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제까지는 두고 보자’를 되삼켰던 일주일이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언론은 제각각 그러나 각기 다르게, 추모 이후에 대한 말을 던지고 있었다. 오늘 아침 신문은 각각 DJ(경향), 서해(조선일보), 노무현(한겨레)을 1면에 올렸다.

어제, DJ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설명하며, ‘치욕’과 ‘결단’이란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 단어의 앞에 놓일 단어를 꼽자면, ‘조롱’과 ‘무시’쯤 될 것이다.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조롱과 무시’. 그렇다. 경향은 영결식 이후 도래할 사나운 앙시앵레짐(Ancien Regime), 구체제의 섬뜩한 복수를 염려하고 있었다. 광장을 막고, DJ의 추도사를 막고, 대나무 대신 PVC 만장을 쓰라 하고, 안보를 이용해 국면 반전을 시도하는 정부를 어찌해야 할 것이냐 묻고 있었다. 공식적 영결식을 마지막으로 추모 국면이 마감된 이후에 전개될 정부의 광폭한 행보, 악어의 눈물을 닦고 벌일 복수극에 대비하잔 메시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통해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현 정부는 전직 대통령은 물론 시민, 추모객 가릴 것 없이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불온하게 보고 있다.

▲ 경향신문 5월 29일자 1면.
참여정부 내내 서해교전과 정권의 정체성을 잇대던 조선일보는 오늘 서해로 노무현을 덮었다. 1면 톱은 물론 5면까지 북핵과 서해에 대한 확장과 경계로 내달렸다. 상호 선제공격 시나리오까지 읊으며, 난데없이 핵주권론까지 논점을 확장시켰다. 간명하지만 단호한 전환이었다. 조선일보는 오늘을 ‘추모 국면’이 아니라 ‘북핵 국면’이라고 단언했다.

며칠 전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국민장이 변질돼 소요사태가 일어날까 걱정”이라며 “참으로 큰 위기를 깊이 아직 인식을 못하고 있는” 국민들을 우려했었다. 그 발언은 결국, 현 국면 이후에 놓여질 ‘소요’를 위기 담론으로 덮어야 한다는 여권의 속살이었다.

▲ 조선일보 5월 29일자 1면.
한겨레의 오늘 편집도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광고를 비롯하여 거의 신문 전체가 ‘노무현’을 향해 맺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노무현의 가치와 상징을 기억의 대상으로 삼은 한겨레의 오늘 기조는 서울광장 노제의 정서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정확한 설명이 되진 않겠지만, 지난 7일간 대통령으로서 그의 5년에 대한 평가보단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정치의 감성을 회복했던 ‘희망돼지’의 상징적 ‘간지’로 기억되었다.

오늘 한겨레 지면에 등장한 진보 진영은 ‘화합과 통합’이라고 하는 묵직한 소명의식에 짓눌려 있어 보였다. 광장이 봉쇄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계속 싸워 나가야 한다’는 얘기를 해야 했지만, 오늘 아침까지도 차마 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 한겨레 5월 29일자 1면.
발걸음을 어쩌지 못하고, 기사를 쓰다말고 광장에 다녀왔다.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뜬금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생애 처음 마주한 대통령 영결식이었고, 그 스펙터클에 입이 벌어졌지만, 꾸벅꾸벅 졸음은 밀려왔다. 죽음은 그럴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추모와 오열로 탈진을 맞았을 광장이 걱정되었고, 애도가 끝나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분노가 어디로 갈 것인가 까마득했다. 현장 생중계의 임무를 맡아, 사정없이 바삐 카메라를 돌려대던 방송이 추모와 애도 이후의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줄까?

이제 막, 합의된 일주일이 끝났다. 살아난 노무현의 간지, 그 시대정신을 불온하게 여기며 시국이 어느 때인데 소요를 하려 덤비느냐고 드잡이를 시작할 정부.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MB에게 고함을 치다 경호원에게 제압당해 입이 틀어막힌 백원우 의원의 사진이 심란하다. 반나절 만에 훨씬 더 어지럽게 펼쳐지고 있는 사건의 향연 속에서 짧은 글을 막 마치려는데, 시청을 봉쇄하려드는 전경과 시민들이 맞서기 시작했다는 속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 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거행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를 하려던 순간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사죄하라'며 소리치다 경호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히고 있다.ⓒ 오마이뉴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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