은 ‘정치적 몰매’를 피하기 위해 ‘정치현안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2선 후퇴’를 의미하는 알 듯 모를 듯한 정치적 수사로 언론을 탄다.

이상득 의원이 3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대통령 친·인척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철저히 노력해 왔지만 최근 저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정치 현안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경제·자원 외교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정치 관여 중단’을 공개 선언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그는 “앞으로 당과 당무, 정치 현안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대통령의 친·인척으로서 더욱 엄격하게 처신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또 “최근 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개인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근거없는 얘기도 많다. 이로 인해 많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억울함도 토로했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든지 상왕(上王)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이상득 의원. 그가 과연 樹慾靜而風不止의 나무였을까. 역사가 증명하리라 믿는다. 아니 그동안 정황뿐만 아니라 이미 밝혀진 것만 봐도 그는 나무였기보다는 스스로 바람이었다. 하지만 이상득 의원은 스스로 바람이었음을 부정하기 위해서, 나무처럼 보이기 위해서 정치현안에서 한 발 물러섰다. 국내정치에서의 막강한 권력을 스스로 놓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상왕이 세 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상득 의원과 천신일 회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다.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본인들은 나무처럼 행동해 왔다고 생각하고 싶겠으나 결코 나무가 아니라 스스로 바람이었던 상왕들.

▲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 ⓒ미디어스
그렇다면 이제 최시중 위원장도 2선 후퇴에 대해서 입장이 있어야 할 때다. ‘대통령 친인척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상득 의원처럼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져 온갖 불편함과 오해를 한몸에 샀던’ 그 어려움을 억지로 참고 견딜 필요가 없다. 특히 상왕 중의 상왕인 이상득 의원이 2선 후퇴를 선언한 마당에, 또 다른 상왕인 천신일 회장이 온갖 구설에 사실상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홀로 상왕 자리에서 견뎌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할 필요는 없다. 최시중 위원장 개인의 입장에서 봐도 그렇고 방송통신 종사자들의 입장에서 봐서도 그렇다. 특히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훨씬 더 그렇다.

방송통신위 실무자들이 논리가 막히면 주장하는 ‘청와대 오다’ 또는 ‘청와대 지시’라는 논거가 지겹고, 최시중 위원장이 앞장서서 청와대와 밀접한 관계를 ‘눈물로 과시’하는 것도 솔직히 보기 불편하다. ‘MB악법’의 ‘경호대장’처럼 행동하고, ‘언론악법’ 통과를 위한 ‘돌격대장’처럼 발언하며 끊임없이 방송통신위를 사조직화해 온 최시중 위원장. 그리고 민주당 추천위원인 이병기 상임위원과 이경자 상임위원을 자신의 부역자로 포섭해 온 정략적 행위도 지켜보는 이의 눈을 아리게 한다.

상왕으로서 평가받던 최시중 위원장이 졸지에 MB정책의 경호대장처럼 언론악법의 돌격대장처럼 굽실거리며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앉아 있을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다시 상왕으로서 그 권위를 회복하시라. 상왕으로 행동하시라. 상왕 중의 상왕처럼 2선으로 물러나는 여유를 뽐내시라.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무가 되기보다 오히려 바람이었고, 노골적으로 태풍의 진원지인양 행동했다’는 그 당시의 평가가 억울했다고 토로하시라. 아니 지금 당장 2선후퇴를 결심하시면서 이임사에 이 억울함을 토하시고 ‘나같은 불행한 방송통신위원장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덕담으로 떠나시라. 이병순 사장의 KBS9 뉴스는 크게 보도해 줄 터이니.

계속 자리를 지키고자 한다면 상왕답지 못하고, 계속 연연하면 진짜 경호대장이나 돌격대장으로 보여 흉해질 수 있다. 서울을 떠나, 친구 이상득 의원과 함께 포항 어귀에서 바다낚시를 즐기는 최시중 위원장의 한가로운 일상을 연출하시라. 그 때도 KBS9 뉴스는 중계차까지 끌고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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