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핏줄’ 몽고, 혹은 변태적 혈통주의

짙은 안개 속에서 탈옥한 죄수는, 똑바로 걷는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한 바퀴 빙 돌아 원래 갇혀있던 교도소로 돌아오게 된다고 한다. 이른바 ‘민족문학’의 첨병이었던 왕년의 대문호 황석영의 이른바 ‘변절’ 논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오리무중 속에서 걷고 걷다보니, 결국 또 하나의 제국주의로 돌아와버리고 말았다. 황석영이 주장하는 이른바 ‘알타이연합’, 그 논리를 천천히 짚어보도록 하자.

우선 그 ‘알타이’라고 통칭되는 국가에 사는 사람들과,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을 한 혈통이라고 주장할 수나 있는지가 의문이다. 그저 공통되는 것은 ‘우랄 알타이 어족’이라는 언어학상의 한 분류뿐인데, 그나마도 한국어가 정말 거기에 속하는지에 대해서 이견이 존재한다. 바이칼 호수에서 태어난 위대한 민족혼을 공유하고 있다고 우길 수야 있겠지만, 현대의 맥락에서 보자면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거의 혈통적 공통성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굳이 같은 혈통이라고 한다면, 생판 본 적 없는 16촌 친척이 다가와 사업하게 돈 좀 빌려달라고 할 때의 그런 ‘친척’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대 한국인들의 선조가 되는 사람들과 ‘몽고인’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혈연 교배를 했던 시점은 다름아닌 몽고 강점기이다. 고려의 국왕은 반드시 몽고 여인과 결혼해야 했고, 그걸 보고 좋다고 권문세족들이 자기 자식들을 ‘국제 결혼’ 시키기에 바빴던 시절이니만큼, 왕성한 혈연 관계가 맺어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런데 그게 과연 좋은 일일까?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당시 그런 국제 결혼을 통해 혈연관계를 뒤섞은 후, ‘우리는 모두 몽고의 자식’이라고 말했던 것은 몽고인들이었을까, 아니면 고려인들이었을까? 혹은 고려의 지배계급이었을까 아니면 고통받는 민중들이었을까?

‘알타이 연대’의 근간에 깔려 있는 혈통주의에 도저히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만약 고려와 몽고가 한 핏줄이라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몽고강점기에 벌어진 지배층간의 대규모 국제 결혼에서 찾아야 할 것인데, 정복당한 나라의 후손들이 그걸 마치 자랑인 양 떠벌리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실제로 몽고강점기 당시 백성들은 그 사실을 수치스러워했다. 반면 권력을 잡고 있던 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몽고에 줄을 대기 위해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알타이 문화권’을 주장하는 것은 ‘몽골리안의 핏줄’을 이야기하는 것보다야 낫다. 전자는 공허할 뿐이지만 후자는 변태적이기 때문이다.


▲ 중앙일보 5월8일자 40면
알타이연합론 ≒ 대동아공영론

이쯤 되면 황석영의 ‘알타이 연합론’은, 황석영에 앞서 일찍이 몽고 타령을 시작한 몽고반점 얼리어덥터 조갑제의 ‘기마민족 정복자론’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징기스칸이 전 세계를 정복한 것은 맞다. 그런데 우리는 징기스칸과 함께 전 세계를 정복한 게 아니라, 그에게 정복당한 세계 중 일부에 불과했다. 원나라 당시 고려가 원의 부마국가로 상당한 수혜국 대접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고려가 몽고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효도르에게 두들겨 맞고 암바 걸려서 실신했다가, 나중에 효도르가 찾아와서 같이 술 한 잔 한다고 해서, 얻어터진 약골이 효도르 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고려가 원나라와 함께 외국에 원정을 나간 적이 있었긴 하다. 고려 민중들의 고혈을 쥐어짜서 대 함대를 건설하고, 수전에 익숙하지 않은 몽고 병사들을 대신하여 엄청난 숫자의 고려 병사들이 출전했는데, 일본에서 폭풍이 불어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어버린 그 사건 말이다. 대체 ‘우리(몽고+1고려)’가 정복해낸 게 뭔가? 기마민족의 기상, 닥치는대로 약탈하고 강간하는 사나이의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몽고 타령, 알타이 타령, 바이칼호에서 뿜어져나온 우리 민족의 기상 타령, 이 모든 것들이 기대고 있는 지점은 동일하다. 힘에 대한 동경, 제국주의에 대한 갈망, 바로 그런 것들 말이다.

여기서 황석영의 ‘알타이연합론’은 일제 강점기 문인들의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찬성과 공통분모를 지니게 된다. 정복당한 자들이 정복한 자들과 자기동일시하려 하고, 급기야는 정복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귀족들은 몽고 밑에서 2등 부마국이 되었으니 몽고와 동등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고 좋아라 했다. 일제시대의 문인들은 일본 밑에서 ‘내선일체’를 달성하면 일본과 동등한 입장에 서게 될지 모른다며 학도병들의 참전을 독려하는 연설을 하고 다녔다. 그리고 이제 황석영은 알타이 문화연합을 추진하기 위해, 마치 가미카제 전사처럼 폭탄을 짊어지고 이명박호의 갑판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던 논리나, 황석영을 포함한 ‘범 몽고주의자’들이 이런 저런 이름 하에 몽골리안 국가들의 연합을 주장하는 논리나, 양자의 차이가 그리 크지도 않다. 한민족이 살기에 한반도는 너무 좁다고? 일본인들도 그렇게 주장했다. 반면 저 넓은 대륙에는 인구는 없지만 풍부한 자원과 개척되지 않은 광활한 영토가 있다고? 일본인들도 그렇게 주장했다니깐. 우리가 침을 흘리며 바라보는 나라는 사실 따지고보면 먼 친척이기 때문에, 친척끼리 도와주는 거지 정복하는 게 아니라고? 일제가 하면 폭력적 침탈행위지만 우리가 하면 정당한 자본 투자일 뿐이라고? 일제도 그렇게 말했다. 서양 세력이 총칼을 앞세워 폭력적인 근대화를 강요할 때, 일본은 정당한 자본 투자를 한다고. 아시아인의 공통성에 주목하자고.


대한민국, 이미 제국주의 국가일지도

제국주의는 제국주의일 뿐이다. 민족주의의 허울을 씌운다고 해서 그 본질이 달라지지도 않을 뿐더러, 사실 이미 대한민국의 자본은 그런 공허한 수사 없이도 공공연히 해외 ‘진출’을 하고 나선 상태이다. 여기서는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사안만 살펴보도록 하자.

1987년 6월10일, 한국의 직선제 개헌 쟁취는 숱한 아시아 국가 민중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1988년 8월8일, 버마의 민중들은 대규모 봉기를 감행했다. 그런데 버마의 군부는, 애초에 국민을 위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거리에 나선 사람들을 무조건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그렇게 8888은 진압되었고, 아직도 버마의 봄은 멀다.

문제는 버마(미얀마)의 연근해에서 천연가스를 뽑아내고 있는 한국 기업이, 바로 그 미얀마 군부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환닷컴에 따르면, 대우인터네셔널은 버마에서 투자가치 4580억원에 이르는 가스전을 개발하고 있다. 그 수입 중 버마 군부에게 들어가는 것은 86억4천만 달러로, 이는 그 나라의 국민총생산보다 많은 액수이다. 국민들이 죽건 말건 군부가 버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기업 덕분인 것이다. 게다가 대우인터내셔널의 최대 주주는 자산관리공사이며, 그와 무관하게 한국가스공사도 그 가스전의 개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식민주의, 제국주의가 별게 아니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제국주의 국가의 국민 되는 게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우리’의 이익 때문에 사람이 죽건 말건, 아무튼 ‘우리’는 배가 고프고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고 더 넓은 땅에서 웅비를 떨치고 싶고, 칭얼칭얼 징징징징거리고 있으면 제국주의 국가의 국민 되는 것은 다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그런 ‘진출’에는 사실 민족이니 알타이니 하는 수사도 그리 필요치 않다. 대우로지스틱스가 마다가스카르의 한복판에 벨기에 영토의 절반 크기나 되는 농장을, 무려 99년간 무상으로 임대받는 계약을 체결했을 때, 그게 ‘우리 민족’이어서 그랬겠는가 말이다. 결국 마다가스카르에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고, 시위대의 대표는 대우로지스틱스와의 계약을 해지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선 바 있다. 황석영이 꿈꾸는 몽고의 거대 농장과, 마다가스카르의 옥수수 농장이 다를 게 뭔가? 설마 아프리카 동남부의 섬 마다가스카르의 원주민들도 우랄 알타이 어군에 속하나? ‘우리 핏줄’인가?


알타이연합? 알타리김치나 드세요

온갖 비장미를 풍기며 자신의 행위를 변호하고 나선 황석영만큼이나, ‘문학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상상할 권리가 있다’며 그를 옹호하고 나선 김지하의 발언 또한 난망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었다. 김지하 본인이 촛불을 보면 촛불에서 율려를 보고, 2002년 월드컵 길거리 응원을 보면 또 거기서도 율려를 보는 사람이니만큼, 황석영이 이명박 정부를 중도 실용주의로 평가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 있겠다.

하지만 케인즈의 말마따나 자신이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받아적고 있다고 여기는 광인 또한, 결국 어느 경제학자나 정치철학자가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듯이, 황석영의 알타이공동체론은 100여년 전 일본인들이 떠들었던 시덥잖은 제국주의 옹호론의 헛된 변주일 따름이다. 그나마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제국주의에 필요한 국제 정세 인식도 찾아볼 수 없다.

가령 황석영 본인은 자신이 “알타이 연합을 통해 지역적 균형을 이루면서 중국, 일본과도 건설적으로 협력하고, 그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남북의 연방연합 논의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이라는 포부를 밝힌 바 있는데, 제발 이런 소리를 할 때에는 지도를 펴놓고 했으면 좋겠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아래로는 그 이름도 유명한 아프가니스탄이 있고, 아프가니스탄의 아래에는 파키스탄이 있으며, 파키스탄과 이란은 동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중국, 일본과의 건설적 협력”과 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네덜란드가 프랑스, 독일과의 건설적 협력을 위해 한국에 투자하고, 궁극적으로는 벨기에와의 1830년 이래의 분단을 넘어서 하나의 국가로 나가려고 한다고, 어느 네덜란드 작가가 말했다고 쳐보자. 타자를 치면서도 헛웃음이 나온다. 제발 꿈 좀 깨시라.

물론 문학가의 상상은 자유다. 하지만 황석영이라는 최고 수준의 예술가가 내놓은 상상이라 보기에, ‘알타이연합’은 너무도 조악하고 유치하다. 세계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와서 내놓은 구상이라고는 하지만, 별 생각 없이 폼나는 소리니까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산티아고에 다녀오시는 게 어떨까 싶다. 의미 없이 공허한 수사를 남발하며, 여행지에서 문득 마주친 풍경에서 나와 타인의 관계를 성찰하는 여행기를 쓰고 싶다면, 뭐니뭐니해도 산티아고가 제격이니 말이다. 물론 서점가에는 ‘산티아고 여행기’가 넘쳐나지만 황석영이 하면 다르지 않겠는가. 먼길 떠나기가 힘드시다면 자택에서 알타리김치에 보리밥 한 그릇 석석 비벼 자시고, 푹 주무시고 일어나신 다음, <풍물기행 세계를 가다>, <W> 같은 프로를 보며 대륙의 꿈을 보듬으시는 것도 강추할 만하겠다.

<드라마틱>에서 수습기자 및 취재기자로 일했고, <Foreign Policy> 한국어판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1세기를 규정짓게 될 키워드에 대한 단행본을 집필 중이며, 옮긴 책으로는 <아웃라이어>가 있다. 고려대 법학과 졸업, 현재 서강대 철학과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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