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절기상 소만(小滿)이라고 한다. 만물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라고 하니, 꾸물거리던 봄이 가파르게 여름으로 꺾어진다는 뜻일 게다. 소만은 본격적으로 농사에 돌입해야 함을 알리는 절기이다. 소만을 하루 앞둔 어제 MB는 직접 이앙기를 몰아 모내기를 하고, 논두렁에 걸터앉아 막걸리도 한 사발 시원하게 잡수는 장면을 연출했다. 김영삼 대통령 이후 꼭 12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 문화일보 5월21일자 6면
특별히 나무랄 생각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강렬하게 체험했던 일에 지배당하기 마련이고, 나름의 고유한 인식론에 기반하여 세상을 해석하고 싶어 하는 법이다. MB라고, 대통령이라고 해서 더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순 없다. 그리고 ‘모내기’가 예컨대 3D 시뮬레이션 게임 체험 따위의 신문물 체험보다 열등할 까닭도 없지 않은가.

물론, 의식적으로 너무 티나게 누군가를 불러내는 복제적인 장면이었고, 대한뉴스 자료 화면에서나 나올 법한, 복고적 냄새가 너무 강렬한 퍼포먼스이긴 했다. 근데 뭐 그게 어제오늘의 일인가. MB의 스타일이, 정부의 ‘간지’가 그 수준이다. 새삼스레 또 문제 삼지는 말자. ‘이명박’이라고 하는 기표의 이미지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또 원래부터 그러했던 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오히려 오랜 시간동안 다른 이미지들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고민하며, 철저히 만들어진 무엇이라면, 모내기는 그에게 딱 걸맞은 연출이었다.

어제 모내기 연출 사진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다른 것이다. 언젠가부터 이명박의 통치는 거시적 차원의 합리성과 민주적 맥락의 정당성보다는, 미디어에 의존하여 국면을 전환하는 임기응변으로 존재하고 있다. MB의 미디어 의존 경향이 점점 노골화될수록, 그의 통치는 정당성과 합리성보다는 미디어에 어떤 스타일로 재현될 것인가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중요한 지점이다. 이미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대통령,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정권의 이해관계에 언론이 어떻게 부응할 것이냐의 선택 말이다. 난 이 선택이야 말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따위도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철저히 언론 스스로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문제라고 믿는다.

조중동은 진즉에 그 자유를 포기했다. 스스로 언론이라기 보단, 정권의 일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장이 잘리는 초토화를 경험한 KBS는 라디오에 독점적 시간을 내어 주었고, 뉴스의 미장센도 많이 촌스러워졌다. 앵커가 갈리는 모욕을 당한 MBC는 그나마 꿋꿋하지만, ‘일자리 나누기’ 캠페인 따위를 편성하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SBS는 원래 부침이 심하다. 어제는 아예 모내기 영상을 [생생영상]으로 구성하는 협조적 자세를 취했다.

이 대목에서 언론에 물어야 한다. 여전히 아이템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있는가? 아니 할 수 있는가? 어제의 모내기 보도는 일체의 외부적 의식 없이 자발적으로 수행된 것이냐는 말이다. 이명박이라는 기표에, 진부한 정치권력의 실체를 미화하고 있는 친절한 마사지와 언론의 자유가 아무런 상관이 없느냐 이 말이다.

아니지 싶다. 피부에 멍이 드는 매질은 아니지만 언론은 스멀스멀 움츠러들고 있다. 공포가 내면화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검열이 내재화된 단계로 접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어제의 모내기는 그 징후이다. 정권을 마사지하는 미디어의 손길은 12년 전 어느 날 만큼이나 친절해졌고, 이에 반비례하여 세상의 살갗은 하루씩 더 늙고 거칠어지고 있다.

▲ 동아일보 5월21일자 5면
어제만 해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수사기록 공개라고 하는 형사적 절차의 당연한 상식을 거부하고 있는 용산에선 유가족이 연행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유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사법적 정당성과 절차를 초월해 존재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어찌되었건 공권력과의 대립 속에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을 이토록 박대하는 것은 민주 정부의 경우가 아니다. 더더군다나 그들에게 해당 사건의 기초적 자료조차 공개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위법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어제 대통령이 모내기 연출 사진을 찍는 동안 한승수 총리 이하 국무위원들은 회의라는 형식을 빌려, 헌법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 집시법을 적극 해석하여, 당분간 모든 도심 집회를 금지하겠단다.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을 뿐인 국무위원들이 체제의 정당성과 관련하여 가장 결정적인 위상을 갖는 헌법을 무력화시키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정치학적 용어로 뭐라 부르면 좋을지 난망할 뿐인, 그야말로 참극이다. 명예혁명의 개념을 빌어, 명예 쿠데타쯤 된다고 하면 비극적 상황이 조금은 희극적으로 희석될까? 하여간 이 명예 쿠데타에 맞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인 미디어는 극소수뿐이다. 함께 모여 구호를 외치는 자유가 그 밖의 자유들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참으로 갑갑한 일이다.

실제로도 그렇게밖에 안되는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디어는 이명박의 모내기를 이미지 정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것이 이미지 정치라고 한다면, 한국에서 이미지 정치의 의미는 ‘미디어를 굴복시킨 권력이 미디어를 사유화하는 과정’ 쯤의 뜻이 될 것이다. 아니면 ‘미디어가 대통령만 좇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연출사진을 찍는 과정’ 쯤이거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이제, 그만 좇을 때도 됐다. 대통령이 가락시장에 가건 말건,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지 않는 한, 개인적 사연이 있는 어린이와 무슨 얘기를 나눴건 말건 관심을 꺼라. 늙고 거칠어지고 있는 세상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려라. 오늘, 오체투지단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미디어가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그럴 자격이 있는지, 오늘 밤 그리고 내일 지켜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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