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으로 가는 길은 다시 철저히 차단됐다. 당초 30일 오후 4시 시청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민주생존권·민주주의 쟁취 5·30 범국민대회’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장소를 옮겼다.

▲ 덕수궁 대한문앞에 주차된 경찰버스에 시민들이 ‘이것이 MB식 예우인가’라는 플래카드를 붙여놓았다. ⓒ곽상아
장소가 협소한 까닭에 덕수궁 대한문 앞을 중심으로 지하철 시청역 8번 출구부터 3번 출구까지 시민들이 빽빽하게 몰려있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앉은 시민까지 포함해 1000여명이다. 용산범대위, 전철연, 민주노총, 진보신당, 고려대, 홍익대, 중앙대, 서강대 등 다양한 단위들이 모여 ‘MB퇴진’을 외쳤다.

▲ 30일 새벽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쓰러진 시민 분향소 ⓒ곽상아

▲ 다시 설치된 시민분향소에서 시민들이 분향하는 모습 ⓒ곽상아
“분향하고 가세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치러진 다음날에도 분향은 계속됐다. 30일 새벽 경찰의 강제진압때 쓰러진 시민분향소가 보인다. 처참하다. ‘군화발에 밟힌 흔적. 현장 보존해주세요’라는 손팻말이 세워져있고, 그 앞에는 ‘이것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인가’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대한문 앞에 일렬로 늘어선 경찰버스 한 대에도 ‘이것이 MB식 예우인가’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현재 시민들의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을 하는 사람들 ⓒ곽상아
시민들은 쓰러진 분향소 옆에 다시 새로운 분향소를 설치했다. 분향소 옆은 ‘MB탄핵 서명’을 받는 곳이다. 두곳 모두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 자유발언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 ⓒ곽상아
지난해 촛불정국에서 시민들은 국민의 소리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 ‘반소통’ 이명박 정부를 이미 ‘독재정권’으로 규정했고, 이날 대회에서도 ‘독재정권 물러나라’는 구호가 이어졌다. 이밖에도 ‘시청광장 개방하라’ ‘폭력경찰 물러나라’가 단골 구호였다. 이 구호들은 모두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는 소박한 욕망이 내포돼있다.

▲ ⓒ곽상아
대회 참석자들은 율동과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장소가 좁아 자유발언을 할 수 있는 무대 단상이 마련돼있지 않았으나 시민들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자신의 의사를 펼치는 데는 마이크 하나면 충분했다.

로이터, 민중의소리, 칼라TV, MBC, YTN, 한겨레, 사자후TV 등 취재진들도 인산인해다. 그런데 방송사 카메라로 추정되는 한 취재진은 카메라에 소속 방송사를 보여주는 로고가 보이지 않는다. 다가가 “혹시 KBS냐”고 묻자 조용히 “그렇다”고 답한다. 시민들의 항의로 어제 시청광장에서 쫓겨난 ‘KBS의 굴욕’이 이날도 이어진 셈이다.

▲ 100여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명박 퇴진’을 외치고 있다. ⓒ곽상아

▲ 전경들에게 둘러싸인 학생들 ⓒ곽상아
오후 5시40분경, 100여명의 시민들이 “독재타도” “명박 퇴진”을 외치며 지하철 시청역 1번출구 앞 도로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청광장으로 가기 위함인 듯했다. 남대문경찰서장이 경고방송을 하기 시작한다. “여러분의 불법시위로 인해 교통이 방해되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집회를 마치십시오.”

▲ 거리로 나선 여중생들이 ‘언론·출판·집회·결사와 같은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는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추구한다’(중학교 2학년 도덕 교과서 중)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곽상아

▲ 무장한 전경들과 시민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곽상아
오후 5시55분, 무장한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고, 무장한 경찰들은 ‘시청광장을 개방하라’ ‘폭력경찰은 물러나라’라는 요구에 물대포와 채증으로 답했다. 전경들이 시민들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자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 외친다. “여기가 감옥이에요?”

경찰은 신속하고도 뻔뻔했다. 지난해 촛불정국에서는 그래도 밤늦게 연행에 들어가더니 이제는 오후 6시부터 시민들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지 20분만에 10여명이 연행됐다. 이를 보던 시민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왜 잡아가느냐”고 항의해보지만 경찰은 묵묵부답이다. 연행되던 한 사람이 외친다. “얼마든지 끌고가 보라. 우린 할말 많은 사람이다.”

▲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채증하는 경찰 ⓒ곽상아

▲ 한 지적장애인(왼쪽)도 경찰에 연행됐다. ⓒ곽상아

▲ 시민이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을 한 외국인이 찍고 있다. ⓒ곽상아
연행자중에는 지적장애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포함됐다. 내가 “이 분은 몸이 좀 불편한 것 아니냐”고 경찰에게 물었는데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그를 데리고 가버린다. 경찰에 붙들린 한 연행자가 경찰을 대신해서 말한다. “맞아요. 저 사람은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인데 그냥 거리에 서있다가 잡혀가는 거예요.”

이날 행사에 참석한 손모(고3)양은 “인터넷 뉴스로만 경찰 연행을 접하다가 실제로 이렇게 보니까 기분이 묘하다. 같은 국민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어제 학교에서 영결식 생중계를 보았는데 다른 대통령은 엄숙해보였지만 MB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대통령한테 ‘사죄하라’고 외쳤다가 경호원들한테 끌려갔는데 이 나라에는 말할 자유가 없는 것 같다. 솔직히 민주주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손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적 타살”이라며 “한나라당 의원들의 숫자가 압도적이라 탄핵이 불가능하겠으나 이참에 시민들이 MB를 끌어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시청역 1번 출구 앞쪽에서는 한 기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칼라TV 취재진인데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는 것에 항의하다가 다쳤다고 한다. 시민들이 그를 둘러싸고 끌끌 혀를 찬다.

▲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전경들 ⓒ곽상아

▲ 지하철 시청역 2번출구에 앉아있는 전경들 ⓒ곽상아

▲ 인권위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경찰들 ⓒ곽상아

▲ 지하철 시청역 1번 출구 앞 경찰들 ⓒ곽상아

▲ 지하철 시청역 8번 출구 옆 경찰들 ⓒ곽상아

▲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뒷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경찰들 ⓒ곽상아
다시 경고방송이 나온다.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담으로 방문한 외국인들과 관광객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질서유지가 더욱 필요한 시기입니다. 시민들 스스로 선진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경찰의 말마따나 이날 행사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한 외국인은 경찰이 시민의 옷을 잡아끌며 경찰차로 밀어넣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무엇이 ‘나라망신’으로 비쳤을까.

시청광장을 둘러싼 차벽 옆, 인권위앞, 지하철 7번 출구, 6번 출구, 8번 출구, 1번 출구, 12번 출구, 3번 출구 등 곳곳에 들어선 경찰들. 전·의경 총 140여개 중대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현 정부에 불만을 표하는 시민들을 언제든지 제압하고 연행해갈 수 있도록 곤봉과 방패를 무장한 채로 곳곳에 들어서 있는 경찰들. 이게 바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MB식 예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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