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동안 정세균 국회의장과 주요 3당 원내대표가 미국을 방문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난 이후 ‘반기문 대세론’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핵심 쟁점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과거 ‘반짝 인기’를 누렸던 대권주자들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아니라면 구체적인 이후 정치일정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에 집중되고 있다.

‘반기문 대세론’이 소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참여정부 시절 고건 국무총리나 15대 대선에 출마했던 박찬종 변호사 등의 예를 들어 ‘오래 못 간다’는 의견을 내놓는 흐름이 존재하는가 하면 ‘반기문 대세론’이 나름의 실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흐름도 있다.

조선일보는 후자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조선일보는 20일 지면 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5, 60대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고 여권 주류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충청권 지역 연고성이 강하다는 점을 들어 지금의 대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 이른바 ‘제3후보’들은 조직적 기반을 갖추지 못했고 여당 내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는 흐름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설명은 몇 가지 약점을 안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거다. 새누리당의 친박 주류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지지하는 것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권주자로서의 그가 높은 지지도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5, 60대의 강력한 지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자체의 캐릭터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친박 주류를 지지하는 흐름이 정치적 맥락을 따라가는 결과일 수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4일 오후(현지시간) 주요20개국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중국 항저우국제전시장에 도착,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즉,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검증 과정에서 상처를 입을 경우 이런 차원에서의 ‘조직적 기반’은 언제든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다른 대권주자들이 ‘반기문 대세론’의 부상을 오히려 환영하거나, 그저 무관심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것에는 이런 이유 때문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과거 ‘신드롬’ 수준의 세몰이까지 갔던 대권주자들에 비하면 오히려 ‘바람’이 약하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남는 것은 충청권의 지지이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 등을 통해 나타나는 충청권의 지지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는 실제 바닥민심을 흝어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겠으나 김종필 전 총리가 “결심한대로 하되 이를 악물고 해야 한다”는 메시지까지 보내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세상을 떠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등 충청권 주요 인사들이 ‘반기문 대망론’의 실체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런 요소들이 ‘반기문 대세론’과 ‘충청대망론’을 교차하는 것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야당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선거구도나 유권자 수 등을 고려했을 때 충청권에서 패배할 경우 대권을 잡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지도부가 이해찬 의원의 복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들을 보면 그렇다.

이해찬 의원은 4·13 총선에서 ‘패권주의를 배격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김종인 비대위에 의해 공천을 받지 못했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후에도 복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추미애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떠난 분들을 한 분 한 분 모셔오겠다”고 발언하고 이른바 원외민주당과 통합을 천명한 후 이해찬 의원 복당을 결정하면서 여기에도 정치적 성격이 부여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이 지난 총선과정에서 탈당한 이해찬 의원의 복당을 결정한 19일 세종시 도담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복당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핵심은 이해찬 의원이 복당 이후에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이냐의 문제다. 대다수 언론은 이해찬 의원이 충청지역 출신이고 무소속인 처지에서도 세종시에서 당선됐다는 점을 들어 충청권의 여론을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한 쪽으로 만들기 위해 나서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해석에는 이해찬 의원이 그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매섭게 비판해왔다는 점이 근거가 되고 있다. 이해찬 의원은 다양한 자리를 통해 ‘외교관 출신은 대통령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논리를 내세워왔는데, 결국 ‘이해찬으로 반기문 바람을 막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느냐는 거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일각에서는 한 발짝 더 나간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한겨레는 20일 지면 기사에 이해찬 의원의 복당이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실었다. 이해찬 의원이 ‘반기문 바람’을 차단하는데 자신의 역할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충청권 주자’를 세우려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있다는 것이다.

원래 정치적 사건에는 이런 저런 해석이 따라 붙게 마련이므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일부는 문재인 전 대표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선수교체론’을 내세우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적할 수밖에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반기문 대세론’의 실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에 일희일비하는 게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거다. 여권의 대권주자를 상수로 놓고 이를 대비한 전략을 짜는 것은 현재로서는 위험천만한 일일뿐더러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여권의 대권주자’가 확정됐다고 보는 것도 위험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조건 자체의 특수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선전략에서 지역연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물론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대권구도 형성에는 세대, 이념과 함께 지역연합이 분명한 한 축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정된 것은 새누리당 대표가 호남 출신이라는 것과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구 출신이라는 것 정도이다. 나머지는 정계개편 전망이나 각 대권주자들의 다양한 처지의 변화와 맞물려 무엇이든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기본기를 충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 ‘반기문 대세론’에 휘둘릴 게 아니라 대선 국면에서 구해야 할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따지고 탐구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은 누가 더 ‘대세론’을 잘 유지할 것인가로 승패가 판가름 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대선 국면에 안이하게 접근하는 쪽이 순간의 실수로 패배의 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각종 사건사고에서 ‘국가의 안이함’이 반복 부각되고 있다. 김종필 전 총리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이를 악물고 하라”는 지적을 특별히 따로 한 것 역시 이런 맥락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기문 대세론’에 일희일비 하는 건 오히려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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