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민의를 대변해 법을 만드는 기구다. 민주적 법치국가에선 국회의 권능이 가장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 그런데 2016년 한국에선 오히려 통치를 책임져야 할 여당이 국회를 망가뜨리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사흘째로 접어든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단식 농성이다. 이정현 대표는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국회의장인 ‘정세균 씨’가 물러날 때까지 무기한 단식농성을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주요 언론에서 이정현 대표와 짧은 인터뷰를 한 내용을 보면 정세균 의장이 끝내 물러나지 않는 경우에 대한 ‘출구전략’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흘째 단식을 이어가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8일 오전 굳은 표정으로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판국이니 여당 내부에서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당으로서도 느낄 수밖에 없는 당혹감의 첫 번째는 어려운 국면을 풀기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당 대표가 오히려 대치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가 앞에서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나머지 구성원들은 다른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이른바 원로들이 뒤에서 ‘왜 말리지 않았느냐’라고 한다는데, 이정현 대표가 단식 농성 의사를 밝히는 과정이 다소 돌발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말릴래야 말릴 방법도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당을 당혹스러운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는 두 번째 대목은 상대가 국회의장이라는 것이다. 여야 간의 문제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원내지도부 간의 협상 국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대표나 원내대표가 강경모드를 주도하더라도 수석부대표 등의 채널을 통해 상황을 얼마든지 조율해갈 수 있다. 원내지도부 간 협상이 풀리지 않아 대표들이 나선 사례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장을 향한 여당의 투쟁은 누구와 어떻게 협상을 할 것인가의 문제를 답하기가 어렵다. 이번 국면의 경우는 특히 국회의장이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 사퇴가 국회의장의 결단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그저 ‘길들이기’ 차원의 어떤 ‘액션’으로 보기엔 대응 수위가 지나치다. 어쨌든 비박들의 이탈 움직임도 있고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이 정세균 의장이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는 수준에서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갈 길은 첩첩산중이다.

이러니 여당이 일부러 국정감사를 무력화하기 위해 수를 쓰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국정감사에서 우병우 민정수석, 미르·K스포츠재단 및 최순실 씨 문제 등 정권 말기에 다루기 부담스러운 주제가 논란이 될 것이 뻔하니 아예 단식농성으로 이 모든 걸 덮어 버리자는 심산이 아니냐는 거다. 실제로 야당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출석한 공무원이 납작 엎드려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기침을 하다 실려 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공무원은 재단 법인 심사 및 허가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수장인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사유서도 없이 국정감사장에 아예 출석조차 하지 않아 논란을 자초했다. 김재홍 부위원장 등이 2, 30분 정도 늦게 출석해 ‘미안하다’는 취지의 사과를 하는 와중에도 최성준 위원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등장한 최성준 위원장은 국회법을 잘 몰랐다며 여야 간사 합의와 개의 이후에 출석하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고 변명했다. 법관 출신이 법을 잘 몰랐다고 하니 믿는 사람도 별로 없다. 미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신상진 의원이 출석을 만류해 안 나왔다고도 하는데, 만일 그렇다면 최성준 위원장은 양심도 눈치도 없는 사람일 것이다.

여당이 스스로 민주적 법치국가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광경은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우 의원의 ‘감금 사태’라는 인상적인 풍경을 남겼다. “전쟁이 나도 국감은 해야 한다”며 국방위를 열려는 시도를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몰려가서 가로막은 것이다. 김영우 의원이 기자들에게 ‘갇혀있다’는 문자를 보내고 야당이 다른 국감장에서 이를 인용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한 편의 블랙코미디였다.

이 사태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부적절함을 짚을 수 있다. 첫째는 안보를 중요시한다고 자평하던 보수세력의 주장이 거짓말이란 게 드러났다는 거다. 국방위가 다뤄야 할 안보 현안이 없는 게 아니다. 지난 26일 한미연합해양작전 중 링스헬기가 동해상에 추락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링스헬기 관련 사고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일어난 사고에서도 정비불량과 허위보고가 문제였다는 게 밝혀졌고 방산비리 논란으로까지 불이 붙은 바 있다.

지난 8월 9일 경남 거제도 인근 해상에서 청해부대 22진(문무대왕함) 링스헬기가 피랍상황을 가정해 해적진압 및 선원 구출 훈련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사고에 대해서도 차세대 해상작전용 헬기 도입 등 노후화된 군 장비의 교체 문제를 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렇잖아도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 때문에 대잠무기의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시점이다. 이에 대해선 대잠헬기를 추가 도입하자는 주장과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수리온 헬기를 개조하자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다루고 대안을 잘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방위가 열려야 하는데 집권 여당은 이를 모른체 하고 있다.

둘째는 그야말로 농담의 차원이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대선이 치러지던 지난 2012년 모처에서 ‘댓글 작업’을 한 걸로 의심을 받은 국정원 직원이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은 걸 두고 ‘감금’이라고 주장했다. 야당 의원들이 밖에 진을 치고 앉아 문을 열어주길 요구하며 사실상 여성인 국정원 직원을 감금해 ‘여성 인권 침해’가 벌어졌다는 거다. 새누리당은 이 일에 연루된 야당 의원들을 공동감금 혐의로 고발하기까지 했다.

코미디 같은 재판에서 법원은 지난 7월 야당 의원들에 1심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기준대로 하면 새누리당은 김영우 의원을 감금한 자신들을 스스로 ‘셀프고발’ 해야 할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국정원 직원에 최소한 ‘나오라’는 취지의 주문을 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김영우 의원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 둘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의 행위가 ‘감금’이라는 개념에 좀 더 가깝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대통령의 퇴임 구상을 방어하느라 국정운영을 포기한 상태에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이럴 때는 야당들이 그나마 주어진 권한을 성실히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반쪽짜리 국감’이라며 풀이 죽는 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신실하게 임해 그나마 국회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국민들에게 ‘그래도 야당이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구나’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실이 ‘감금사태’에 대해 112에 신고를 한 것은 정치적으로 다소 경박한 처신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표창원 의원실 관계자는 “경찰 대상 국감을 준비하며 112 신고에 경찰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볼 필요가 있다고 얘기가 돼 신고했다”고 했다는데 결국 즉흥적인 행위를 했다는 얘기에 불과하다. 경찰의 112 신고 대처 방식을 판단하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그 대상이 하필 곤란한 상황에 처한 김영우 의원일 필요는 없다.

표창원 의원실의 이런 행위는 ‘농담’이라는 측면에선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 게 분명하지만 앞으로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제1야당의 이미지에는 좋지 않은 효과를 줄 수 있다. 단순 해프닝으로 볼 문제이나 걱정스러운 것은 앞으로 이런 식의 ‘오버’가 부메랑처럼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는 거다. 불안감에 빠진 국민들에게 준비된 대안이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야당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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