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아주 잠시나마 애도의 뜻을 표한 조선일보가 서서히 그들의 논조를 ‘업그레이드’ 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조용히 애도하자”고 강조한 바 있는 조선일보는,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정치에 대한 화합과 배려를 주창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4일치 신승철 정신과 전문의가 쓴 시론 <정신의학적으로 본 그의 죽음>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정치적 타살” 주장을 일축한 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의) 즉각적인 원인으로서는 그의 ‘깨끗한, 청렴 이미지의 정치인’에 대한 타격”이라며 분석을 시작했다.

▲ 조선일보 6월4일치 29면(오피니언).
“기득권에 비판적이며, 쉽사리 타협을 모르고, 늘 ‘청년의 열정’을 불태웠던, 어찌 보면 순수했고, 반면에 독선적이었던 면도 적지 않았던 그였다. 한데 그런 열정의, 공격적 특성이 거꾸로 자신쪽으로 날을 세우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커다란 허탈감과 함께 우울감이 찾아온다. 그의 마음의 상처가 그랬으리라 보는 것이다. 수치심과 실망은 여느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독 (毒)으로 작용했으리라.”

신승철 전문의는 이렇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전 심리 상태를 분석한 뒤 “현 정권의 정치적 협박 탓으로만 돌릴수 있었겠는가의 문제”라며 “그의 측근이나 정치로 관련된 인물들은 그가 곤경에 처했을 무렵, 과연 그 ‘억울한 사정’을 제대로 변호하거나 지지해 주었는지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즉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현 정권의 정치적 협박 탓이 아니고, 되레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억울한 사정’을 제대로 변호하지 못했다는 식의 분석이다.

하지만 신씨의 분석은 대중의 ‘독법(讀法)’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정신의학이란 본래 그런 것인가? MBC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 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본인의 책임이 크다”는 의견은 36.6%인 반면, “외부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의견은 60.8%로, 훨씬 높았다. 외부 압박의 주된 요인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39%로 가장 높았고, 검찰이 27%, 언론이 21%로 뒤를 이었다. (“盧 서거, 현 정권 책임”)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초반 “고인의 뜻에 따라 조용히 애도하자”고 했던 조선일보는 이후 북핵으로 서거를 덮는 꼼수를 부리다가 이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살’로 서거를 치부해 버렸다. 조선일보는 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검찰의 무분별한 브리핑을 고스란히 보도한 언론의 태도, 이런 언론의 태도를 한 단계 뛰어넘은 조중동의 뻥튀기 보도는 모두 배제했다. ‘어찌 보면 순수했고, 반면에 독선적이었던 면’이 있었던 한 사람이 커다란 허탈감과 우울감이 찾아와 선택한 ‘개인적인 자살’이라는 식의 해석이다.

조선일보의 속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1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레이건 전 대통령 부인인 낸시 레이건과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 <그들의 정치, 그리고 우리의 정치>을 통해 “이것이 미국 정치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우리로선 부럽기만 한 장면”이라고 말했다.

▲ 조선일보 6월4일치 1면(종합).
“행사장에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부인의 모습에서 싸울 때 싸우더라도 화합과 배려의 기본을 잊지 않는 게 정치의 중요한 덕목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지금도 우리 정치권에선 전·현 정권 간 ‘정치보복’ 공방이 한창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진을 통해 전·현 정권간 정치보복 공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을지 모르나, 정작 이 사진을 보면서 미국 현직 대통령의 ‘포용력’이 부러웠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강조했으나 결과적으로 ‘예우’를 다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화합과 배려의 기본을 잊지 않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벌어진 사안 가운데 모든 것을 배제한 채 무조건 화합과 배려만을 주창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조선일보는 이 사진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을 묻는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목소리에 대해 우회적으로 껄끄러움을 표한 것일 수도 있다. 현재 전·현 정권이 왜 정치 공방을 벌이고 있는지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정치보복 공방만을 주장하고 나선 이같은 보도는, 역시나 조선일보스럽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앞으로 몇 년 간,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부인의 모습은 대한민국에서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권양숙 여사가 이명박 대통령과 팔장을 낀 채 대중 앞에서 환하게 웃을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조선일보는 앞서 언급한 시론에서 “사회적·정치적이란 수식어가 붙어, 자살이 합리화되는 것도 국민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지 않다”며 “유서에 담긴 고인의 뜻을 받들어 화해와 용서의 분위기에서 조용히 애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좋을 듯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정신의학적’으로 해석하며 합리화하는 것도, 고인의 뜻을 왜곡하며 “조용히 애도하자”고만 하는 것도 조선일보다. 외부 필자가 조선일보가 하고 싶은 말을 고스란히 대신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그들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한 조선일보. 적어도 서거한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면서 보도하길 바라는 것은 조선일보를 향한 지나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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