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중등 역사교과서, 고등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이하 국정교과서)는 현 정권의 ‘성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여기서 ‘성격’이란 단지 교육부가 현재의 검정교과서들의 편향사례로 지적하고 있는 북한에 관한 언급과 서술 자체에 드러내고 있는 극단적인 이념적 히스테리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맞닥뜨리는 반대여론을 달래기 위해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집필진부터 담겨질 내용 등 모든 제작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내 약속은 몇 차례에 걸쳐 번복되었고 국정교과서는 예산과 집필까지 모든 것을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밀실행정’으로 치달았다.

이에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는 지난해 11월 20일 교육부에 집필진과 편찬심의위원들의 명단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지금 제작되고 있는 국정교과서는 모든 학생들이 교육을 받게 될 교과서이며 그렇게 때문에 어떤 전문가들이 교과서를 집필하게 되는지는 시민들에게는 응당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정보공개센터의 청구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12월 3일 비공개 결정통지를 해왔다. 정보공개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비공개에 맞서 정보공개거부처분을 취소하라는 취지의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2015년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 관계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송은 해를 넘겨 약 9개월의 시간 동안 재판이 진행되었고 이윽고 지난 9월 9일에 판결 선고가 있었다. 헌데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5부 강석규 부장판사)의 판결 내용이 무척 참담하다. 재판부는 단지 "명단이 공개될 경우 해당 집필진과 심의위원에 대해 가정과 직장 등에서 상당한 심리적 압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 교육부가 집필진 명단 공개를 11월로 예정하고 있기 때문에 "원고가 주장하는 알 권리는 수개월 내로 충족될 것으로 보이고, 그때 가서 집필진 구성이나 역사교과서 내용에 대해 공개 논의할 기회도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 측 손을 들어줬다.

판결문의 내용은 재판하는 동안 교육부가 주장해온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은 수준이었다. 국가의 중요한 공무(公務)를 맡은 사람들의 최소한의 검증을 위해 이름을 공개하라 요구했더니 허용하지 않는 근거가 고작 집필진이 느낄 심리적 압박에 대한 우려라니. 오히려 시민 앞에 이름 석 자가 공개되는 심리적 압박조차 견딜 수 없는 집필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 결국 정부가 스스로 집필진을 공개할 때까지 시민들은 그저 '가만히 있으라'라는 명령이나 다름없다. 재판부는 11월에 어차피 집필진이 공개될 것이니 2달 후에는 국민들의 알 권리가 충족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재판부가 말하는 국정교과서에 대한 국민들의 알 권리는 정부에 의해 지난 1년간 묵살되고 짓밟혔다. 또한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선언하며 모든 정보를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밝힐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11월에는 정부가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공개할 것이라고 순진하게 정부의 말을 믿고 있는 국민은 거의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번 재판부의 판단을 그대로 따른다면 내년 3월에 우리들은 의뭉스럽기 짝이 없는 국정교과서를 학생들의 손에 쥐어 주어야 할지 모른다.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시민들의 알 권리와 국정교과서 집필진 명단 공개를 위해 항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정부의 정보은폐에 맞서기 위해 <알권리 소송 기금 마련 불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후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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