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중심으로 신(영철) 대법관 탄핵을 발의하면, 여당과 자유선진당의 박(시환) 대법관에 대한 탄핵발의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조선일보> 5월21일자 사설의 일부이다.

그래서 빗발서린 창밖으로 ‘사람’의 행렬을 바라보던 나는 마음으로 외쳤다.

“순례자들과 사회 약자들의 온기와 갈망이 더 많은 이에게 전이되길, 그리하여 용산 학살을 자행해놓고 숨기는 ‘잡것’들부터 파면되고 탄핵되길….”

먼발치에서 내려다본 오체투지 순례단은 보신각을 지나 조계사를 향하고 있었다.

▲ 21일 오후 빗속을 뚫고 오체투지 순례단이 조계사로 가기 위해 종로1가를 지나고 있다. ⓒ 곽상아
다시 조선일보 사설이다. “이번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 살펴보면 탄핵 사유는 신 대법관 경우보다 박 대법관 경우가 더 심각하다.”

나는 생각했다.

“미국산쇠고기수입 졸속협상에 항의하는 촛불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처벌하려고 소장 판사들의 재판에 개입하고, 개입을 조종하고, 나중에 정당화하고, 빨갱이 논쟁으로 비화시키려는 ‘잡것들’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주범이다.”

그 사이 오체투지 순례단 사진촬영을 하러 갔던 곽상아 기자가 문 열고 들어왔다.

“선영이 입 돌아가겠어요.” 꼭 동참하고 싶다며 허름한 우비 꾸역꾸역 걸치고 서울시내 한복판으로 뛰쳐나가 땅 그리고 사람들과 하나가 된, <미디어스>의 막내 송선영 기자 얘기다.

다시 사설이다. “제대로 된 나라의 제대로 된 법원, 그것도 최고 법원의 판사 2명이 동시에 탄핵 대상이 되는 경우가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비교했다.

“경찰들이 시위대의 ‘죽창 공격’에 대한 방어 훈련을 한답시고 두 패거리로 갈려 자기들끼리 죽봉 흔들고 있는 사진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싣는 신문. 과연 제대로 된 나라의 제대로 된 공권력이고 제대로 된 언론사인가? 박 대법관까지 탄핵 대상이라는 것은 잡것들만의 바람 아닌가?”

막가파정권의 삐에로, 수구언론의 꼭두각시로 전락해 죽봉이나 흔들고 있는 의경들의 모습이 처량할 따름이다.

창문 너머로 보였다. 바른편으로 조계사가 보이고 왼편으론 푸른기와집이 보였다. 빗속을 가르며 흐르는 대웅전 종 소리 사이로 법회를 여는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다. 순례자들이 도착한 것이다.

▲ 조선일보 5월21일치 사설
다시 사설이다. “6·29 역시 군부 쿠데타 세력이 자신들의 집권을 영구화하기 위해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길을 봉쇄한 데 대한 국민의 항거였다. 박 대법관은 현재 상황이 어떤 면에서 4·19 또는 6월항쟁과 같은지를 설명하고, 박 대법관이 오늘의 상황을 그렇게 판단한다면 우리 법원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사설이 나를 웃긴다.

“조선일보가 ‘군부 쿠데타’와 ‘국민의 항거’를 논할 자격이 있는가. 웬일로 4·19와 6월항쟁의 주역들을 치켜세울까. 촛불시위대는 지금 좌빨이지만 한 20년 흐른 뒤에 딴 사건 터지면 ‘그나마 2008년 촛불항쟁은 묻지마식 정책을 구사했던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거룩한 항거였다’라고 쓰려고?” 20년 후에도 조선일보가 이 땅에 군림하고 있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송선영 기자가 돌아왔다. 우비는 있으나마나, 흠뻑 젖어 더욱 가냘퍼보이는 후배의 모습이었으나 정작 가냘프고 초라한 건 나의 모습이었다. 거리에 같이 나서주지 못한, 사진 촬영도 함께 가지 않은, 못난 선배의 모습이다.

그녀와 나의 모습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훼손하고도 버티는 선배 판사와 육체의 나이뿐 아니라 생각의 나이 역시 훨씬 젊은 소장 판사들의 모습이 교차했다. 선배다워야 선배인 것이고 정권다워야 정권인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후배가 우습게 여기고 국민이 우습게 보는 게 당연하다.

신부님과 스님들이 속한 순례단은 이제 임진각을 향하게 된다. 그 이후엔 북한으로 옮겨 묘향산까지 순례코자 북측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혹여 잡것들이 이 분들의 고행을 ‘좌빨’ 행위로 매도할까봐 걱정이다.

조선일보 기자들이여, 나와 함께 오체투지 순례 한번 하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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