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 감독의 데뷔작 다큐멘터리 영화 <길>을 보다.

2006년 5월4일 행정대집행으로 대추초등학교가 공권력에 의해 무너져갔다. 그리고 기지 이전 예정지에는 철조망이 쳐졌고, 그 안에는 군대가 들어왔다. 이것이 2006년 대추리의 봄이다.

▲ 영화 '길' 포스터ⓒ시네마 달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결정으로 군사보호지역이 된 대추리. 농민들이 일구던 땅은 ‘영농행위차단’ 조치로 일순간에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마을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일터를 빼앗겼다. 그 안에 방효태 할아버지가 계셨다. “일을 해야 되는 거여, 말아야 되는 거여…”라면서도 할아버지는 그날도 여전히 논으로 나가셨다.

김준호 감독의 카메라는 할아버지를 그저 응시한다. 경운기가 들어 갈 수 있도록 길을 내던 할아버지의 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할아버지는 논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내는 중이라고 했다.

이처럼 영화 <길>은 대추리의 한 농부였던 방효태 할아버지를 ‘그저’ 담아내는 것에 중점을 둔다. 허물어진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마을주민들의 운동회가 열렸을 때에도, 연일 지속되던 촛불집회가 진행될 때에도 카메라는 그저 할아버지를 쫓는다. 그러나 관객들이 영화 <길>을 통해 당시 평택의 상황을 고스란히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까닭은 방효태 할아버지가 말과 행동으로 그 이상의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운동회가 열리는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할아버지는 마을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촛불집회에서도 할아버지는 촛불을 들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길>은 방효태 할아버지의 이야기지만, 평택 대추리의 이야기이면서, 또한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거대권력과 싸우는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것으로 김준호 감독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러나 김준호 감독은 이 모든 하고 싶은 말을 방효태 할아버지를 통해서만 보여준다. 그 몫을 온전히 할아버지에게 남겨 놓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비어’있지만 ‘차’있다는 느낌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서 오는 두근거림일 거다.

카메라에 담기는 영상은 전혀 화려하지 않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의경들과 싸우고 다툼이 벌어졌던 평택이지만 영화 <길>에서는 초반 행정대집행이 일어났던 대추초등학교의 모습을 배치했을 뿐 직접적인 대립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색’과 ‘소리’를 통해 대추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잡아낸다. 그 구분은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으로 갈린다.

쫓겨날 상황에 놓여 있지만 여유 있는 마을주민들의 얼굴 표정을 마을에 들어온 이방인인 전의경과 군인들의 굳은 표정과 조용히 대비시킨다. 영화는 이로써 대추리의 주인이 누군지 확실히 각인시켜주고 있다. 마을주민이 자연과 함께 빚어내는 소리들은 미군기지의 나팔소리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앵글 속 저 멀리 보이는 푸른 하늘과 논에 자라던 푸르른 벼이삭은 전의경들의 검은 색의 옷과 대비되며, 군인들의 푸른색 옷과도 다른 어울림이 있다. 조화와 부조화. 이것으로써 감독은 대추리에 있는 어색한 부조화의 실체들을 찾아낸다.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숨바꼭질에서 술래는 찾아내듯 숨을 죽여가며.

▲ 방효태 할아버지와 전의경들의 모습이 대비돼 보인다ⓒ시네마 달
영화 <길>에서 방효태 할아버지는 논으로 가는 길을 내었지만 동시에 사람이 가야할 ‘길’을 내고 있었다. 거대 권력에 한 줌밖에 안되고 어찌 보면 바위를 향해 가는 ‘계란’이며,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일지라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순리와 정의를 따르는 것이 옳다는 할아버지의 다짐은 이 영화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의 메시지이다.

강제 이주를 앞두고 모인 마을 주민들과 지킴이들. 끝내 눈물을 흘리던 한 마을지킴이에게 할아버지는 “허무해하지 마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우리는 ‘사람의 길’을 온 것이라면서 결과가 어떻든지간에 그 길을 걸은 것을 후회하지 말자며 사람들을 다독거린다. 그러나 이 다독임은 평택에 국한되지 않는다. 때문에 할아버지의 다독거림에 투영된 관객들은 이내 눈물을 쏟아낸다. 이것은 영화를 본 한 기자의 고백이며 함께 자리했던 관객들이 보여준 모습이다. 이 영화는 이렇게 소름끼칠 듯 카타르시스의 정점을 찍는다.

2006년~2007년 평택에 있었던 김준호 감독. 그는 지금 용산에 터를 잡았다. 얼마 전 그를 용산참사 추모 문화제에서 만나 “용산참사 영상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기본대로 찍는 거죠”라며 “싸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해 보이도록 찍으면 돼요”라고 답했다. 그 철학은 영화 <길>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기본대로’, ‘진실을 진실로 보이도록’ 자연스럽게 73분의 시간을.

누군가 나에게 <길>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소감이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다큐가 끝나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 다큐 자체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말을 하는 순간 그 감정들이 빠져나갈 것 같아 말을 멈췄다. 그렇게 집으로 오는 내내 그냥 그 영화를 나에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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