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오체투지순례단이 서울에 입성했을 즈음, 나는 순례단이 왜 힘들게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방문한 순례단 공식카페에서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순례단의 모습이 담긴 영상 하나가 있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흐르는 영상 마지막 부분에서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라는 문구가 나왔다. 이 짧은 한 마디는 나의 가슴에 또렷하게 박혀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으려 땅과 하나가 되는 것. ‘빨리 빨리’ 만을 강조하는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느릿느릿하다 못해 꾸물거리는 걸음으로, 쉽지 않은 길을 택한 이들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가 되었을 때 느끼는 그 마음도 궁금했다. 그리고 나아가 나는 과연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낮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를 묻게 됐다.

▲ 오체투지순례단이 청계광장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곽상아

나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 ‘낮은 기자’가 되고 싶었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진심으로 낮은 자세를 지닌 낮은 기자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이제 고작 2년차에 접어든 지금 나는 낮은 자세를 지닌 낮은 기자는 커녕, 슬슬 나의 편안함만을 찾기 시작하고 있는 듯한 모습만, 잦다.

부끄러운 고백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을 찾았다. 그것도 아는 사람에게 물어 물어서 말이다. 작년 여름, 촛불을 취재하면서 쉴 새 없이 느꼈던 ‘불편함’과 문제의식은 온데간데 없어진 내 모습이 싫었다. 처음 기자가 되고자 했던 그때의 마음을 기억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첫 마음을 잃어가는 내가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래서 22일 오후 오체투지에 참여했다.

오체투지 시작에 앞서, 삼보일배는커녕 108배도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몇 발자국 걸은 뒤 땅과 완연하게 하나가 되는 그 자세를 할 수 있을지 무척 걱정이 됐다. 거기다 비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더욱 거세게 내리는 등 날씨도 심란했고. (요즘 날씨만 심란하면 다행이겠지만…)

취재수첩과 펜을 놓고 나간 서울시청 광장에는 익숙한 기자들의 얼굴이 여럿 보였다. 기사거리를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체투지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저렇게 승냥이떼 마냥 기사거리를 찾고 있었을테지’라는 생각에 웃음도 나왔다.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우비 모자로 얼굴을 푹 숙였으나 한 선배의 눈에 포착됐고, 결국 사진이 찍혔다.

혼자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최문순 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드리자 특유의 해맑으신 표정으로 ‘기자가 기사는 안 쓰고 어떻게 왔냐’고 반가이 맞이해 주셨다. 다른 참가자들이 ‘오체투지 순례단’ 조끼를 입고 참여한 것과는 달리, 나와 최 의원을 비롯한 몇몇 관계자들은 ‘언론 자유’ 의미가 담겨있는 조끼를 옷에 단 뒤 줄을 맞춰 오체투지를 하기 시작했다.

▲ 오체투지순례단이 청계광장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곽상아
징 소리와 함께 시작한 오체투지는 네 사람이 한 줄이 되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했다. 서툴렀던 나는 먼저 엎드렸다가 먼저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민폐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오체투지를 시작한 지 정확하게 5분이 지났을 즈음,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힘들지는 않았지만 ‘내가 왜 이 시간에 비를 맞으며 아스팔트에 이마를 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러나 앞에서 엎드리고 뒤에서 엎드리는 상황에서 나만 우두커니 서 있을 수 없었기에 반자동으로 동작을 반복했다.

시청에서 프레스센터까지는 평소 걸음으로 1분이면 족히 가고도 남는 거리이다. 이 짧은 거리를 느릿느릿 자벌레 같은 모습으로 수십 분에 걸쳐 가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쉽게 지나쳤던 이 곳, 쉽게 밟았던 이 땅에 가장 낮은 자세로 엎으려 보니 뭔가 느낌이 오묘했다. 고인 빗물에 비친 내 얼굴도 오묘했고, 이마로 느껴지는 아스팔트의 촉촉한 감촉도 오묘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리고 이상하게 고개를 숙일 때마다 숙연해지면서 반성이 되기도 했다.

청계천에서 오체투지를 이어가던 도중, 한 양복 입은 남성이 버럭 크게 화를 냈다. “너네들은 법도 몰라? 차 막고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라고 말이다. 오체투지로 인해 주변 교통이 막히는 것에 대한 나름의 분노 표시였다. 오체투지 일행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는 그 남성을 보면서 같이 화가 나기보다는 그냥 측은했다. 땅을 향해 무언가를 외치는 순례단의 행동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이 남성의 버럭 때문에 ‘사람·생명·평화의 길’이라는 순례단의 문구가 순간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나(하늘색 우비)와 최문순 민주당 의원(오른쪽에서 두번째). ⓒ곽상아

이날 순례 일정 중 최종 목적지인 조계사에 다다를수록 숨은 가파졌고, 몸은 고됐다. 입고 있던 우비는 그저 보호막일 뿐 비를 막아주진 못했고, 이미 온몸은 다 젖었다. 물을 먹은 청바지는 무거웠고, 홀딱 젖은 운동화는 꿉꿉했다. 주변에서 걱정이 됐는지 “괜찮냐고” 여러 번 물어왔다. 몸은 고됐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오늘로 108일째 오체투지를 이어가고 있는 분들에 비하면 나의 힘듦은 애교에 불과했다.

이날 오체투지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앞에 나선 종교인들처럼, 그리고 나처럼,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었을까 아니면 쉴 틈을 주지 않은 채 정신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이 시국을 향한 조용한 외침이었을까.

▲ 오체투지순례단이 종로1가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곽상아

조계사에 다가왔을 무렵, 한 펼침막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무탈하기를…” 살아있는 것조차 힘든 요즘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무탈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요즘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무탈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언제까지 마음 졸이며 가슴 시리고 서슬 퍼런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무탈하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겨누는 모든 것들이 누그러질 때, 그때 비로소 무탈하면서도 진정한 평안을 얻을 듯하다. 그때가 되면 이들의 오체투지도 진정 평안한 끝을 맺을 수 있으리라.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