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는 가족과 동료들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29일 오후 5시경, 경찰은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옆쪽에 있던 시민들을 향해 “노 전 대통령을 마음에 묻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며 “일터에서 영결식의 의미를 되새겨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길 바란다”는 내용을 담은 경고 방송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추모는 서울시청 근처에서 하지 말고, 돌아가서 가족·동료들과 함께 하라는 것이었다.

이날 오전 11시에 치러진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보면서 많은 시민들이 눈물을 훔쳤다. 약 40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이들의 행렬은 광화문에서 시작해 서울시청, 남대문까지 이어졌다. 시민들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노 전 대통령의 상징색인 노란색 모자와 손수건을 이용해 노란색 물결을 만들었다.

▲ 29일 오후 5시경, 시민들이 프레스센터 앞에서부터 덕수궁 앞까지 모여있다. ⓒ송선영

이날 오전 11시 경복궁 앞뜰에서 진행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과 같은 시각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진행된 ‘시민 영결식’, 오후 1시부터 이어진 추모 행사와 노제. 그리고 오후 3시경 운구 행렬의 서울역 방문을 끝으로 서울에서의 국민장 공식 행사는 마무리됐다. 그러나 시민들은, 앞서 진행된 행사만으로 전직 대통령을 잃은 시민들의 슬픔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고 판단했던 걸까? 시청광장, 덕수궁 앞, 프레스센터 앞, 국가인권위원회 앞 등 삼삼오오 모여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를 이어갔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프레스센터 옆쪽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경고 방송을 했다.

“여러분은 애끓는 순정으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여러분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십시오. (노 전 대통령을) 마음에 묻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도로위로 올라가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장이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일터에서 영결식의 의미를 되새겨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길 바랍니다. 국민장이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고인의 뜻입니다. 이것이 고인을 더 높이는 것입니다.”

▲ 시민들이 경찰에 항의하는 의미로 그 앞에서 책을 읽고 있다. ⓒ송선영

시민들은 경찰의 경고방송이 나올 때 마다 “왜 너네(경찰)가 우리 대통령을 함부로 부르냐”며 “부르지 말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일부 시민들은 경찰의 이같은 행동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찰 병력 앞에서 책을 읽거나 도로 위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경찰의 경고 방송이 가려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소리 높여 불렀다.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것도 자신의 사저 뒤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었고, 당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포괄적 뇌물죄’라는 애매모호한 혐의를 적용해 비난을 받던 터였다. 탈권위주의적이고 소탈해, 그 어느 대통령보다 국민들에게 친근했던 대통령이었기에 국민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이런 대통령의 영결식이 바로 오늘이었다. 더군다나 국민장 기간은 오늘밤 자정까지였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태운 운구 행렬이 서울에서의 최종 목적지인 서울역으로 향한 지 몇시간이 지나지 않은 오후 5시, 국민장 기간이 채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경찰은 “마음에 묻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돌아가 영결식의 의미를 되새겨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라”고도 했다.

▲ 경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힌 펼침막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다. ⓒ송선영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스스로 왜곡했다. 입다물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 국민장이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 노 전 대통령이 원했던 걸까. 평소 민주주의와 토론, 소통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던 노 전 대통령의 행적을 볼 때, 시민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은 ‘불통’의 자세로, 오로지 시민들을 도로 밖으로 몰아내기 위한 경찰의 이같은 행동은 분명 노 전 대통령이 원하던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현장에 배치된 전경들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의미로 검은색 근조 리본을 달았다. 근조 리본을 달았지만, 경찰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정 추모할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이 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혀있는 펼침막 앞에 방패를 비롯한 장치로 중무장한 채 선 경찰이 어색해 보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직 대통령을 추모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이기적이고도 막돼먹은 경찰은 참 징했다.

▲ 추모를 위해 모인 시민들 뒤쪽으로 경찰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송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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