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청와대에 대국민담화문 발표를 건의할 모양이다. 당내 끝장토론을 조만간 벌여 최종 결론을 짓겠다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을 위로하고 국민화합을 당부하는 내용의 담화문 발표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조만간 공식 건의키로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에 곧장 지난 촛불시위 때의 대국민담화가 떠올라 이름모를 웃음을 짓게 되지만, 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여권이 오죽 긴장했으면 저럴까 싶다.

다만 한나라당이나 청와대가 그 명칭을 좀 바꿔줬으면 좋겠다. 왜냐면 나를 포함한 수많은 국민들은 이미 지난주에 대국민담화문을 귀담아 들었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지난주에 다녀가셨지 않은가.

지난 29일 내가 들은 담화는 이렇다.

“국민 여러분께선 많은 것을 배우신 게 맞고요. 이제 민주화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셨으니 투표 잘 하세요. 꼭 지켜내야 합니다. 저 대신 싸워주시고요…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전 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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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건의 검토중인 ‘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그 내용이 무엇이 됐든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하려거든 최소한 노 전 대통령 서거 전에,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인정하고 자성하면서 국민 앞에 사죄하는 모습으로 했어야 한다.

정당지지도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앞질렀다는 각종 여론조사가 나오고, ‘특검’과 ‘국정조사’ 등으로 정치적 타살의 진상을 밝히라는 요구와 맞닥뜨린 상황에 이르러 비로소 담화문 급조해서 내놓음으로써 성난 민심 대충 다독여보겠다는 발상은 그 속이 훤히 보이고 효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미디어관련법을 포함한 이른바 ‘MB악법’ 처리가 막힐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또한 여당이 건의하면 하는 거고 청와대가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이지, 그걸 구태여 언론에 알릴 필요까지 있을까. 일단 언론에 흘려보고 여론의 추이를 보며 발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도는 아닌지.

6월1일자 <한겨레>가 밝힌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이 27.1%를 기록한 데 비해 한나라당 지지율은 18.1%로 추락했다. 4년8개월만에 역전됐다고 한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의 조사에서는 민주당이 27.3%, 한나라당이 20.8%를 기록했고, <리서치플러스> 조사에서는 민주당 27.1%, 한나라당 18.7%의 결과가 나왔다.

한나라당은 지지도가 역전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자기네 당 산하 ‘여의도연구소’도 조사했는데 한나라당이 26.4%로 25.8%를 기록한 민주당을 여전히 리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웃음이 나온다.

촛불이든 무엇이든 6월엔 국민의 분노가 본격적으로 표출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지난해의 매뉴얼에 따르면 그렇다.

작년에 이 대통령은 미국산쇠고기 관련 대국민담화를 5월과 6월 두 차례 발표(6월엔 ‘특별기자회견’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2008년 5월 담화문에서 ‘광우병 괴담’ 언급 등으로 오히려 비난을 받자 6월 담화(기자회견)에서는 ‘자책’ ‘뼈저린 반성’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얼마 후 촛불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이 시작됐고 여름비가 많이 내린 다음 검찰의 묻지마식 수사가 진행됐다.

뜨거울 이번 6월 정국 이후 상황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장맛비가 시작되기만을 학수고대하지 않을까?

담화문을 통해 ‘유감’ 표명하고 뒤로는 다른 궁리할 작정이라면 그것은 대국민 ‘뒷담화’ 내지 ‘경고방송’에 불과하다.

싸우되 정권의 영악한 술수에 걸려들어선 안 될 것이기에 참으로 어려운 시점임에 틀림없다. 민주당 등 야당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뜻이 같다면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야할 것 같다. 이제는 정말 흐지부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전이 시작된 것이다.

고인께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떠난 자리엔 무지개(오색채운)가 잠시 떴었다고 한다. 고운빛깔 무지개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되는 6월의 첫날이다.

▲ <사람사는 세상 봉하마을>에 게시된, 29일 서울시청 상공에 나타난 무지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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