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대성 세종연구소장이 4일 오전 과찬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북한 핵실험 도발과 우리의 대응책’에 관해 강연하기 앞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열기를 폄하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자
한나라당이 국정기조 개혁·지도부 교체 등 여권 쇄신을 논의하겠다며 마련한 의원 연찬회에 극우 인사를 불러 강연을 들었다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강연자는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이었다. 송 소장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극우 성향으로 알려져 강연 전부터 당 일각에서 논란이 인 바 있다.

송 소장은 4일 과천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 특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추모 열기를 지인의 말을 빌리는 모양새를 취해 “제 애미, 애비가 죽어도 그렇게 하겠느냐고 하더라”며 비하했다. 또 북한은 ‘조폭’에, 진보진영은 ‘꽃뱀’에 빗댔다.

송 소장의 ‘막말’ 강연에 일부 의원들은 고성으로 항의하거나 아예 퇴장했다. 의원들 사이에선 “뻔한 인사를 불러 왜 망신을 자초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지인 입 빌려 “제 애미, 애비가 죽어도 저렇게 조문하겠나”

이날 강연은 초반부터 심상찮았다. 애초 송 소장이 강연하기로 한 주제는 ‘북한의 핵실험 도발과 우리의 대응책’. 그러나 송 소장은 ‘조문정국’ 얘기부터 꺼냈다.

▲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4일 오전 과천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 참석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자
송 소장은 강연을 시작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언급하다가 “(지난달) 23일날, 용어가 잘못돼 있는데, 어쨌든 죽은…”이라며 ‘서거’라는 표현을 쓰는 데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더니 “집안의 아저씨가 ‘한나라당 의원이나 청와대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전해달라’고 한 얘기”라고 전제하면서 ‘집안의 아저씨’라는 이의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 관찰기를 소개했다.

송 소장은 “그분 얘기를 들어보니, 넥타이 매고 검은 옷 입고 조문 오는 친구가 슬퍼서 한번 왔다 가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4시간 동안 5번을 돌더라”며 “1주일이면 35번을 도는데 ‘제 애미, 애비가 죽어도 그렇게 하겠느냐’고 하더라”고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를 비하했다.

또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뒤 시민분향소 주변 벽에 붙은 추모글을 언급하면서 “내용이 대개 ‘지난번 쇠고기 촛불 시위 때는 우리가 조금 더 체계적으로 밀어붙였으면 완전히 넘어갈 수 있었는데 그때 치밀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체계적으로 치밀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국민들의 추모 열기를 누군가의 배후 조종에 의한 계획적인 시위로 깎아내린 것이다.

초반부터 의원들 항의 “주제에 맞는 강연 하라”…일부는 퇴장

▲ 송대성 세종연구소장이 4일 오전 과천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북한 핵실험 도발과 우리의 대응책”에 관해 강연하기 앞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열기를 폄하하는 발언을 하자, 정태근 의원 등이 “강연주제와 관련된 얘기만 하라”며 제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자
이쯤 되자, 의원들 사이에서 항의가 터져나왔다. 초선인 권영진·정태근 의원은 “북핵에 대해 얘기하라”, “주제에 어긋나는 것 말고 본론을 얘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송 소장을 나무랐다.

그러나 송 소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되레 의원들을 향해 “나는 강사다. 내가 강의를 그만둘까요? 그러면 나를 왜 모셨느냐. 나보고 나가라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며 “강사에게 결례되는 말을 하지 마시라”고 맞받아쳤다.

송 소장의 태도에 일부 의원들은 혀를 차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유승민·정옥임 의원 등 10여 명은 아예 강연장을 박차고 나갔다.

송 소장은 이후에도 “봉하마을에 하루 20만 명이 왔다는데 계산을 해보면 버스로는 5000대가 와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면 그 작은 골짜기가 뭐가 되느냐”며 “정부가 좀 더 치밀하게 국정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분(집안 아저씨)의 전달 사항”이라고 말했다. 봉하마을에 조문을 다녀간 추모객의 수가 과장됐다는 얘기다.

‘촛불집회’를 두고는 북한의 사주에 따른 시위라며 해묵은 ‘색깔론’을 꺼내 폄훼하기도 했다. 송 소장은 “김지하 시인이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을 신성시해야 한다’는 글 썼던데, (추모) 촛불을 시골 할머니가 성황당에 모셔놓은 촛불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김지하 시인이) ‘전향’을 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저 모양이구나 했다”고 말했다.

▲ 4일 오전 과천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원희룡 쇄신특위 위원장이 황우여 의원과 귓속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자
“남남갈등, 실제론 ‘남북갈등’…북한이 진원지”

그러면서 “‘남남갈등’의 한쪽은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 맞는데 다른 한쪽은 그 진원지가 북한이다. 북한이 진원지가 돼 죽창 들고 가라면 간다, 어디에서 촛불 들라고 하면 또 간다”며 “그러니 남남갈등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남북갈등’이다. 이걸 여론이라고 보고 신경 써야겠느냐”고 의원들을 질타했다.

송 소장은 또 강연에서 북한을 ‘조폭’, 좌파를 ‘꽃뱀’에 비유하기도 했다. 송 소장은 “북한 실체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가장 필요하다”며 “조폭한테 ‘공자’, ‘맹자’ 하면 못 알아듣는다. 근본적으로 다스릴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원들에게는 “‘꽃뱀’에 신경 쓰지 말라. 꽃뱀이 뭐냐면 진보니 좌파니 하는 ‘친북세력’이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본처’에게나 신경 쓰라”며 당에 ‘우편향’ 정책 기조를 주문했다.

“한나라당, ‘꽃뱀’ 말고 ‘본처’에나 신경 쓰라”

송 소장의 극우 편향 강연에 의원들은 아연실색했다. 한 재선의원은 “좀 들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며 “누가 (강연자로) 불렀는지 한심하다”고 혀를 찼다. 또다른 초선 의원도 “다른 외교·안보 전문가도 많은데 왜 저런 인사를 불러서 망신을 당하느냐”고 비판했다.

연찬회를 앞두고도 송 소장이 연사로 초청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내가 술렁이자, 사회를 맡은 신지호 원내부대표는 강연 막바지에 “송 소장의 강연은 개인의 견해이지 한나라당의 당론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 송대성 세종연구소장이 4일 오전 과천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북한 핵실험 도발과 우리의 대응책’에 관해 강연하기 앞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열기를 폄하하는 발언을 해 권영진 정태근 의원 등 의원들의 제지를 받는 등 물의를 빚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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