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로 신문들의 명암이 엇갈렸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에는 시민들의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 편집국 사무실로 먹을거리가 배달되었고, 네티즌들의 자발적 유료 광고가 이어졌다. 반면 촛불의 의미를 폄하하고, ‘잘못된 인터넷 정보에 홀려 촛불을 든 이들’로 시민들을 묘사하던 조중동은 “폐간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시민들은 조중동을 향해 꾸지람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중동 광고주 불매 운동’이라는 실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촛불 집회로 신문들의 명암이 엇갈린 지 1년 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방송사들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 “마봉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시민들의 많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KBS에 시청률이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MBC 뉴스는 시청률 상승으로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반면 ‘국민의 방송’ KBS는 봉하마을과 서울 덕수궁 등에서 현장 취재가 어려울 정도로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시민들의 거센 원성과 비난을 취재진들이 받고 있다.

MBC,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시청률 상승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MBC 메인뉴스의 뉴스 시청률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TNS 미디어 코리아>에 따르면 서울 수도권 기준, <뉴스데스크>는 지난 24일 14.5%로, 12.9%인 KBS1 <뉴스9>를 앞질렀다. 뉴스데스크가 뉴스9를 앞지른 것은 MBC가 남아공월드컵 지역경기를 단독 중계하면서 시청률 유입 영향이 컸던 2월11일 이후 석 달만이며, 정규 방송시간에 뉴스데스크가 <뉴스9>을 추월한 것은 지난해 10월5일 이후 처음이다.

지난 25일 13.5%로 12.9%의 뉴스9를 다소 앞선 뉴스데스크는 26일, 27일, 28일 뉴스9에 한동안 시청률이 밀리다가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던 지난 29일 다시 시청률이 상승했다. 29일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16.1%, 뉴스9의 시청률은 14.5%였다.

▲ 5월26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MBC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 예능 프로그램 방영을 강행해 시청자 및 네티즌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KBS와 달리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기로 하는 등 서거 관련 긴급 편성에 들어갔다.

MBC는 또 방송사들의 비슷한 서거 관련 보도 가운데서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 경찰의 부실 수사, 덕수궁 임시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려는 경찰의 움직임과 이에 반발하는 시민들의 분노 등을 꼼꼼하게 전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할 당시 혼자 있었다”는 보도를 통해 경찰이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보도를 통해 새롭게 밝히기도 했으며, 덕수궁 분향소 상황을 생중계로 잇달아 현장의 추모 민심을 전해 시민들의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러한 MBC의 보도에 시민들이 가장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봉화마을로 내려간 추모객들과 덕수궁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중동과 KBS, SBS의 보도를 지적한 것과는 달리 MBC 보도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봉화마을 취재를 한 바 있는 한 MBC 카메라 기자는 지난 26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일부 시민들이 지나가면서 MBC 보도에 대해 격려도 해주시고, 음식까지 주셨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KBS, 시민들의 반발로 쫓겨나고,로고 가리고 등 취재 어려워

현재, 취재 현장에서 KBS 취재진들이 겪는 수모는 조중동 기자 만큼이나 엄청나다. KBS를 향한 시민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KBS 카메라 기자들은 봉하마을과 서울시청 근처 취재를 할 때 KBS 로고를 뗀 채 취재를 하고 있다. 소속 언론사인 ‘KBS’를 숨기고 취재를 해야 할 만큼 KBS를 향한 여론이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KBS는 시민들의 반발로 봉하마을 분향소 근처에 세운 중계차를 봉하마을 입구 근처로 이동해야 했다. 이어 지난 29일 서울시청 근처에서 생방송 중계를 준비하는 KBS 중계차량을 보고 시민들이 항의를 하기 시작, 기자를 비롯한 취재진이 철수하기도 했다.

▲ KBS 로고를 떼어낸 KBS 카메라.
한 시민은 다음과 같은 말을 적어 KBS 중계차 앞에 올려놨다.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게 조작하고 시청광장의 무대는 뒷벽만 쳐다보게 해놓고 운구행렬 때는 음악으로… 우리의 슬픔, 우리의 분노를 표현할 시간을 비열한 수작으로 차단했습니다. 그를 보내는 오늘마저, 당신을 보내는 오늘마저 우리는 저들의 저열한 공연만 쳐다보다 갑니다.”

가장 큰 문제는 KBS 내부 구성원들의 보도와 편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KBS 노동조합을 비롯해 기자협회, 프로듀서협회 등은 편성본부장, 보도본부장, 보도국장 등을 향해 “KBS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며 통탄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KBS 프로듀서협회는 KBS의 서거 관련 편성을 강하게 비판하며 “국민의 정서와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는 공영방송의 앞날은 너무나 뻔하다”며 “KBS가 자멸하지 않고 국민의 방송으로 남는 길이 과연 무엇인지 사장과 경영진은 제발 심사숙고하라”고 촉구했다.

KBS노조도 “서거 첫날과 이튿날 KBS의 1, 2TV 편성은 그야말로 철학과 원칙이 없는 편성으로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자초했다. 특히 서거 이튿날인 24일 황금시간대인 7시부터 9시까지 KBS1, 2TV는 영화와 쇼, 오락으로만 채워지면서 주말 9시 뉴스 시청률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경쟁사에 역전되는 빌미를 제공했다”며 “더구나 제작본부 수뇌부들은 PD조합원이 만들려던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KBS스페셜을 취소시키는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 24일 KBS 뉴스9 1~4번째 리포트 화면 캡처.
KBS 기자협회도 “보도본부장은 정부를 비판하는 조문객의 인터뷰를 빼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도국장은 대표적인 추모장소인 덕수궁 대한문 추모 현장의 중계차를 빼는 만행까지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현재 KBS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는 조중동 만큼이나 무섭다. 이병순 사장이 취임한 이후 보수적으로 바뀐 KBS 보도와 진실을 전하지 않는 언론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는 취재진의 취재를 막을 정도로 매서워졌다. 그리고 시민들은 입에선 “작년 여름, KBS를 지키기 위해 들었던 촛불이 아깝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KBS가 방송계의 조중동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KBS는 이미 시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KBS의 보도가 보수화될수록, 사실만을 나열하는 데 급급해 진실을 외면할수록, 현장에 나와있는 KBS 취재진들의 수모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KBS’ 구성원임을 감춘 채 취재를 해야 하는 KBS의 취재진들의 자괴감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 ‘국민의 방송’인 KBS는 진정 누구를 위해 방송을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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