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발언이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우리가 대선에 지면 다 한강에 빠져야지, 낯을 들고 다닐 수 없다는 각오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자 여기에 문재인 전 대표가 “내년 대선에서 못 이기면 아마 제가 제일 먼저 한강에 빠져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당장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한 마디씩 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천주교 신자가 자살을 연상케하는 발언을 함부로 해서야 되겠느냐고 비판했고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과거 자신이 “할복자살하겠다”고 했다가 논란에 휩싸인 경험을 언급하며 “승리의 각오를 표현한 것이라지만 지키지도 못할 것이고 교육적으로도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우는 그렇다 쳐도 정진석 원내대표의 발언은 다분히 정략적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을 부정적 맥락에 포함시켜 천주교 신자 일반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런 주장은 순 억지에 가깝기 때문에 ‘어느 신부님의 말씀’이라는 안전장치를 달아뒀다.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얘기하기 부끄러울 때 ‘내 친구 이야기’로 포장해서 돌려 말하는 건 오래된 일상의 ‘클리셰’다.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비판 대열에는 보수언론도 동참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12일 사설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4·13 총선 결과 호남에서 패배하면 정계 은퇴를 하겠다고 발언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박근혜 정권의 국정 운영에 있어서도 발목만 잡아 왔다면서 “명색이 제1야당 전현직 대표의 발언이 너무 가볍고도 오만하다”고 했다. 조선일보도 만물상 코너의 글에 “자신감과 자만심은 종이 한 장 차이고 관전자들은 이를 놓치지 않는다”고 썼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0일 오전 벤처·스타트업 기업과 벤처투자업체 등이 입주한 강남구 역삼동의 팁스(TIPS)타운에서 열린 벤처사업가들과의 간담회에서 설명을 들은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은 오만함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어떤 책임의식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추미애 대표의 발언은 지지자를 향해 나름의 의지를 보인 것인데 여기에 덧붙인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은 대선 승리와 정권교체라는 막중한 책임을 자기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기 때문이다. 야권 지지자라면 누구나 이번 대선에서 사즉생의 각오로 승리해 정권교체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즉,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은 굳이 해석하자면 어떤 리더십을 드러내고자 한 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걸 말 꼬투리 잡듯 해서 다른 맥락에 이리 저리 가져다 붙여 생채기를 내려고 하는 정치와 언론의 시도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보수세력의 이런 허접스런 생트집과는 별개로 이 사례가 정치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 측이 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새누리당이나 보수언론이 결국에 하고 싶은 말은 “문재인 전 대표가 오만한다”는 거고 일반 유권자층에 이 논리가 먹히지 않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의도 언저리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야권 중에서도 이른바 ‘친문’과 ‘비문’의 상황 인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이른바 비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문재인으로는 힘들다”고 얘기한다. 문재인 전 대표의 정치적 의지가 아직 부족해 보인다는 말도 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나오는 경우를 들어 “무난히 질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비문 성향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이탈이나 정계개편을 모색한다는 얘기가 이리저리 나오는 것은 이런 현실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인 걸로 보인다.

반면 이른바 친문들은 기세등등하다. 야권 지지자들이 결국 마지막에 문재인 전 대표가 아니면 누굴 찍겠느냐는 식의 소극적 논리부터 3자구도가 돼도 이러 저러한 공학적 계산을 보면 여전히 이길 수 있다는 공격형의 논리, “대세론을 계속 유지해 집권한 박근혜 대통령도 있지 않느냐”는 낙관론까지 온갖 희망적 주장이 나온다. 비문들이 하는 이런 저런 걱정은 오로지 문재인 전 대표를 흔들기 위한 것으로 하루 이틀 겪는 일이 아니라며 날을 세우기도 한다.

문재인 전 대표를 ‘오만한 정치인’으로 비추게 하는 렌즈는 이 갭을 통해 실체가 된다. ‘문재인이 이번에도 질 수 있다’는 우려는 오직 비문들만 하는 게 아니다. ‘이번에는 대통령감이 없다’는 일반 국민들의 냉소에는 문재인 전 대표 역시 그 대상으로서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친문과 비문 간의 인식 차이가 도대체 어디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다. ‘더불어민주당이 마치 이미 집권여당인 듯 구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대표적이다. 대중의 냉소주의적 세계관에서 이는 결국 ‘문재인이 오만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수렴된다.

그렇다고 당내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문재인 전 대표가 야성을 갖추고 저돌적으로 돌격하는 것만이 해법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재인 전 대표가 정치 그 자체에 신실한 모습을 보이는 거다. 예를 들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성장론 같은 게 대표적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을 추진하며 방대한 분량의 기조연설도 했다지만 성장론의 실내용보다는 프레임 자체가 공격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민주화’의 정치적 재산권(?)을 주장하는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잘못됐다”거나 “말장난 같은 성장변형론”이라는 날선 비판을 거듭하고 있고 박영선 의원의 경우는 ‘균형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 같은 사람들은 ‘성장’ 앞에 무슨 수식어를 붙이는 성장론은 모두 한가한 소리라며 극단적 제스추어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이런 얘긴 다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다. 경제담론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종류의 담론은 현안과 맞닿을 때에야 힘을 가진다. 도대체 박근혜 정권의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가 머나먼 미국 땅에 가서 경기부양의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인가. 8월 25일 가계부채대책 발표는 왜 부동산대책으로 둔갑해버렸는가. 해운산업은 왜 이런 취급을 받게 되었는가. 철강 화학 부문 구조조정은 왜 핵심이 빠져 버리고 없는가. 지금 왜 성과연봉제가 문제인가. 이런 현안에 대한 문재인 전 대표의 입장이 모여 하나의 경제담론이 구성됐다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 즉, 성장론은 총론과 각론의 구조를 가져야 하고 이를 통해 현안에 개입해 들어가는 정치의 기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일종의 ‘좌클릭’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사저 문제 같은 것은 단칼에 잘라버리고 ‘참여정부 때도 이런 문제로 곤혹스럽지 않았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문재인 전 대표가 사드 배치 절차 중단과 북핵 폐기를 위한 외교적 노력, 사드 배치 부지에 대한 국회 동의 등을 촉구한 것은 그래서 긍정적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사드 문제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타이밍이라고도 했는데, 문재인 전 대표의 최근 입장 발표는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몸조심의 타이밍’이다. ‘오만하다’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무기는 ‘겸손한 자세’가 아니다. ‘절실함’이다. 사람들이 문재인 전 대표를 보고 ‘아, 저 사람이 정말 국가를 운영해보고 싶어 하는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강에 제일 먼저 빠져 죽겠다는 말에도 긍정적 뉘앙스가 실린다.

과거 러시아의 어느 혁명가는 ‘손에 거머쥐었을 때 사슬 전체를 이끌 수 있는 핵심고리를 찾아내 움켜쥐고 놓지 않는 것’을 정치적 능력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기에 문재인 전 대표는 핵심고리를 쥐지도 찾지도 않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 본인이 절실하면 ‘대세론에 안주하지 말라’는 말 같은 게 나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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