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국민들이 충분히 애도를 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정부여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촛불’로 번지지는 않을까 초긴장상태다. 노 전 대통령의 시민추모제를 열고 싶다며 서울광장을 열어달라고 했지만 끝내 정부는 허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바로 다음날인 24일 일요일 특별판에서부터 조선일보는 ‘촛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사거’라는 표현으로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던 조선일보는 당일 “광화문을 ‘촛불’에 넘겨줘야 할지도 모르겠다”던 한나라당 당직자의 말을 전했다. 어쩌면 이때부터 ‘서울광장’의 개방 여부가 정부여당의 자존심의 상징으로 변모되어 절대 개방해서는 안되는 공간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조선일보는 당일부터 ‘애도’를 표하는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이해’와 ‘화해’를 강조하고 나왔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생각은 지면 곳곳에서 드러났다. 25일자 사설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편히 잠들 수 있게 하자”면서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다. 그런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죽음이 또 다른 정치적 혼란이나 사회적 갈등을 부르고 국민 사이에 대립과 분열이 격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라고 ‘고인의 뜻’을 멋대로 규정해버렸다.

27일자 지면에서는 워싱턴 지국장의 말을 빌려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그의 비극이 대한민국 소용돌이 정치를 끝내는 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실었다.

그리고 오늘은 민주당에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오늘자 6면에서는 “민주, 서거 책임론 띄우며 ‘장례 정치’ 시동”이란 제목으로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5일간 침묵을 지켰던 민주당이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면서 ‘일부에선’ “장례의 정치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한 일부의 관측을 제목으로 뽑는 조선일보. 정작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 5월 28일자 조선일보 6면 기사
이렇듯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어떤 식으로도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고, 주장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던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조선만평, 노 전 대통령의 애도를 정치적으로 ‘이용’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오늘도 조선일보 신경무 화백의 ‘조선만평’에는 노 전 대통령 추모행렬이 등장했다. 만평이라 함이 항시 사회현상에 대해 풍자하고 비평한다는 의미이듯 조선일보의 만평에도 당연히 주제가 있다.

오늘 등장한 조선만평의 주제는 “북, 군사 타격 대응예고…”였고, 만평 그림을 보면 담 하나를 사이로 바깥쪽에는 북한군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동무들~ 쏜다, 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안쪽에는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 모여든 사람들이 “쟤네들 같은 민족 맞아?”라며 찡그리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이다. 참으로 사람의 얼굴표정을 잘 표현한 걸작(?)이 아닐 수 없다. 근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에서 군사적 도발을 한 것에 대한 언짢음이 그대로 표현해 냈으니 말이다.

▲ 5월 28일자 조선일보의 '조선만평'
찾아보니 조선일보는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했던 다음날인 26일부터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노 전 대통령의 조문객들을 등장시키는 만평을 연일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만평들은 결코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5월 26일 조선만평은 “이 와중에도…”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인 상황에서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었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의 조문객들은 “지 버릇 남줘?”라며 그러한 북한군을 싸늘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대조적으로 조문객들의 손에는 국화꽃이 들려있었고, 눈물을 흘리는 다수의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국민들이 있었다. 한국사회의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조선만평은 어제인 5월 27일에도 “‘예의’라곤…”이라면서 북한이 핵실험에 이어 연일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것을 표현하고, 그 아래쪽에는 노 전 대통령 국민장 분향소 가는 길 표시에 줄을 서 있던 조문객들이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네…”라고 또 역시 비판하고 있다. 그것도 노 전 대통령의 유행어(?)까지 써가면서. 조문객들이 충격 받은 모습들을 잘 표현했다.

▲ 왼쪽은 5월 26일자 조선만평, 오른쪽은 5월 27일자 조선만평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의 추모행렬에 대해 일반 ‘국민’보다는 ‘정치인’, 정치인 중에서도 ‘한나라당’ 의원들과 ‘재계인사’들을 중심으로 기사를 쓰고, 사진을 배치해왔지 않았던가.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민주당 의원들보다는 봉하마을에서 조문도 못하고 쫓겨나는 이회창 총재,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한승수 총리,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과 1Km에서 발길을 돌린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던가. 그리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덕수궁의 추모물결보다는 정부의 공식적인 분향소인 서울역사박물관에 주목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조선만평에서 노 전 대통령 추모행렬의 주인공은 일반 ‘국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관련기사와 사진을 비교했을 때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그 ‘국민’의 입을 통해 북한의 군사적 행동들을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눈엔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슬픈 애도를 표하는 국민들이 관련 기사를 쓸 때에는 보이지 않다가 북한의 군사행동을 비판하기 위한 만평에서는 보이나 보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평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줬으니 조선일보에 황송하다는 인사라도 드려야 할까?

이렇듯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던 조선일보는 철저히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그리고 애도를 표하는 ‘국민’들을 이용했다. 물론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애도를 단 하루아침에 끝내버렸다. 조선일보의 지면은 북핵으로 뒤덮였고, 노 전 대통령 서거 기사는 대폭 축소됐다.(‘조중동, 북핵으로 국민의 애도를 덮다’ 기사) 이런 조선일보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그리고 슬퍼하는 국민들의 ‘애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북한의 군사행동을 비난하는 것 역시 꼴사납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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