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서 용산참사 수사기록 3000여 쪽을 내놓지 못하겠단다. 검찰이 안 내놓는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누군가에게 그 3000여 쪽의 분량에 인생이 달렸다. 그들은 바로 철거민들이다. 검찰은 용산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로 5명을 구속했고, 1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용산참사로 철거민 5명이 희생됐지만, 참사의 책임이 철거민들 자신에게 던져진 탓에 철거민들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재판마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에서는 1만 여 쪽에 이르는 수사기록 중 3000여 쪽을 공개할 수 없다며 버티기에 돌입했고, 변호인단은 3000여 쪽이 공개되지 않는다면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수 없다며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변호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철거민들은 검찰의 태도에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PD수첩>의 ‘용산참사 재구성’

이러한 상황에서 어제 19일 MBC <PD수첩>은 ‘용산 수사 비공개 3천 쪽, 무엇이 담겼나?’라는 제목으로 검찰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수사기록 3000여 쪽 중 일부 공개된 400여 쪽을 가지고 용산참사를 재구성했다.

◇ 첫 번째 물음. “정말 도심테러 수준이었나?” : <PD수첩>은 철거민들의 생존권 투쟁 하루 만에 경찰특공대를 조기 투입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경찰은 “도심의 테러라고 할 정도로 화염병이 난무하고 골프공을 쏘고 민간인 차량이 파손되고 돌을 투척하고 민간인이 다치는 상황”이었다며 경찰특공대 투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3000여 쪽 중 일부 공개된 기록에는 현장을 세 차례나 정찰한 경찰간부가 “시위대가 건물 아래쪽을 가끔 내려다보기는 하던데 돌이나 화염병을 투척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 경찰은 도심테러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경찰이 화재피해를 입었다던 약국의 말은 달랐다ⓒMBC
이와 함께 <PD수첩>은 피해상황이 과장됐다는 의혹을 함께 제기했다. 경찰의 상황보고에는 화염병으로 주변 약국에 화재가 났다고 적혀있었다. 취재진은 약국을 찾아갔다. 그러나 약국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안 입었어요. 화재 피해 안 입었어요. 무슨 약국에 화재 피해를 입었다고…. 멀쩡하잖아요”라고.

경찰이 공식적으로 PD수첩에 보내온 자료에는 사건 직후 2건이던 화재 피해가 5건으로 늘어났고, 한 숯불바베큐 업소가 반소됐다는 것도 추가됐다. 취재진은 또 숯불바베큐 업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화재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반소라는 뜻은 절반이 불탔다는 뜻인데, 경찰은 이것을 모르는 것일까?

◇두 번째 물음. “작전 계획, 문제는 없었나” : <PD수첩>은 진압작전이 변경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원래 계획은 300톤급 크레인이 콘테이너를 망루 위로 올려 한 조는 망루 위 지붕을 해체해 위쪽으로 진입하고 나머지 한 조는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 철거민들을 검거한다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준비된 것은 100톤급 크레인 두 대. 또 그 중 한 대는 돌려보냈다. 결국 작전은 100톤급 크레인이 두 번에 걸쳐 특공대를 투입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 경찰은 시너 등 인화물질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했으나, 경찰특공대원은 몰랐다고 진술했다ⓒMBC
3000쪽 중 공개된 일부 기록에서 한 경찰특공대원은 “작전 당일인 1월20일, 현장으로 출발하기 10여분 전 현장 지휘관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고 진술했단다. 작전변경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그때까지도 몰랐다는 말이다.

또한 검찰이 공개하지 않는 3000쪽의 수사기록에는 경찰특공대원들이 내부에 시너 등 인화물질이 다량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진술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에 특별한 사전대비 없이 경찰특공대 대원들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3000쪽에 한 경찰특공대 현장 지휘관은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검사님 죄송합니다. 사실 겁이 나서 그랬습니다. 제가 이미 시너가 뿌려진 상황에서 직원들을 망루 내부로 들여보냈다가 이런 사고가 발생하다 보니 … 그래서 불이 난 이후에야 시너를 창밖으로 들이붓는 것을 보았다고 말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 세 번째 물음. “안전대책, 충분했나?” : <PD수첩>은 경찰은 참사 이후 홈페이지를 통해 소방차량 36대를 배치하는 등 안전조치를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작전 전날 소방사와 협의한 내용은 소방펌프차 2대, 물탱크차 1대 등 총 5대의 소방차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 경찰은 유류 소화재 등을 준비했다고 문건을 작성했으나, 실제 당일 유류화재임에도 불구하고 물만 퍼부었다.ⓒMBC
더 심각한 문제는 소방관들이 정확한 시너의 양에 대해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류로 인해 화재가 났는데도, 유류 소화재 대신 물만 퍼붓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 경찰지휘관은 무전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것은 기름이기 때문에 물로는 소화가 안됩니다.”

투신에 대비해 46개의 메트리스를 배치했으나 그 위치, 갯수, 크기가 적절했느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철거민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 뛰어내릴 거야. 불에 타 죽으나 떨어져 죽으나…” 그렇게 철거민들은 바닥으로 몸을 던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 네 번째 물음, “발화 지점은 어디인가?” : 검찰은 비디오 판독 등을 근거로 망루 3층에서 불이 났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PD수첩에 따르면 당시 망루에 투입됐던 경찰특공대원은 다른 진술을 한 것으로 3000여 쪽에 나와 있다. ‘2층’, ‘1층 모퉁이’ 등 그 내용은 제각각이다.

철거민 측 변호인인 장서연 변호사는 “검찰의 공소사실과 다른 진술들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본인(검찰)은 ‘진술에 근거해서 견론을 내린 게 아니다’라는 건데 이상한 것은 그 안에 있었던 당사자들이 검찰의 결론과 다른 진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검찰의 주장에 의문을 던졌다.

재판부는 3000쪽 없이 진실을 판단할 수 있나?

<PD수첩>을 통해 재구성된 용산참사는 검찰이 발표한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경찰특공대를 하루 만에 투입할 필요가 있었냐는 의구심은 더 커졌다. 화재가 발생했다던 약국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화재 피해 안입었어요”라고 말했고, 반소됐다던 숯불바베큐 업소는 멀쩡했다.

경찰특공대원들은 진압작전이 변경된 사실을 출동 10분 전에야 알았고, 인화물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남일당 건물로 투입됐다. 한 경찰특공대 현장 지휘관은 시너가 뿌려진 상황을 알고도 대원들을 망루 내부로 들여보냈다고 고백했다. 경찰은 유류로 인해 화재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물만 퍼부어 댔고 결국 그 안에서 6명(경찰특공대원 1명 포함)의 사람들이 희생됐다.

철거민들의 혐의는 분명 ‘특수공부집행방해치사’다. 용산참사로 인해 다치고 죽음에 이르는 모든 책임을 철거민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3000여 쪽 중 일부 공개된 수사기록만 보면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제 남은 문제는 재판부에서 3000여 쪽의 수사기록 없이 사건의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느냐에 있다. 재판부는 검찰이 3000여 쪽의 수사기록을 공개할 때까지 재판을 중지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상 검찰에 불이익을 주면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철거민들은 안전장치 없이 그냥 떨어졌어야 했다. 그리고 미연방법원은 검찰의 증거 은닉에 '공소기각'을 결정했다.ⓒMBC
이에 대해 <PD수첩>은 ‘용산참사’와 마찬가지로 검사가 증거를 공개하지 않아 문제가 된 미국 연방법원의 사건을 소개했다. 미 연방법원은 공소를 기각해버렸다. 검사의 직권남용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특별검사를 임명하기도 했다. 에밋 설리번 판사는 “검찰 측에 문제가 이렇게 많은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는 없다”고 했단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했던가. 이제는 재판부가 재판으로 말할 때다. 법원이 검찰에 무시당한 것은 둘째 치고 ‘반소’의 뜻도 모르는 검찰의 손을 들어주는 게 옳은지 그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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