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기로, 최선규 위원은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 중에서 한나라당이 내세운 언론관련법 개정 이유와 개정 효과를 찬성하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의견과 논거다운 논거를 내세운 몇 안 되는 분들 중 한 명입니다. 그래서 논쟁에 가까운 의견 교환이 가능했던 몇 안 되는 분이었습니다. 연구소 관련 일 때문에 미디어위 활동을 중간에 그만두게 됐지만,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최 위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는데, 최근 여론조사 논란을 보면서 계기가 될 수 있을 듯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최 위원은 미디어위 안에서 우리나라 국민은 ‘현명한 수용자’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지난 4월10일 열린 미디어위 전체회의에서 방송뉴스를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자산규모 기준을 폐지하는 것을 찬성하는 논리의 하나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특정방송사가 관점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계속적으로 왜곡적인 보도를 할 경우 시청자가 채널을 전환할 수 있음 (우리나라의 시청자 수준은 1980~90년대 수준보다 많이 향상되었음. TV 채널 돌리기는 신문 끊기보다 훨씬 수월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현명한 수용자’론은, 방송뉴스를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자산규모 10조원 미만)을 폐지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로 최 위원이 든 이유들 중에서 가장 그럴 듯한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3가지 이유에 대한 비판은 글 뒤에 따로 붙입니다.)
최 위원은 지난 5월22일 열린 미디어위 인천공청회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쳤습니다. 공술인으로 참석한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에게 다음과 같은 논리로 물음을 던졌습니다. 수용자의 불신을 받는 신문의 방송뉴스 소유에 반대한다는 손 원장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수용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신문이 방송에 들어올 경우에 영향력이 있겠냐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우리나라 수용자가 알아서 현명한 판단을 하기 때문에 ‘조중동’이 들어오더라도 방송 쪽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손 원장은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는 게 대부분 사람 바람인데 국민들을 시험에 들게 하시겠다는 것 같다”며 농담 섞어 답변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신문시장에서 조중동은 구독계층에서 가장 낮은 신뢰를 받고 있는데 여전히 거대신문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최 위원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역으로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살펴본 대로 최 위원의 ‘현명한 수용자’론은, 방송뉴스 소유 대기업 기준 폐지, 신문의 방송뉴스 소유 허용에 찬성하는 매우 중요한 근거입니다. 그런데, 최 의원의 이름이 지난 5월16일 한나라당 추천 위원 일동 명의로 발표된 ‘성명’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민주당 추천 위원들이 여론조사로 법조문을 결정하자고 주장했다’는 식의 날조된 내용이 담긴 성명에 말입니다. 그동안 미디어위 속기록 내용에 비춰보면, 이것이 명백한 사실 왜곡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민주당 추천 위원들이 주장하는 여론조사가 ‘법조문을 묻는 무식한 방식의 여론조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가 보기에 최 위원이 여론조사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최 위원의 ‘현명한 수용자’론은 왜 여론조사 앞에서는 멈추는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현명한 수용자’가 여론조사 앞에서는 ‘어리석은 수용자’가 되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 명의의 성명에는 ‘한나라당 법안 내용을 일반 국민들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도 있고, ‘응답률이 저조해 조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최 위원이 어떻게 이런 표현에 동의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현명한 수용자’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국민은 한나라당 법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보는 게 일관성이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자생적 시장질서와 ‘현명한 수용자’ 시각에 따라, 그때그때 사안에 대해 합리적으로 즉각 판단한다는 게 아니라 동태적인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KBS, MBC, SBS의 언론관련법 보도는 조금씩 다 달랐습니다. 조중동은 전면 찬성이었고,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은 극히 비판적이었습니다. 인터넷 역시 비슷했습니다. 수용자는 어느 일방에 치우친 정보만을 얻은 바 없습니다. 최 위원의 ‘현명한 수용자’ 시각에서 본다면, 언론 관련법 보도에 대해서도 수용자는 현명한 판단을 했을 겁니다.
민주주의가 공장 문 앞에서 멈췄던 역사가 있고, 지금도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칫거리는 것처럼, 혹시 최 위원의 ‘현명한 수용자’가 여론조사 앞에서 멈칫거리고 있는 게 아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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