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한국시간)이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는 이날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팀이 3-6으로 뒤지던 9회초 2사 이후 놀란 라이몰드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 텍사스의 마무리 투수 션 톨레슨의 6구째 시속 93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총알 같은 우전 안타로 연결했다.

이날 김현수의 이 안타 하나가 중요했고 의미 있었던 이유는 그가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처음으로 쳐낸 외야 페어지역에 떨어지는 안타였기 때문이다. 나흘 전 김현수는 템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 두 개의 안타를 쳤지만 모두 내야 안타였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상급 마무리 투수인 톨레션을 상대로 풀카운트 접전을 펼친 끝에, 낮은 코스로 들어오는 빠른 공을 특유의 유연한 배트 컨트롤을 바탕으로 한 컨택 능력으로 배트 중심에 맞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안타였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때가 시작이었다. 김현수가 떨어진 타격감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칫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미아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었던 상황을 결정적으로 반전시킨 시점이 바로 이날이었다.

그로부터 5개월하고도 2주가 지난 9월 29일, 김현수는 매우 인상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해냈다.

그는 이날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의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토와의 원정 경기에 팀이 1-2로 뒤진 9회초 대타로 등장, 토론토 마무리 투수 로베트로 오수나와 풀카운트 접전 끝에9구째 직구를 받아쳐 우월 투런 홈런(시즌6호)으로 연결하면서 전세를 뒤집었다.

이날 볼티모어는 결국 토론토에 3-2로 승리했고, 김현수의 홈런은 결승홈런이 됐다. 야구에서 가장 극적인 ‘대타 역전 결승 홈런’의 주인공이 된 것. 이날 홈런으로 김현수의 타율은0.302에서 0.305(292타수89안타)로 소폭 올랐다. 타점도 21개로 늘었다.

이날 승리로 볼티모어는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순위에서는 토론토에 이어 2위를 유지했으나, 2경기차이던 승차를 한 경기 차로 좁혔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가 29일(한국시간) 캐나다 토론토 로저스 센터에서 열린 미국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방문경기에 1-2로 뒤진 9회초 대타로 등장해 역전 투런 홈런을 친 뒤 공을 바라보고 있다. (토론토 AP=연합뉴스)

김현수는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우선 "볼티모어에 합류해 현재 패넌트레이스 경쟁을 펼치고 있는 이 상황이 무척 좋고 흥분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대타로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미리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결과를 만든 것 같다”며 “타석에 나오기 전 타격 코치가 현재 투수의 구종 등을 파악해 알려줘 준비할 수 있는 점이 큰 도움이 됐다"고 타격코치에게 공을 돌렸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LB.com>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담당하고 있는 브리타니 지롤리 기자는 이날 자신의 SNS에 “스프링캠프 당시 아무도 메이저리그에서 뛰기를 바라지 않았던 선수가 큰 거 한 방을 날렸다. 김현수가 9회 홈런으로 볼티모어를 플레이오프로 이끌고 있다”고 적었다.

지롤리 기자의 이 한 마디에 지난 6개월간 김현수가 겪은 우여곡절과 6개월 만에 김현수에게 찾아온 ‘상전벽해’ 수준의 변화를 모두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가 29일(한국시간) 캐나다 토론토 로저스 센터에서 열린 미국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방문경기에서 승리한 뒤 동료와 기뻐하고 있다. 이날 김현수는 9회초 대타로 등장해 역전 결승 투런포를 쏘아 올렸다. (토론토 AP=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KBO리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탈락, 연습생 신분으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이후 온갖 어려움을 딛고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선 김현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미생’이었던 자신의 위상을 올곧은 노력과 인내로 끝까지 버텨 끝내 ‘완생’으로 만들어냈다.

‘버텨낼 수 있다면 이길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을 행사해 가며, 개막전에서 관중들의 야유를 받아가며, 언제 출전 기회를 잡을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벤치신세를 감수해 가며 끝내 팀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힘을 김현수에게 준 것 같다.

흔히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들을 한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김현수는 진정한 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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