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 이후, 서울광장 옆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아직도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물론 대한문 앞 촛불은 전경버스와 전투경찰의 방패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치적 타살’이라는 유시민 전 장관의 말에 현 정부와, 정부에 동조했던 '조중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신문등의자유에대한법률(신문법)’과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지역신문법)’이 제정됐다. 신문법과 지역신문법을 통한 신문지원 정책은 낡은 미디어, 한물간 미디어로 평가를 받았던 신문시장의 인공호흡기가 되어왔다.

▲ ⓒ신문발전위원회
이제 신문시장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전혀 새삼스럽지도 않다. 신문의 위기는 1990년대 말, 혹은 그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언론학계에서는 ‘신문 위기 원인 규명을 위한 가설’도 정리되어 있을 만큼 많은 논의가 있었다. 신문시장의 위기는 신문시장의 내적 위기 상황과 외적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내적 위기는 신문이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낮은 신문판매수입, 높은 광고의존도 등의 기형적 매체 산업구조와 함께 일관되지 못한 보도의 ‘정파성’에 의한 신뢰도 하락 등도 위기의 요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외적 요인은 새로운 매체환경 변화에 따른 구(舊) 미디어의 쇠락이다.

이런 신문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의 하나로 지난 참여정부 시절 마련된 기구가 신문법에 의한 신문발전위원회와 지역신문법을 통한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이다. 신문발전위는 ‘지원대상사업자 선정기준’을 토대로 지원대상을 선별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한다. 지역신문발전위도 신문발전위와 같은 과정으로 지역신문에 대해 지원대상 사업자를 선정한다. 무차별적 지원이 아니라, ‘선별기준’이라는 지원의 원칙에 따른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당시 그렇게 강조했던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언론정책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신문발전위, 지역신문발전위도 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조중동의 반발이었다. 조중동은 신문법이 ‘특정 신문 죽이기 법’이라며 반발했고,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지난 1월 신문발전위에 사업공모에 지원해, 독자권익위원회 부문에 선정됐다(2009년 신문발전기금 독자권익위원회 지원신문사 선정 결과, 2009년 1월23일). 인쇄 분야에도 신문발전기금을 지원해줄 수 없느냐는 요청까지 했다는 후문까지 들린다. 어쨌거나 언론 탄압 운운하며 신문법을 비판하던 조선일보도 신문발전위에 지원 신청을 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신문발전위를 통한 신문산업 지원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이미 그 설득력을 잃었다는 얘기다.

이렇듯 신문산업 활성화를 위한 유일한 기관이던 신문발전위에 비판적이던 일부 신문사들도 안면을 바꿔 지원하고 있는 신문발전위가 현정권에 와서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바로 한나라당이 지난해 12월 발의한 신문법 전면개정안(대표발의 강승규 의원) 때문이다. 이 전면개정안은 신문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을 언론재단에 통폐합하는 안을 담고 있다. 신문발전위, 지역신문발전위, 언론재단 등으로 나뉜 언론지원기구의 효율을 꾀한다는 구실을 내세웠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미디어정책에서 구 매체에 대한 지원은 대단히 소홀할 수밖에 없다. 시장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구 매체’는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합리성이기 때문이다. ‘효율성’ 중시하는 현 정부의 미디어정책은 신문법 전면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2009년 예산에서 신문지원기구 통폐합을 이유로 신문발전위 정부출연기금을 50억원으로 대폭 삭감시켰다. 2008년 정부출연기금 200억원의 1/4밖에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신문발전위의 우선지원대상사업자 선정제도가 사라져 버리고, 신문 진흥사업 자체가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지역신문발전위의 예산도 지난해보다 57억6천여만원이 삭감됐다.

신문법 개정안 등을 논의하는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서도 한나라당 측 추천위원들은 ‘효율성’을 주장한다. 정부와 달리 방송 산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부 소수 신문을 제외하면, 대개의 신문이 경영조건은 최악이다. 일부 소수신문이 방송이라는 거대 매체 시장에 신규투자를 할 만큼 경영여건이 될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미디어발전위의 논의는 일부 소수 신문 말고, 일부를 제외한 전체 신문에 대한 논의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갑자기 사라진 ‘신문지원 제도’를 되살려내든지, 아니면 ‘신문’ 매체가 하나둘 사라져 가는 것을 놓아둘 것인지 논의해야 할 것이다.

‘신문 위기 극복’에 대한 학자들 사이의 견해차는 상당하다. 그러나 모두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다. ‘지원’하지 않으면 ‘신문’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지원’해서 연명시켜야 ‘위기극복’을 위한 방안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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