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벌써 열흘이 흘렀다. 많은 국민들이 분향소를 찾았고, 그곳에서 눈물을 흘렸다. 벌써 정치권에서는 그의 죽음이 한국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이목을 집중하고 상황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끊이질 않았던 조문행렬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어려운 현실에 대한 서로간의 위로’와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욕구’ 정도로 정리되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이 세상이 좀 바뀌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촉발된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산개해 있었고, 그 이전부터 우리 사회는 아주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러한 욕구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분출됐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더 옳은 평가일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미 이런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이 적정한 표현이다. 그 이전부터 우리사회가 풀고 넘어갔어야 하는 문제들이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전후로 뭔가 세상을 바꿔보려고 ‘꿈틀’댄 사건들을 정리해봤다.

첫째, 신영철 대법관 사퇴 어떻게 됐나?

▲ 신영철 대법관 ⓒ오마이뉴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촛불재판에 개입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신영철 대법관.

사건의 발단을 상기시해보면, 이 사태는 촛불관련 재판을 특정 성향의 판사에게 ‘몰아주기’식 배당했다는 의혹으로 제기됐으나, 그 이후 신영철 대법관이 신속히 재판하라며 판사들에게 여러차례 이메일을 보낸 것이 폭로되면서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재판 개입’에 대해 “재판 관여로 볼 소지가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볼 소지가 있다”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는 ‘경고’나 ‘주의’의 권고를 할 것을 대법원장에게 제시했다.

이에 반발한 것은 일선 판사들이었다. 진상조사위나 공직자윤리위의 결정을 지켜보자던 판사들이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에 개입했다”면서 징계도 아닌 ‘권고’로 매듭지으려 하자 들고 일어선 것이다. 이에 법원 내부게시판에는 매일매일 일선 판사들이 신영철 대법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글들이 올라왔고, 결국 각 14곳에서 판사회의가 진행되었다.

애초 사퇴하지 않겠다던 신영철 대법관도 일선 판사들이 들고일어나자 자진사퇴를 결심했다는 보도들도 나왔었다. 지난 5월22일 MBC <뉴스데스크>는 한 법원 관계자가 “삼성 선고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지난 29일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에 의한 삼성의 경영권 편법 승계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 11명 가운데 6 대 5로 삼성에 가까스로 ‘무죄’ 판결이 내려졌는데, 무죄 6표 가운데 한 표는 신영철 대법관의 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맡은 소임은 다한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으로 미뤄졌던 전국 법원장 회의가 오는 5일 열린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용훈 대법원장과 전국 고등법원장, 지방법원장 등 31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신 대법관 사태와 관련된 사법행정권의 운영 방안과 전국 법원으로 확산된 판사회의에 따른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5일 회의 결과를 주목할 때.

둘째, 용산참사 해결은 다 됐나요?

▲ 용산참사 현장에 시민들이 분향하는 모습 ⓒ곽상아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용산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전 또 한 번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검찰에서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용산참사에 대한 수사기록 3000여 쪽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버텼고, 용산 철거민 변호인단은 그 3000여 쪽 없이는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며 재판부에 재판중지를 요청했으나, 재판부가 이를 거절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재판부를 상대로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일부 알려진 3000여 쪽에는 검찰이 철거민들을 기소한 내용과 다른 경찰들의 증언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000쪽을 공개하지 않는 검찰은 스스로 ‘공인’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며, 이를 용인해준 재판부는 용산철거민들에게 공정한 재판을 할 권리를 박탈한 꼴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용삼참사 범대위는 ‘검찰은 용산참사 수사기록 3000쪽을 즉각 공개하라’며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경찰은 권영국 변호사를 포함한 7명을 연행했다.

현재 용산참사가 벌어진 4구역에는 여전히 철거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었던 29일에도 명도소송집행강제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용산참사의 해결을 기원하며 용산추모 미사를 진행하던 문정현 신부가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용산참사 4개월을 넘어 132일. 그러나 아직 그 해결점은 요원하다. 노 전 대통령이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했던가.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셋째, 30원 인상 요구했을 뿐인데…

▲ 5월 6일 대한통운 대전 물류센터 앞에서 열린 ‘고 박종태 열사 정신계승과 악덕자본 대한통운 규탄 및 화물노동자 생존권 쟁취를 위한 화물연대 확대간부 투쟁 결의대회’에 참석한 1500여명의 화물연대 확대간부 및 노동자들은 “열사정신 계승”을 외치며 대한통운과 금호그룹에 맞선 총파업 투쟁을 결의했다. ⓒ 민중의소리
30원 인상을 요구했던 한 사람이 죽음을 선택했다. 박종태 운수노조 화물연대 광주지부 지회장지회장.

지난 3월 대한통운이 택배기사 78명을 무더기로 해고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종태 지회장과 노동자들은 해고자들의 복직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그를 업무방해로 고소했고, 경찰이 그에게 수배를 내리자 박종태 지회장은 결국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그가 사측에 요구한 것은 30원 인상. 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의 운송료를 건당 920원에서 950원으로 인상하기로 합의했으나 파기한 후 이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박종태 열사의 죽음은 대한통운 및 경찰의 노조 탄압과 정부의 특수고용 노동자 탄압이 초래한 비극이자 타살”이라고 주장하며 ‘총파업’을 결의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깃대’, ‘죽봉’, ‘죽창’ 논쟁이다. 5월16일 대전에서 벌어진 화물연대 집회에서 경찰과 보수언론이 ‘죽창’이 3년8개월만에 등장했다며 폭력시위로 몰아가면서 박종태 지회장의 죽음과 화물연대에서 총파업을 왜 결의하게 됐는지는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연합뉴스는 지난 5월22일 만장 깃대 제작업체에 문의해 “대나무를 낫으로 쳐내다 보니까 우연히 약간 비스듬하게 잘린 것도 나온 거죠”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민주노총에서 비스듬히 잘라달라는 요청도 없었다며.

이에 따라 대한통운 합의 내용의 진실, 박종태 지회장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화물연대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해결책을 찾아보고, 16일에 있었던 공권력 남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상황을 맞았으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에 화물연대는 당초 계획했던 27일 도심집회 등 집회와 파업을 유보했었다.

화물연대는 오는 10일까지 박종태 지회장의 명예회복을 포함한 대한통운 계약해고자들의 복직 및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이 이뤄지지 않을 시 11일부터 총파업을 강행하기로 결의했다.

다시 ‘죽창’논란으로 회귀하지 말기를.

넷째, 장자연 리스트 문제는 사라졌나?

▲ 60여개 여성, 시민 단체가 5월 8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 앞에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곽상아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경찰수사와 언론의 침묵에 국민들의 비판이 거셌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경찰은 지난 4월24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된 전 매니저 유씨와 강요 및 협박, 폭행, 횡령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장자연 소속사 대표 김씨를 제외한 강요죄 공범 혐의를 받고 있는 금융인 B씨와 기업인 C씨, 감독 I씨와 금융인 O씨, 문건 외 수사대상자인 감독 K씨, 기획사 관계자 L씨, 금융인 M씨를 사법처리 한다”며 “수사는 사건의 핵심 인물인 장자연 소속사 전 대표 김씨의 신병 확보 후 본격화 될 것”이라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후 별 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물론 장자연 리스트에 있는 인물들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이뤄졌는지조차 국민들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왜? 경찰은 장자연 리스트를 밝힌다고 했다가 말을 바꾸고 감춰버렸으니까.

그런 와중에 조선일보는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이종걸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KBS·MBC 소속 기자, 박상주 미디어오늘 논설위원,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김성균 언소주 대표를 상대로 68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단지 밝혀지지 않은 리스트에 조선일보 경영자가 포함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만으로도 그들은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3~4월 방송과 신문지면을 뜨겁게 달궜던 장자연 리스트는 관심대상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발벗고 나선 것은 시민단체들이었다.

지난 19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여성·언론단체들과 야당은 ‘장자연 특검법’ 입법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22일에는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서포터즈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발족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고 장자연 수사를 다시 처음부터….

다섯째, 오체투지순례단은 어디까지 갔나?

▲ 5월 16일 오체투지순례단이 청계광장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곽상아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기원하며 오체투지의 길을 떠난 순례단.

지난 5월16일 오체투지순례단이 서울에 입성했다. 그들은 서울에 입성하며 “독선과 오만과 독단이 앞서는 소통 부재의 시대, 기다렸다는 듯이 군부독재의 시절로 역주행하는 한반도의 현실을 목도하며, 아무리 생각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잘못인 동시에, 소통불능 현 정권의 잘못이다”라고 입장을 밝혔었다.

고통을 인내하며 스스로를 낮추던 순례단의 고행의 길. 아무도 가로막지 못했던 그 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있던 23일 일정 중단. 그리고 24일 순례가 취소됐고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전종훈 신부 등 20여명의 오체투지순례단은 봉하마을을 찾았다.

봉하마을을 찾은 바로 다음날인 25일부터 오체투지는 다시 시작됐다. 아마도 이때부터는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기원하는 마음까지 포함됐을 거다. 이런 오체투지순례단은 오는 6일 임진각 망배단에 오르며 남한 일정을 끝낸다.

언론에서는 잊혀진 지 오래지만 이들은 오늘도 오체투지로 세상과의 소통을 기원하고 있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속담이 있다. 위 모습들은 모두 밟힌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모습과도 같다. 억눌려 있던 한국사회에서 뭔가 변화를 소망하는 이들의 움직임이었다. 또한 서로 다른 사건들이지만 묘하게 공통분모를 형성하고 있는 사안들이다.

묘하게 닮아있는 꼴. 그것은 바로 거대 권력의 억눌림으로부터 뭔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전부터 한국사회에 있었던 하나의 흐름이었다.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중단되었으나 당연히 다시 환류되어야 하는 것들이며,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더 깊이 성찰해야 하는 한국사회 단면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그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고민에 조금의 답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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