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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초의 만남, 100년의 약속[김사은의 라디오 이야기] 전북원음방송 PD
김사은/전북 원음방송 PD | 승인 2009.05.29 17:14

어쩌면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마치 오랫동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것처럼……. 조용한 기다림, 몇 발자욱 앞으로, 헌화, 묵념, 오른쪽으로 돌아서 상주와 인사, 조용히 빠져나가는 인파 뒤로 다시 한 무리의 추모객이 같은 순서대로 들어선다. 2분도 걸리지 않는 시간, 100초를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셈할 수 없다. 사랑은 시간으로 환산할 수 없기에. 그렇게 그분과의 마지막 만남을 준비한 사람은 국민장 기간 줄잡아 100만.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를 다녀간 추모인파의 숫자다. 무엇이 이토록 국민들의 마음을 묶어두는가. 봉하로, 봉하로, 무엇이 이토록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는가. 가기 전에는 몰랐다. 거기 무엇이 있는지.

전주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해 봉하마을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30분경. 분향소 앞에는 이미 200여명의 조문객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경향각지에서 날을 새가며 봉하로 온 사람들이다. 자원봉사자들의 조용하면서도 절도있는 행동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사람들 같았다. 매일 30도를 웃도는 오뉴월 땡볕에서 20여만명의 조문객을 맞이하면서도 각자 맡은 역할과 책임 공간에서 전혀 흐트러짐 없는 봉사자들의 모습에 경의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바위 ⓒ김사은PD 제공  
 
부엉이 바위를 올려보니 마치 그분의 넋이 그곳을 배회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세상을 내려다 보며 마지막으로 그분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봉하 마을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청취자들을 위해 마이크를 꺼내들고 봉하 마을을 담기 시작한다.

‘오고 싶었는데 늦게나마 와서 마음이 놓인다’고 비교적 편안하게 인터뷰를 시작한 50대 여성. 충북 제천에서 왔단다. 여기서 제천이 어디란 말인가. “가슴이 너무 아프죠. 평소에 너무 존경했고, 정말 보통사람 같은 분… 4월에 뵙고 갔어요. 꽃이 피면 또 보자고, 오라고 그랬거든요.” 울음을 터뜨린다. “결국 지켜드리지 못했어요.” 오열하는 그녀와 손을 붙잡고 함께 울었다.

부산에서 혼자 왔다는 60대의 남성. 기념관에서 우두커니 희망돼지를 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내밀었더니 울음부터 터뜨린다. 얼마나 참았을까. 생전에 뵌 적도 없고, 국회의원 선거 때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감정이 극에 치닫던 시점에 늘상 그랬듯 영남에 한표 찍었는데 대통령 되고나서 지켜보니 그렇게 양심적일 수가 없더라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정말 꿈같은 이야기같다‘며 존영 앞에서 성실히 살겠다고 맹세했단다. “정말 성실히 살겠다고 맹세했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거의 오열했다. 간간히 말을 멈추던 이 분, “내것 버리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 있구나 하는 걸 알았습니다.” 이 말을 남기고 마이크를 손으로 잡는다. 그만하라는 뜻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어디 있을까.

충남 홍성에서 온 여고1학년 여학생은 “꼭 와봐야 할 것 같아서 부모님과 함께 왔다”며 언론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새벽에 내려왔어요. 영정사진에서 웃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 가슴아파요. 안타까워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대통령되신 분인데요, 그땐 어려서 잘 몰랐거든요. 근데 중학교 되고 많은 걸 알게 되고 정치가 뭔지 깨닫게 되면서 진실을 알게 됐어요. 많은 일을 하셨는데 언론에서 얘길 안 해주더라구요. 돌아가시고 나서 TV에서 업적 얘기, 이런 얘기 아이러니해요. 돌아가시고 나서 대접해 드리는 게 웃기더라구요.”

이 학생은 “현 정권에서 언론의 자유 막잖아요. 그런거 느끼거든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언론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정치인이 꿈이라는 이 소녀는 노무현 대통령처럼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그런 정치인이 되겠다고 밝혔다.

   
  ▲ 김사은PD가 참배객을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김사은PD 제공  
 
충남에서 온 50대의 주부는 “평상시 신문과 TV를 통해 봉하마을 봤지만 생각보다 그들이 ‘아방궁’이라고 말하는 테두리에 어긋나는 현실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졌다”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고작 이 정도였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나머지 말을 직접 옮겨본다.

“이 시대를 숨쉬고 살아가면서 앞으로 얼마나 대통령을 제 손으로 뽑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아버지 같고, 흙냄새 나는…… 못사는 사람 입장을 생각하는 대통령이 탄생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분들 탄생하면 누구라도 지지할 것입니다.(격정) 더 이상 가신님에 누가 되지 않도록 이 아픔을 쉽게 쉽게 잊어버리는 현실이 가슴 아프구요, 잊지 말으셔야 합니다.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울음) 노무현 대통령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남긴 말들. ⓒ김사은PD 제공  

평소 마이크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도 “봉하 마을에 오지 못한 국민을 위해” 거침없이 한마디씩 동참했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게 아니라 아예 “펑!” 터질 것 같은 가슴속 분노와 회한, 격정이 가슴에 가득 담겨 있었다. 마이크만 갖다 대면 눈물을 쏟아냈다. 고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현장에서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이분들이 왜 봉하 마을로 왔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은 봉하 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잘 안다고,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미안해하고 있는지 용서해달라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걸 확인해주고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몸을 던지신 그 뜻…… 잊지 않겠다고. 그렇게 ‘노무현’이라는 이름 앞에서 하나가 됐다.

   

1965년 볕 좋은 봄, 지리산 정기가 서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지방일간지 기자와 방송작가 등을 거쳤고 2000년 원음방송에 PD로 입사, 현재 편성제작팀장으로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화두삼아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지역 갈등 해소, 지역 문화 발전에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왔다. 수필가로 등단, 간간히 ‘뽕짝에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써왔고 대학에서 방송관련 강의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어 드디어 지식이 바닥을 보이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용량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최근 전북여류문학회장을 맡았다. 방송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촌스러움’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blog.daum.net/kse1114

 

 

김사은/전북 원음방송 PD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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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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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현숙 2009-06-02 11:46:34

    우리가 지금껏 살았던 시간중
    가장 고귀하게쓸수있었던 100초가 아니었을까요?
    가기전엔 그곳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던
    필자의 말이 가슴을 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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