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방송의 중간광고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지상파방송의 중간광고를 반대하는 신문과 케이블TV 업계의 주장이 연일 '입맛대로' 지면을 뒤덮는가 하면 이에 질세라 중간광고의 필요성과 효과를 노골적으로 역설하는 지상파방송 뉴스는 홍보 일색이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이같이 광고시장을 놓고 벌어지는 매체간 갈등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시청자 권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고, 사회적 논란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채 중간광고 허용 확대를 추진하기로 한 방송위원회는 '졸속 결정'이라는 따가운 비판에 직면해 있다.

시청자 불편인가? 신문·케이블업계 피해인가?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이 거론될 때마다 가장 큰 반대 논리로 힘을 발휘한 것은 '시청자의 시청권' '시청자들의 불편'이다. 시민단체에서 줄기차게 중간광고 도입을 반대하고 우려했던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신문들이 "방송사 수익을 올려주기 위해 시청자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에선 짚고 넘어갈 요소들이 발견된다. 조선일보 보도가 대표적이다.

▲ 조선일보 11월 3일자
조선일보는 지난 3일 <"방송사 수익 올려주려 시청자 권리 무시">에서 "중간광고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강제로 광고를 봐야 하는 일반 시청자들"이라며 "중간광고를 하고 있는 케이블TV와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이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지상파 프로그램의 선정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우려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또 지적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조선일보는 한발 더 나아가다 스스로 발목을 잡고 만다.

조선일보는 이날 <미·영·일 공영방송은 광고 자체를 안해> 기사에서 외국 사례를 소개하며 "해외에서는 KBS 2TV나 MBC처럼 상업적인 광고와 더불어 중간광고까지 하는 공영방송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공영방송의 광고를 아예 금지하거나 부분적으로 광고를 허용하더라도 민영방송보다 엄격히 제한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조선일보 스스로 언급했듯이 "영국 BBC와 일본 NHK가 중간광고는 물론이고 TV광고 자체가 금지된" 이유는 "국민들이 내는 수신료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다.

결국 KBS가 추진하고 있는 TV수신료 인상을 갖가지 이유로 반대하다가 이젠 중간광고를 반대하는 논리로 (수신료로 운영되는) 외국의 공영방송 사례를 끌어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독자들은 "시청자의 권리를 위해 중간광고는 하면 안되니까 수신료를 올려주는게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수신료도 안되고 중간광고로 안된다는 것인지" 헷갈릴 수 있다. 수신료를 올려주기는 '감정적'으로 싫고, 중간광고는 한정된 광고시장을 누가 더 가져가느냐에 대한 살벌한 경쟁이라는 점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 조선일보 11월 2일 사설
조선일보는 또 지난 2일자 사설 <시청자 괴롭히는 중간광고 기어이 허용하나>에서 "지금도 TV광고가 많아 지겨워하는 시청자들인데 중간광고까지 도입되면 드라마를 비롯한 TV프로그램이 10~15분마다 수시로 끊기면서 광고가 끼어들게 된다"며 이렇게 되면 지상파방송사들이 한해 5300억원(케이블TV협회 추산)의 광고수익을 더 올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지상파에서는 추가 수입을 연간 400억원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일방의 주장만을 '선택'해 기정사실로 둔갑시켰다.

그러면서 "중간광고가 허용되면 지상파 방송사로 광고가 몰려 케이블이나 위성방송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며 미디어업계 전체에 끼칠 영향을 걱정했지만 "신문도 영향을 받는다"는 속내는 밝히지 않았다.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만을 선별하는 태도는 자신들의 '과오'를 덮어버리는 결과도 초래했다. "TV광고가 많아 지겨워하는 시청자"라고 걱정했지만 자신들이 광고를 위해 증면경쟁에 나서고 광고인지 기사인지 모를 '기사형 광고'를 게재해 사회적 비판을 샀던 대목은 어디에도 없다. "TV광고가 많아 시청자들이 불편하다"면 역시 "신문광고가 많아 독자들이 불편하다"는 논리도 성립돼야 한다.

지상파방송 더 굶어봐야 한다?

중간광고를 둘러싼 지상파와 케이블업계의 갈등과 대립도 시청자들에게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뿐이다. 중간광고를 통한 지상파 방송의 추가 수익에 대한 전망도 엇갈리는데 한국케이블TV협회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중간광고를 통해 연간 5300억원의 추가 수입을 올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간광고 단가는 프로그램 시작 전후 광고보다 2배 가까이 비싸다는 것이 그 근거다. 반면 지상파방송들은 연간 400억원 정도일 것이라고 반박한다.

문제는 자신들도 중간광고를 하면서 수익을 올리고 "시청자들의 짜증을 유발하면서" 다른 경쟁매체에는 무조건 안된다는 논리를 펴는 것이 우습다는 것이고, 연간 400억원의 추가수익을 위해 각종 사회적 우려와 반대를 무릎쓰고 중간광고 허용을 요구하는 지상파방송사들의 논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지상파방송사들은 자신들의 '재원 위기'를 다급하게 외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구호'에 머무는 형편이고, 실질적인 '현상'으로 드러나거나 객관적이고 다각적인 검토는 미비하다. 중간광고 허용 요구가 지상파 방송의 생존과 공영성 강화 방안으로 포장되는 사이 "지상파 방송은 더 굶어봐야 한다"는 자조섞인 이야기가 지상파방송 내부에서 터져나오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사회적 합의 미비한 '졸속결정'이 가장 큰 문제

'시청자의 권리 침해' '지상파 배불리기'를 이유로 지상파 중간광고를 결사 반대하던 신문과 케이블TV 업계 등은 방송위원회가 지난 2일 중간광고 허용을 결정하자 정치 공세와 의혹으로 초점을 옮겨가고 있다. 정치권이 대선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에게 안겨준 '선물'이라는 논리이고, 서둘러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의구심이다. 방송위의 표결에서 조창현 방송위원장을 제외한 여당 추천 방송위원 5명이 찬성표를 던졌으니 이런 말이 나올만도 하다.

특히 사회적 합의, 여론 수렴 절차가 미흡한 상태에서 족솔으로 결정를 내렸다는 지적은 방송위로서도 피해갈 수 없는 대목이다. 방송위는 지난 2일 지상파방송의 중간광고 허용범위 확대를 추진하기로 의결하면서 오는 14일 공청회를 통해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치겠다고 밝혔지만 지상파방송사의 재원구조 위기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나 워크숍 없이 추진된 이번 결정을 바라보는 각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동아일보는 이와 관련해 6일 <중간광고 밀어붙이기 그들만의 방송위>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방송위가 중간광고 허용 과정에서 전체회의 워크숍이나 전문가 초청 공청회도 갖지 않은 것은 졸속 처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위는 올해 2월부터 소위원회를 만들어 중간광고 개선안을 만들었지만 이 안에 대한 심도있는 토의는 한 번도 없었다. 또 지상파 방송사의 주장대로 중간광고를 허용해야 할 만큼 경영상 위기가 온 것인지도 확인한 바 없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 <'언론운동 투사' 최민희씨의 이중성>에서는 이렇게 밝혔다.

"중간광고 도입에 찬성한 방송위원 중 두드러진 인물은 최민희 부위원장이다. 그는 과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활동을 하면서 일관되게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중략) 언론운동가 출신이 중간광고 도입에 찬성하는 것은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다."

이러한 지적은 최 부위원장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MBC 최문순 사장을 비롯해 전국언론노조에서 활동하면서 중간광고를 반대했던 사람들이 현업으로 돌아가 중간광고 허용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다는 사실을 달리 해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 동아일보 11월 6일 사설
방송위는 오는 14일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방송법 시행령의 개정 수순을 밟을 예정이지만 지금과 같은 '졸속 처리' 비판을 어떻게 돌파해나갈지 미지수다.

우선 국회에서도 제동을 걸 태세를 보이고 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지난 5일 "중간광고를 방송위가 독단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그 허용범위를 방송법에서 규정하게 해야 한다"며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중간광고의 허용범위는 방송법 시행령(59조2항)으로 규정하게 돼 있다. 따라서 국회 동의 없이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승인을 거치면 시행이 가능하다.

방송위 노조 "충분한 논의 생략된 절차, 외부 '정치적 해석' 자초"

시민단체의 반대도 강력하다. 무엇보다 이번 중간광고 허용 정책의 추진 과정을 강력하게 문제삼고 있다. 중간광고 허용 결정을 철회하고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거세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5일 성명을 통해 "지상파방송의 공공적 역할이 위축된 것이 단순히 재정적 어려움 때문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방송사나 그 구성원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지도 않는다"면서 "지상파 방송의 재정적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중간광고 도입'이라는 해법부터 도출된 것은 논의의 절차도 잘못된 것이고 논리 자체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민언련은 "중간광고 허용 결정을 철회하고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시청자의 시청권을 크게 방해할 중간광고 문제를 사회적 동의 없이 이처럼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 중간광고에 대한 많은 논의가 폭넓게 이루어지고 공감을 넓혀가는 사회적 합의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또한 방송위는 방송사에 대하여 좀 더 철저한 자기 혁신과 방송의 공공성 구현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 동아일보 11월 6일자
문화연대도 6일 성명을 내고 "방송위원회의 중간광고 허용 범위 확대에 대한 결정이 방송정책 입안에 있어 방송위원회의 독단과 방송사업자 중심의 논의 구조가 성립된 점에 대해 규탄한다"며 "방송의 공공성과 시청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닌 사업자의 이해관계와 재벌의 탐욕, 방송위원회의 눈치행정으로 채워진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 범위 확대 결정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방송위원회 지부(지부장 한성만) 역시 지난 5일 성명에서 "이번 중간광고 허용범위 확대추진 정책을 결정하면서 보인 일부 방송위원들의 행태는 합의제 기관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다수의 힘으로 몰아붙이는 국회의 축소판이었다"며 "일부 위원들은 충분한 논의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상파방송사의 재원구조 위기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나 워크숍 한번 없이 일사천리로 절차를 진행하면서 표 대결까지 벌이는 바람에 결국 외부의 '정치적인 해석'을 자초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민언련·문화연대 등 "중간광고 허용 철회하고 사회적 논의부터 시작하라"

시민단체들은 이같이 방송의 공공성과 시청자 권리 강화, 사회적 합의 절차 확보라는 측면에서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입장은 당장 철회돼야 한다는 성명을 쏟아내고 있지만 방송현업단체들은 중간광고 추가 수익을 공익적인 부분에 써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중간광고 도입의 현실적 불가피성을 감추지 않고 있다.

PD연합회와 방송기술인연합회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방송인총연합회는 6일 "방송위의 결정은 중간광고가 다른 매체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하면서 그나마 유효한 방안이라는 것을 직시한 데서 나온 것"이라며 "중간광고로 추가 형성된 재원이 있다면 공익성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대국민 약속을 해야한다"고 밝혔다.

중간광고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여러 이해관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론으로 수렴될 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관련 당사자, 정책결정권자, 전문가들이 품고 있는 생각은 저마다 다르고, 공론의 역할을 해야 할 '언론'도 자신의 입맛과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사회적 논의와 합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된다면 결국 우리사회에 돌아오는 것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기본'과 '상식'을 바탕으로 각계의 충실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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