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제를 끝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가 서울역을 향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운구를 뒤따랐다. 영결식은 끝났지만 시민들은 아직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를 멈출 수가 없었나 보다. 시민들은 분향소를 세웠던 그때처럼 자발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을 차에 싣고 도로로 나왔다. 그러나 이들을 막아선 것은 경찰.

▲ 시민들이 마련한 영구차량이 경찰에 의해 프레스센터 앞에서 막혔다ⓒ나난
경찰은 방송으로 “애끓는 심정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냈다”면서 “이제는 고인을 마음에 묻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영결식에 대한 의미와 고인에 대한 추억을 가족·동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고인이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애도는 집에나 가서 하고 빨리 도로에서 나오라는 말이다. 고인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잘도 고인의 뜻이라 붙였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애도는 이제 막 시작하려는 찰나였지만 경찰들의 애도는 끝나버렸다. 물론 근조 리본을 달았다고 해서 애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강희락 경찰청장의 지시로 근조리본을 단 경찰들. 그 속에 진심이 어느 정도 있는지 역시 모를 일이다.

노제가 끝난 서울광장은 그렇게 아직 추모를 끝낼 수 없다는 시민들과 도로에서 나오라는 경찰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물러서지 않았고 시간이 꽤 흘러버렸다. 그런데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그곳에서 진풍경이 연출됐다.

시민들의 손에 든 저것들은 무엇? 그것은 다름 아닌 신문이 아닌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경향신문과 한겨레였고 날짜는 5월30일 내일자였다. 도로에 앉아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에는 신문이 있었고, 시민들의 눈은 글자와 사진 하나하나를 유심히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시민추모제가 있던 27일에도 시민들이 모두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읽고 있지 않았던가?’하며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있던 대한문 앞에서 몇명의 사람들이 신문을 나눠주는 것이 목격됐다.

▲ 시민들이 진알시에서 나눠준 신문을 읽고 있다ⓒ나난
‘진실을 알리는 시민(이하 진알시)’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을까?’ 여러 차례 목격했던 장면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호기심이 생겨 다짜고짜 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자리부터 깔고 앉았다. 인터뷰에 응해준 이들은 진알시 운영진인 ‘유리왕자’와 ‘치우천황’이었다.

- 어떻게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나눠주는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
= ‘각시탈’이란 분이 조중동의 폐해가 심하다고 생각해서 포털사이트 다음을 통해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면서 제안했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시작한 시기가 작년 초다. 이제는 신문을 배포하는 것을 넘어서 제작을 하기도 한다. 지난 2월 문방위 고흥길 위원장이 상임위에서 미디어법안을 통과시킨 다음날에는 특보를 제작해 배포했고, 설 명절 때에는 미디어법안을 알리기 위한 속지를 제작해 경향·한겨레와 함께 배포하기도 했다.

- 두 분은 운영진인데 어떤 활동들을 하나?
= 솔직히 운영진들은 하는 일이 거의 없다. 후원을 저희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경향신문과 한겨레 계좌에 하기 때문에 운영진들은 요청하는 지역에 ‘배달’을 하는 정도의 활동밖에는 하지 않는다. 나머지 일은 각 지역의 자원활동가들이 하는 셈이다.

▲ 진알시 운영진 좌, '유리왕자', 우, '치우천황'의 모습ⓒ나난

- 경향과 한겨레에 직접 후원?

= 그렇다. 때문에 ‘돈’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신뢰가 쌓여 사람들에게 호응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덕분에 지금은 거의 전국구 활동을 하고 있고, 이제는 경향과 한겨레를 넘어 한겨레21과 미디어오늘도 함께 배포한다. 어제는 대한문 분향소 앞에서 한겨레21 1만부, 한겨레 3만부, 경향 2만부, 경향위클리 1만부를 무료로 배포했다.

-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언론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보나?
= 무척 크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조사와 관련해 분석을 많이 하는데, 검찰이 어떤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공표하면 바로 다음날 혐의가 확정적인 것처럼 기사제목이 나온다. 사람들은 기사의 제목을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런 제목은 문제가 있다. 검찰조사 내내 언론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 중심에는 조선일보가 있다. 조선일보는 신문업계에서 대장 개와도 같다. 대장 개가 짖으면 나머지 개들도 따라 짖는 식이다. 그런데 검찰조사를 받을 때 내내 노 전 대통령을 공격했던 조선일보가 서거 소식이 있자마자 표정을 바꿨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책임론으로 ‘검찰’을 들고 나온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언론의 책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 노 전 대통령 보도에 대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 지금까지 달러로 비리 혐의가 있을 때 신문에서는 가로를 넣어 원화로 표기해줬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경우는 100만 달러, 500만 달러 그래서 총 600만 달러는 있었지만 원화로 계산한 금액이 나오지 않았다. 달러로만 표기되면 원화로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개인적으로 저희 아버지는 500만 달러가 5000억인 줄 아셨다고 하더라. 신문에서 원화를 표기안함으로써 어마어마한 액수인양 떠들어대는 것이다. 원화를 표기한 신문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 말씀하셨듯 경향과 한겨레 보도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을 대안으로 보고 신문을 배포하는 것인가?
=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조중동이 큰 책임이 있지만 경향과 한겨레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최근 모임에서 경향과 한겨레를 꼭 돌려야 하나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경향과 한겨레도 이런 기사가 실린다는 것 자체를 알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조중동만이 아니라 경향과 한겨레도 잘 해석해서 봐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 요즘 한겨레 보도에 대해서 문제제기가 많다.

-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 경향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보수언론의 책임도 크게 다룬 반면 한겨레는 ‘검찰’의 책임을 더 크게 부각시켰다. 제목도 경향이 더 잘 뽑는다. 한겨레는 조중동이 선전을 통해 형성하고자 하는 카르텔을 깨려는 노력을 멈춘 것 같은 보도를 하고 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이 재임하고 나서 보수신문과 대립했을 때에도 한겨레는 침묵했다. 분석해보니 조중동에 대한 비판에 한겨레가 소극적이라는 결과가 나오더라.

(그리고 ‘유리왕자’와 ‘치우천왕’은 내일자 경향과 한겨레를 비교해줬다.)

▲ 29일 진알시에서 배포한 5월 30일자 경향과 한겨레 1면ⓒ나난
= 보세요. 이것이 경향이다.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있는 사진을 배치하고 제목으로 “이 추모의 민심은 무엇인가”라고 뽑았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미 죽은 권력이었던 사람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이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 오늘 영결식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경향신문은 그 의미를 잘 살렸다.

같은 의미에서 한겨레를 본다면 실망스럽다. 사진도 그렇고 영결식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을 표현하지 못했다. 제목도 “미안합니다-사랑합니다”라고 붙였는데, 차라리 부제목으로 들어가 있는 “서울광장 노제 50만 추모물결”을 제목으로 뽑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러한 비판들 때문인지, 요즘은 한겨레와 경향을 동시에 내밀면 시민들이 경향을 받아간다.

- 경향과 한겨레가 각각 바꿔야 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 경향은 어제 반성문을 썼다. (29일자 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며”에서 경향은 “고인은 검찰의 언론플레이만으로 '640만달러짜리 서민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경향신문도 그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새기고자 한다”라고 썼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그 마음으로만 간다면 더 좋은 내용으로 신문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겨레는 제목을 뽑는데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한다.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고 제목을 선정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경향과 한겨레 모두 지금부터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스스로의 위치를 잘 잡아가야 한다.

- 활동의 의미는 어디에서 느끼나?
= 처음에는 신문사업자들의 판촉인 줄 알고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어떤 ‘대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수고가 많다'며 천원이라도 돈을 주고 가시는 분들도 생겼다. 그리고 “야, 경향이다”, “야, 한겨레다”라고 반가워하시는 분들이 늘었다는 것이 처음 이 활동을 시작했을 때와는 다른 반응이고 보람을 느끼게 만든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쳤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이들은 나에게 “조심하세요. 조중동 기자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라면서 걱정의 말을 건네며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또다시 이들은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펼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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