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라고요? 낯익은 이름인데….” 변호사는 서류를 뒤적였습니다. ‘예감’은 맞았습니다. 사진 속 얼굴이 자꾸 ‘기시감’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건 괜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변호사도 그렇고, 저도 조 경감을 법정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2일 방영된 <PD수첩>을 본 제 처가 퇴근한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사무라이조라고 알아?”, “어 그거 내가 기사도 썼는데…. 남편이 쓴 기사도 안보냐?” 뒤늦게 PD수첩 동영상을 봤습니다. ‘아고라’를 열심히 ‘눈팅’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었을 정보이지만, 역시 영상의 위력은 남달랐습니다. 지방출장 때문에 저는 ‘인터넷세상’과 이틀 동안 단절되어 있었습니다만 인터넷은 2009년 한국의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에 대한 탄식과 분노로 들끓고 있습니다. 김재영 PD를 비롯해 고생하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얼마 전까지 불만제로 팀에 있었는데 다시 PD수첩팀으로 복귀했네요.)

▲ ⓒ참세상
Weekly경향에 제가 연재하는 코너 중 ‘언더그라운드.넷’이라는 짧은 코너가 있습니다. 보통 6~7매 정도 짧은 분량에 인터넷에서 발생한 사건과 그 주변담을 담는 코너인데, ‘사무라이 조’ 기사를 쓴 것은 5월 7일이었습니다. 2~3일 전 조 경감의 실명은 주요 포털에서 실시간 인기검색어로 떠올랐습니다. 조 경감 측이 포털에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블라인드처리를 요청하면서 조 경감의 인기(?)는 더 높아가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여론’을 청취한 뒤 문제의 30X 부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직상황병이 전화를 받더군요. 이미 수많은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온 모양입니다. (부대 홈페이지는 이미 다운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제가 남긴 이날 ‘취재기록’에 따르면 제가 물어볼 질문리스트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당시 상황은 어땠었나 △왜 부대장이 직접 곤봉을 들었나 △아고라 게시물 삭제는 본인이 직접 요청한 것인가 △사무라이조, 장봉조 등의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진을 보면 당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취재진이나 대부분 맨손의 시민들인데.”

이 부대원은 인터넷을 통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것에 대해 몹시 억울해하는 듯 보였습니다. 조 경감 측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죠.

“아, 그게 우리는 우리 관련된 사진이 다 있습니다. 저희 대원이 시위자들에게 끌려가는 현장부터 자료를 다 남겨놓았습니다. 채증 동영상도 있습니다. 당시 상황은 종로3가 지하철역에서 우리 대원이 피납되었어요. 납치를 당했을 뿐 아니라 대원들이 시위대로부터 날아온 유리병이나 돌멩이에 맞아서 코뼈가 부러졌습니다. 코뼈가 부러진 대원은 카메라를 찍던 대원입니다. 시위자들이 대원들을 공격하니, 대장님이 접근을 못하도록 봉으로 붕~붕~휘두른 겁니다. 때리지는 않았어요. 다 사진이 있습니다. 대장님께서는 접근 못하게 겁만 주려고 봉을 휘둘렀는데 기자 분들이 사진을 찍어서 폭행을 가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니 이게 일파만파로 된 겁니다.”

비무장 시민들이었다는 제 지적에 대해 이 부대원은 “돌멩이는 그러면 뭐냐”고 반론을 폈습니다. 그는 중대 대장이 봉을 휘두른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중대를 대표하는 분이니까, 사진 기자들이 그걸 강조해 사진을 찍은 모양”이라고 말했습니다.

3중대 소장을 맡고 있다는 모 경위는 “시위대가 방패를 뜯고 대원이 피랍되었으니 대장님이 나서서 법집행을 ‘솔선수범’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당시 시위대는 200여명이었는데, 대원은 30명밖에 안되는 위기 상황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피랍되었다는 대원은 곧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맞지 않았다는 주장과 달리, 그 ‘장봉’에 맞은 기자의 언급은 언더그라운드.넷에 짧게 덧붙였고요.

맨 앞에 언급한 조 경감의 과거행적(?)은 과거 기사로 인연을 맺은 변호사에게 ‘실제 조 경감의 행위가 적법한지’ 문의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촛불시위 관련 구속자 재판장에 검찰 측 증인으로 조 경감이 나왔던 것입니다.

제 취재기록에 따르면 조 경감은 지난해 5월31일밤부터 6월1일 새벽까지 청와대 옆 통의동 파출소 쪽에서 촛불시위를 막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법정에서 그는 당시 촛불시위가 “추모제적 성격은 신고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경우 불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조 경감이 장봉을 휘두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의 법정발언은 그 ‘심정’을 유추하게 합니다.

“8,90년대 시위에는 돌멩이나 각목이 난무했는데, (그런 걸 경험해보지 못한 대원들이) 다치니까 흥분도 하고 놀라기도 한 것 같았다. 틱증세가 나타난 대원도 있었다. 애들이 약해져가지고…”

그래서 1년 후 그는 ‘8,90년대’식 진압을 솔선수범해 재현하신 거지요.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언더그라운드.넷] 사무라이 조 (Weekly경향 825호)

경향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Weekly경향의 기자다. 사회팀장을 맡고 있다. 시민단체 KYC 등과 함께 풀뿌리공동체를 소개하는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풀뿌리가 희망이다> 책을 냈다. 괴담&공포영화 전문지 또는 ‘제대로 된(또는 근성 있는)’ 황색잡지를 만들어보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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