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4일 오전 서울광장 봉쇄를 풀었다. 지난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전경버스 32대가 광장을 봉쇄한 뒤, 노제가 있던 지난 29일을 제외하면 12일 만에 광장이 다시 열린 셈이다. 경찰은 봉쇄를 푼 이유에 대해 “서울시가 서울광장에서 예정된 각종 행사를 이유로 차벽 철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 경찰 관계자는 “여론에 못 이겨 서울광장 봉쇄를 푼 것은 아니고, 그동안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막았다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해제할 시점이 됐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서울광장을 봉쇄할 당시 ‘광장이 정치적 집회나 폭력시위 장소로 변질될 우려가 있고 교통 흐름 문제까지 고려한다’는 자체 판단을 봉쇄의 근거로 내세웠었다.

이후 시민들이 ‘자체 판단’이라는 말 그대로의 자의적 경찰력 동원에 대해 비판하자 이번에는 경찰관직무집행법(경직법) 5조 2항과 6조 1항을 법적 근거로 내밀었다. 경직법 5조 2항은 “경찰관서의 장은 대간첩작전수행 또는 소요사태의 진압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대간첩작전지역 또는 경찰관서·무기고 등 국가중요시설에 대한 접근 또는 통행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6조 1항은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하여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광장은 말 그대로 넓은 마당, 즉 열린 공간이다. 광장은 사유지가 아니라 공유지다. 현재 서울광장의 관리권한은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방자치단체, 서울시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통해 광장을 서울시의 사유지처럼 운영하고 있다. 조례에 따르면 광장 사용 신청자는 적어도 7일 전까지 사용허가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서울시는 신청서를 심사해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 활동 등을 지원한다’는 그들 스스로의 광장 조성 목적에 위배되면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을 권리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경찰력과 서울시 행정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서울광장의 현재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끝난 다름날인 30일 오전 경찰이 서울광장에서 밤샘 촛불추모 행사를 한 시민들을 강제로 몰아낸 뒤 경찰버스로 차벽을 쌓아 봉쇄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경찰청은 지난해 4월, 즉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물결이 일기 직전 ‘집회시위현장 법집행 매뉴얼’이란 단행본을 발행했다. 집회시위현장에서 경찰관들이 들고 다니며 읽어볼 수 있도록 수첩 크기로 제작된 매뉴얼이다. 이 매뉴얼 3장의 ‘집회장소별 위반행위’라는 항목을 보면, ‘집회장소가 공원, 운동장, 역 광장 등 공중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용물일 경우 관리권자의 사전승낙을 받아 사용료 납부 후 장소를 사용해야 하나, 사전승낙이 없었다는 이유로 집회 제한 시 집회의 자유 침해 논란이 있을 수 있어 승낙여부와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집회·시위를 허용한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광장이 정치적 집회나 폭력시위 장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봉쇄 이유를 제시했던 경찰의 논리가 1년 2개월 만에, 그것도 ‘촛불의 공포’를 느낀 뒤 뒤집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경직법 역시 모순투성이다. 5조 2항을 적용했다고 볼 때,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열기를 ‘대간첩작전수행 혹은 소요사태’로 판단한 것도 적절치 않지만, 서울광장 역시 대간첩작전지역이거나 경찰관서·무기고 등 국가중요시설로 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또 6조 1항에 따른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추모열기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따른 범죄행위이거나 인명·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위험이라고 볼 근거가 현재까지 없다. 겨우 찾아본다면, 광장에 깔린 잔디에 대한 훼손을 근거로 한 재산 손해 문제를 들 수 있을 텐데, 그 잔디 역시 서울시의 재산이라기 보단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깐 시민의 공공재다. 타인의 재산을 훼손한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훼손하는 건 손해배상이나 법적 통제 차원으로 해석될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경찰의 이런 판단은 경찰이 애써 ‘정치적’으로 보고픈 시민들의 ‘정치적’ 집회를 막아보려는 것과는 다분히 역설적이게도, 스스로가 정치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인사권을 틀어쥔 청와대, 경찰청장 자리의 진퇴에 정치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국회 다수당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굴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시민들의 추모 열기 속에 내재된 정권에 대한 반발심을 북핵 위기만 쳐다보며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다, 한나라당은 여론의 만만찮음에 내분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게다가 서울광장 봉쇄와 분향소 강제 철거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 주상용 서울경찰청장 경질론이 등장했고, 연이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도 경찰은 비난 대상 1순위다. 결국 법 논리적 자가당착에 이어 인사권을 지지해줄 권력마저 자신들을 외면하는 상황으로 고립되자 서울광장 봉쇄 해제라는 카드로 이 논란에서 자신들은 쏙 빠지길,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대국가의 모든 시민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선거를 통해 근대 국가의 공화국 체제 운영에 간접 정치로 참여하고 있는 시민을 ‘정치적 집회·시위를 벌이면 안 된다’며 통제하는 경찰은, 스스로가 민주주의 국가에 종속된 공공기관임을 부인하는 또 다른 자가당착을 드러내고 있다. 광장에 시민이 모여 정치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헌법적 권리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경찰과, 그 경찰력 뒤에 숨어있는 청와대의 위기감은, 자기 스스로, 즉 경찰청장으로 대변되는 경찰력과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절대 권력이 곧 국가라고 생각하는, 왕정시대의 사고력 수준에 다름 아니다. 이같이 자기 스스로를 국가라고 믿는 자들은 꼭 자기가 위험할 때 국가가 위험하다고 떠들며 위기를 조성한다. 국가는 대통령도 아니고, 경찰청장도 아니다. 적어도 근대 공화국의 국가는, 시민, 그것도 정치적 시민의 다른 이름 정도라야만 등가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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