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한 서거로 한국사회 대부분의 일상이 취소되거나 미뤄지고 있다. 당연하다. 소소하게는 한 집안의 우환에도 애경사는 평온한 날을 기다리는 것이 고금의 상식이고 습성이다. 하물며 국상 중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글줄이나 읽은 자라면 앞서 행하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이런 상식을 삼켜 버리는 비루한 족속들이 현재 두 군데서 발견되었다. 하나는 핵실험과 미사일을 쏘아올린 북한이고 또 하나는 한나라당 추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운영소위원회) 위원들이다. 북한이야 우리의 통제밖에 있으므로 논외 또는 후로 미루더라도 한나라당 측 미디어위원회 운영소위 위원들의 아집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미 여야가 유월 국회를 순연하여 열기로 합의한 마당에 한나라당 측 미디어위원들은 한나라당 의원보다 더한 발걸음을 하고 있다.

▲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여의도통신
이번주 미디어위원회는 27일 대전지역 공청회와 29일 전체회의 및 보고서 작성을 위한 워크숍 등이 예정되어 있었다. 물론 이 동안에 지역공청회 확대와 여론조사 및 자료조사를 위한 수차례 논의를 더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이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는 초유의 사태에 야당 추천 미디어위원들은 국민장 기간에 언론법에 대한 국민들의 정상적인 여론수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한나라당 측에 일정 연기를 요청하여 동의를 받았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우려한대로 한나라당 측 운영소위원은 일정 연기 요청은 수용하되 미디어위원회의 종료일은 예정대로 6월 15일이어야 한다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즉, 추모기간 중에 미디어위원회가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이를 활동기간 백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공백기를 유효기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장 기간 동안 여론수렴은 하지 않으면서 이 기간을 ‘미디어위’ 활동에 포함시키는 기발한 발상은 과연 한나라당 추천위원답다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당은 재벌과 조중동에 방송을 허락하고 인터넷 여론을 묶어버리는 언론법 개정에 애초부터 여론의 지지를 얻을 자신이 없었다. ‘재벌방송’과 ‘조중동방송’, ‘정부기관의 인터넷 검열’로 간단하고 단순히 이해될 수 있는 개악안을 온갖 난해한 말과 문장으로 행정 관료와 국회, 전문가 집단의 전문영역으로 분리하여 국민을 따돌렸다. 마지못해 받아들인 ‘사회적 논의기구’는 의미를 축소시켰고 미디어위원회의 대 국민 기피증은 정신병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단 네 차례에 걸친 지역공청회는 홍보도 없었고, 위원회가 나선 인터넷 생중계도 없었으며, 방청인의 의견진술 기회조차 박탈하기도 했다. 국회 내 공청회는 공술인에 대한 일방적 청문회에 불과했다. 형식은 유지하되 유효한 위원회 활동을 제약하는 딴죽걸기 시간지연은 한나라당 측이 여론수렴으로 개념정의 하는 전술이었다.

한나라당과 그 추천 위원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하늘이 준 기회다. 야당 측에서는 당연히 일정의 연기를 요청할 것이고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면 된다. 대신 위원회가 활동기간 연장에 대한 권한 한계를 내세워 전체 활동 시한은 늘리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버티면 그만이다. 위원회의 운영은 자율에 맡긴다는 여야 합의문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여론조사의 결정은 한나라당에 물어보아야 한다며 치마폭에 숨어 꼼지락거리는 꼴을 본 터라 뭐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을 핑계로 편취하려는 사심은 공당의 추천자들이 할 짓은 아니며 문자를 깨우친 자들이 할 일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야당 추천 위원들에게 추모기간을 숙연히 지내고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언론의 행태를 되돌아 볼 것과 논의하고 있는 언론법이 이들과 무관하지 않음으로 더 연구할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먼저 제안해야 마땅하다.

미디어위원회의 시간은 국민과 함께하는 시간이지 한나라당과 추천 위원들의 사적 시간은 더욱 아니다. 한나라당 측 위원들이 들어내려는 시간은 주권자인 국민이 그들의 권위를 위임받은 정부와 국회에 보내는 메시지 전달 시간이며, 어제 세상을 등진 전직 대통령이 앞마당을 돌려 달라며 언론을 향해, 그 언론을 규정할 법령을 향해 말하고 싶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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