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 가면 홍준표도 있고 홍일표도 있다.

지난 1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은 홍일표 의원의 검찰수사 촉구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 개입으로 사퇴 압력까지 받게 된 이유 역시 홍 의원과 적잖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홍 의원은 전직 판사이다. 1980년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 이듬해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을 거치는 세월을 사법부에 몸담아오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1999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근 20년 경력의 베테랑 재조 법조인일까?

▲ 홍일표 한나라당 의원 ⓒ여의도통신
나경원 의원마냥 판사 출신인 홍 의원에게도 촛불시위를 둘러싼 일들이 탐탁지 않았을까. 작년 10월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에게 “평소 젊은 판사들을 자주 만나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국정감사장에서 발언한다.

홍 의원은 또한 “젊은 판사들이 나이와 경험이 짧아 문제되고 있는데, 법원 차원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자주 만나고 식사도 하면서 예전 판사들은 이랬다는 것도 얘기해주고 자연스럽게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다그치는 듯한 어조로 묻기도 한다.

중앙지법 판사 300여명 관리를 어떤 식으로 하고 있냐는 홍 의원의 질문에, 신 법원장(현재의 대법관)은 “예, 밥 사주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우문우답이었다.

박재영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미국산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여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헌 여부에 관한 심판을 제청하기로 결정한다. 위헌제청 신청을 받아들인 서울중앙지법의 또다른 단독판사가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인물들의 보석을 허가한다.

단독판사(주로 30대 내지 40대 초반까지의 젊은 판사)들이 사시 선배 홍 의원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이다.

▲ 신영철 대법관 ⓒ오마이뉴스
신 법원장은 올해 2월 대법관의 권좌에 올랐으나 지난해의 촛불재판 개입(판사들에게 이메일 전송) 의혹 파문으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고, 신 대법관 사태를 둘러싼 지방법원 단독판사회의가 서울을 넘어 전국 지방법원으로 확산되면서 제5의 사법파동으로 이어질 듯한 양상이다.

젊은 판사들의 사실상 ‘사퇴 요구’에도 불구, 당황한 보수 신문들은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5월15일자 기사에서 단독판사들이 신 대법관의 사퇴를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경우 14일자 사설에서 ‘사법부 하극상’이란 표현까지 동원하며 신 대법관을 옹호한 데 이어, 15일치에선 “사법부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선 젊었을 적 익힌 법전 실력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조중동의 폄하에도 불구, 지방법원 판사회의는 이제 고등법원 판사들의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15일 논평에서 “사법부가 진정 독립하려면 권력으로부터, 정치적 공세로부터, 여론으로부터도 독립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판사들의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0월 국감장에서의 홍 의원 발언(“사법부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요즘 가장 중요한 것은 여론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과 매우 흡사하다. 누가 누구에게 정치적 공세를 퍼붓고 있는지, 그 나물에 그 밥!

반면 홍 의원은 요즘 조용하다.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이 15일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3.8%는 신 대법관은 헌법상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했기 때문에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신 대법관의 “사과로 충분하다”는 응답은 18.7%에 그쳤다.

또한 67.5%는 사퇴하지 않을 시 국회 ‘탄핵소추’ 발의에 찬성했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절반가량이 찬성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한나라 홍 의원과 ‘한나라스러운’ 신 대법관의 어리석은 질의와 어리석은 답변이 건드린 판사들 자존심의 뇌관은 이제 폭발 일보 직전으로 치달았다.

3년 뒤 한나라당에 가면 홍준표도 있고 홍만표도 있고 신영철도 있을까?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