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대전에서 벌어졌던 화물연대 집회에서 사용된 죽봉으로 연일 보수언론이 시끄러운 가운데 21일자 조선일보 1면에 <경찰 ‘죽창 공격’ 방어 훈련>이라는 사진이 실렸다. 2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서울경찰수련장에서 의경 600여명이 두 패로 나뉘어 죽봉과 죽창 공격에 대한 방어훈련을 하는 모습이라는데, 보수언론의 ‘죽창 보도’ 가운데 단연 압권이다.

대나무로 가득찬 사진의 맨앞에는 여러 갈래로 찢겨진 대나무가 보인다.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위험해 보인다. 그 뒤로는 찢겨지지 않은 평범한 죽봉도 보인다. 사진기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죽창의 폭력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구도에서 드러난다.

▲ 조선일보 5월21일 1면 사진
11면에서는 고생하는 의경들의 사진이 실렸다. 죽봉 대응훈련을 하던 의경들이 쉬고 있는 모습인데 하나같이 표정이 좋지 않다. 한 의경은 찡그린 표정으로 물을 마시고 있고, 그 옆의 의경 역시 고생이 역력한 얼굴이다. 희미하게 처리된 뒷 배경에는 쓰러져 있는 의경들의 모습이 보인다. MB정부 출범 후 끊이지 않는 집회 탓에 직업경찰도 아닌 전의경들, 참 많이도 고생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진 설명에서 “이날 의경들은 낮 최고기온이 27도까지 오르는 더운 날씨에 두꺼운 진압복까지 입고 7시간 동안 훈련을 했다”고 전하며 의경들의 고생스러움을 부각했다.

기사에는 의경들의 고생이 더욱 부각된다. 조선일보는 기사 제목을 <죽봉으로 바닥 몇번 치자 끝 쪼개져 ‘죽창’으로>라고 뽑고, 부제목은 ‘서글픈 대한민국 경찰’이라고 달았다. 조선일보는 “실전에서처럼 죽창으로 진압조를 찌르는 대목은 없었다. 훈련 도중 불상사가 벌어질까 두려워한 것”이라며 모의 시위대로 나선 한 일경의 “오늘 진압조에게 죽봉을 내려치면서 ‘시위대는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우리를 때렸을까’ 생각했다”는 발언을 전했다.

이른바 ‘죽창’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 ‘죽봉을 왜 죽창이라고 하느냐’는 시민도 있지만 ‘웬만하면 노동자의 집회는 옹호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해도 너무했다. 경찰을 죽이려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시민도 많은 것 같다.

오늘자 지면처럼 ‘경찰의 고생’을 한껏 부각하는 조선일보의 보도는 이같은 인식 형성에 한몫 했을 것이다. 경찰 고생 부각 외에 ‘죽봉’을 한사코 ‘죽창’ 이라 표현한 것도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죽봉과 죽창, 한음절의 차이일 뿐이지만 ‘봉’이 ‘창’으로 바뀌는 순간 화물연대 집회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절박함’이 퇴색되고 참가자들의 ‘폭력’이라는 이미지만 나뒹굴게 됐다. 민주노총은 이제는 ‘죽창노총’이라고까지 불린다. 시민들의 뇌리속에는 ‘죽봉’보다 ‘죽창’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 아득한 괴리 사이에 현기증이 느껴진다.

조선일보는 20일자 1면 <‘계획된 죽창’>에서도 “16일 대전 도심에서 벌어진 불법폭력 시위 현장에서 입수한 ‘죽봉’ 가운데 일부는 사전에 끝을 뾰족하게 깎은 ‘죽창’으로 확인됐다”며 끝이 비스듬하게 깎여져 위험해 보이는 죽봉 몇개가 실린 사진을 내보냈다. 그런데 기사를 보면 경찰이 현장에서 압수한 죽봉 620여개 가운데 ‘죽창’으로 분류한 것은 20개(약 3%)다. 경찰의 자의적 분류를 받아들인다 해도 3%를 토대로 ‘죽창의 계획성’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조선일보는 20일자 사설 <민노총, 당신들 조카·동생이라도 죽창으로 찔렀겠나>에서 가족 관계까지 꺼내들며 시위의 폭력성을 독자들의 감성에 호소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경찰이 압수한 물건을 보면 대나무 끝이 수십갈래로 갈라진 것도 있지만 일부는 끝을 칼로 비스듬히 잘라 진짜 창처럼 만든 것들도 있다”며 “복면을 쓴 시위대가 이런 흉기 1000개를 어린 전경들에게 찌르고 쑤시고 내리쳤다. 남의 아들, 남의 조카, 남의 동생이니까 눈이 멀게 만들어도, 살이 찢어지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낙인찍었다. 1면에 나왔듯 경찰은 20여개를 ‘죽창’으로 분류했는데 어찌하여 ‘흉기 1000여개’가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집회 참가자들의 경우는 어떨까? 당일 현장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죽봉으로 경찰을 때렸다면, 경찰은 진압봉과 물대포로 참가자들을 때렸다. 서로 주고 받은 셈인데, 경찰의 부상 정도에 대해서는 ‘각막 손상’ 이라는 구체적인 사실까지 자세하게 전해지고 있으나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부상 사실은 언론보도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조합원 관련해서는 연행, 구속영장 등 공권력에 의해 취해지고 있는 조치들만 보도될 뿐 그들의 부상 정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기 어려운 것이다. 죽봉을 든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워낙 싸움을 잘했던 것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민주노총은 18일자 ‘5.16. 경찰폭력 및 민주주의 말살, 특수고용직 노동기본권 ILO 긴급개입 민주노총 긴급 기자회견’ 보도자료에서 “집회참가자 100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었고, 방송용 차량 13대와 캠코더, 디지털카메라 등 집회참가자와 취재기자 물품이 대량 파손됐다”며 방패에 가격당한 머리가 찢어져 봉합 수술을 받은 사람, 고막이 손상된 사람, 어깨가 탈골되고 발목이 부러진 사람, 갈비뼈가 부러진 사람, 턱뼈에 금이 간 사람 등의 사례를 전달했다.

민주노총 이승철 대변인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위에서 꼽은 중상자 사례는 병원 치료를 받은 사람만을 포함했다. 경찰은 부상자들 숫자를 정확하게 집계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 집회 이후 참가자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지역으로 돌아가서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렵다”며 “집회 참가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어 자가 치료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 경우까지 포함하면 부상자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 정도라면 경찰이 ‘죽창 훈련’을 벌이는 것보다 강도 높게 노동자들도 진압봉 조, 물대포 조, 방패 조에 노동자 조까지 네 패로 나눠 하루 종일 입에 단내나게 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신문들은 이 장면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어야 할 것이고.

특수 고용직 노동자의 상황 등 전체적 맥락에서 사건을 보도하지 않고 ‘죽창 폭력’ ‘경찰의 고생’만을 부각해 결국 ‘도심 집회 원천 불허’라는 정부 당국의 강경대응에 도움을 준 보수언론을 보며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떠오르는 것은 나뿐일까. 교묘한 선동으로 나치의 사상을 사람들의 무의식에 자연스럽게 침투시킨 탓에 당시 독일 국민들은 패전의 상황에서도 승리를 확신했다고 한다.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대중들의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는 괴벨스의 발언이 오늘 조선일보 지면 위에서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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