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 성과급제 권고지침을 내렸다. 그리고 성과급제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아니므로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를 통해서 실시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힌트(?)도 주고 있다. 성과급제를 불법으로 강행하지 말라는 노동조합의 말에, 병원장은 자기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 정부에서 성과급제 지침이 내려오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성과급제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인데 성과를 내고 수익을 창출하라니. 기념품이라도 만들어 팔고 병원 로비에서 호떡이라도 구워 팔라는 건가? 아니면 비싼 검사나 시술을 많이 받는 환자, 돈 되는 환자를 많이 유치하고 환자에게서 더 많은 돈을 받아내라고 권하는 건가? 병원에서 한 달이라도 일해본 사람이라면 성과급제와 환자안전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는 걸 알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노조원들이 9월 27일 오전 서울대병원 로비에서 정부의 성과연봉제 등에 반대하는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나는 지금은 혈액투석실에서 일하지만 그 전엔 내과중환자실에서 근무했다. 중환자실에선 내 담당환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어 위급해지면 즉, 심폐소생술과 같은 상황에서 십여 명의 간호사가 일사분란하게 서로를 돕는다.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서는 4명의 간호사가 필요하다. 그러면 나머지 간호사들은 그 간호사들의 담당 환자들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고 투약 및 필요한 각종 의료처치들을 대신 커버해준다. 그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안 다른 환자들이 위험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니 환자, 내 환자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성과급제가 되면 그렇게 자발적으로 나서서 남의 환자를 돕게 될까? 돕더라도 눈에 띄는 일을 하려고 하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머지 환자들의 상태를 보살피는 일을 하려 할까? 실컷 심폐소생술 끝내고 돌아왔는데 내 환자상태가 엉망진창이고 중요한 약물이 하나도 투약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래서 투약오류 보고서 따위를 써야 하고, 나쁜 점수를 받고, 저성과자로 한심한 취급을 받고, 월급까지 깎인다면… 이 간호사가 다음에 다른 사람의 담당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때 만사 제쳐두고 선뜻 달려갈 수 있을까? 다른 간호사의 실수를, 다른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을 외면한다 해서 누가 이 간호사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성과급제를 실시하면서 “성과에 눈이 멀어 환자의 생명은 뒷전인 간호사!”라고 비난할 건가?

병원은 협업이 필수이다. 우리가 인형 눈 붙이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10개 만든 사람에게 1000원 주고, 15개 만든 사람에게 1500원 주는 거 당연히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병원일은 모든 것이 환자 중심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환자의 질병이 악화될 수도 있고, 내가 담당하는 환자가 정말 심각한 상태일 때는 간호사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대체 누굴 위한 성과급제인가? 간호사들이 능력에 비해 월급이 부족한 것 같아서 안타까운가? 성과급을 얼마 주건 간에, 나는 위급한 환자에게 달려갈 때 각종 시말서나 성과급이 아른거리는 간호사가 되고 싶지 않다.

나이팅게일 선서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나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성과급제가 도입되면 이 선서는 바뀌어야 할 판이다. “나의 성과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나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월급통장의 안녕을 위해서 헌신하겠습니다.”

서울대병원이 원하는 간호사가 이런 간호사인가? 병원 성과급제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의료인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 원장님은 졸업한 지 오래 돼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생각나지 않나 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네 번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성과급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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